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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야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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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93회 작성일 24-04-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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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야 기쁩니다.

15:9~12

2024. 4/28. 11:00

호모불라(Homo-Bulla)

제정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소원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는 그 목표를 위해 평생 일하고 저축했다. 그리고 드디어 80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다. 그 날은 그에게 성공한 날이자 꿈을 이룬 날이었기에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큰 절망에 빠졌다. 그것은 단순히 고급외투가 아니라 그의 꿈이었고, 그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그는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고골리의 단편소설 외투에 나온 이야기다.

 

이 소설 속에 나온 주인공 아까끼에비치는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평가에 앞서 비록 금방 사라질지언정 무엇인가에 목표를 두고 그것을 위해 혼신을 다해 그것을 이뤄낸다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큼 의미있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를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지만 그 과정만큼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다. 사실 주변에는 이것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취가 거품처럼 한순간에 덧없이 사라지면 새로운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것이 이 세상살이인 것 같다. 흔히 희망이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물거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우리의 수고나 성취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일까? 모두가 거품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호모불라(Homo-Bulla)라고 한다. ‘인간은 거품이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생은 후회와 절망이고, 그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다상황이 이러니 누구를 불문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인생이 기쁨으로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이고, 그 답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고, 그 결과가 기쁨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시작된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온갖 도덕이나 계명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사랑이라고 말했다. 행복이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서로 함께 사랑하는데서 행복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사실 행복이란 만들어지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이다.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행복이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기쁨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하는 참된 기쁨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비로소 시작이 되는 것이다.

 

흔히 죄의 결과를 단절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 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모든 가치있고 의미있는 영적인 선물들과의 단절이다. 여기에는 은혜도, 사랑도, 행복도, 기쁨도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끊어진 곳을 이어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고, 영적인 선물들도 다시 누리게 되었다. 주님께서 이처럼 끊어진 곳을 이어 관계를 회복시켜주신 동기를 성경은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던져 끊어진 곳을 이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구원도, 우리가 일평생 추구하는 행복도, 그 행복의 결과로 주어지는 참 기쁨도 시작이 된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지속된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주어지게 되고, 그 기쁨이 시작된다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기쁨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 기쁨을 빼앗으려는 자의 활동 또한 시작된다. 그 가치를 아니까 그 중요성을 아니까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빼앗으려고 넘보는 자가 많다. 아까끼에비치의 비극이 여기에 있었다. 열심히 애쓰고 악착같이 모아서 자신의 꿈이었던 외투를 구입하는 데는 성공을 했으나 그것을 지키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을 빼앗는 것보다 빼앗은 성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복도 마찬가지다. 빼앗기지 않고 잘 간수하면서 지속적으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비결이 9절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장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있다. 거한다.’는 단어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계속 있다.’, ‘살다.’, ‘머물다.’는 의미다잠시 임시방편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생활의 근거지를 그곳에 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삶의 근거를 주님께 두고, 항상 주님께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주님과 끊임없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언제나 주님께 기대며주님께 마음을 쏟아놓고, 주님을 생명과 힘의 원천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도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을까? 7절 말씀이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는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요한복음의 신학과도 잘 어울린다. 말씀중심의 신앙()을 강조한 요한복음은 주님과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강조하고있다. 우리를 주님 안에 거하게 하는 구체적인 매개체가 바로 말씀이라는 것이다그렇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로 결단할 때 그 근거가 바로 말씀이었다또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수용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그래서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어야 하고말씀을 힘써 배워야 하고, 매주일 선포되는 말씀(설교)에 집중해야만 하는 것이다말씀을 붙들고말씀의 인도를 받고, 말씀 따라 살고자 하는 삶이 곧 주님과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 곧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일상에서 지속하는 비결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므로 완성된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선물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한 집단이나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이를 경험하거나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나눠야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재화는 한정이 되어 있기에 나누면 줄어들지만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재화는 나눌수록 풍성해지고 완성이 되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혜의 선물로서 은사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면 그 은사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강력해지고 영향력이 확장이 된다. 성숙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도 마찬가지다.

 

주님은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우리만 가지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주변과 나누고, 전하는 삶을 살도록 주신 것이다. 사실 모든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령한 선물에는 나눔이 전제되어 있다무엇이든지 나에게만 머물면 고여 있게 되고,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썩으면 주변에 악취만 풍겨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 교회였는가?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밖으로 활발하게 나누지를 못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위선적인 기부, 그로 인한 비참한 죽음과 구제활동에 대한 불만으로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갈등, 급기야는 스데반의 순교와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가 그것이다. 나누지 않으니까 고여서 냄새를 풍기게 된 것이다. 나누고 전할 때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난다. 베풀고 전할수록 더욱 커지고 넘치고 완성되는 것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시작되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므로 지속되는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므로 더욱 커지고 풍성해지고 완성이 된다. 내 안에서만 가물거리는 작은 불꽃이 아니라 주변으로 퍼뜨려서 꺾을 수 없는 거대 불길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의 사명이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극대화하는 비결이다. 거품같은 일생을 값지고 의미있게, 보람차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기쁨은 깃발이다.

기쁨은 깃발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생겨난 배경이 있다. 지금도 유럽의 많은 국가에 왕제도가 존재한다. 그들 나라에서 왕이 왕궁에 있는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다. 그것이 깃발이다. 궁에 깃발이 꽂혀있으면 왕이 궁에 머물며 집무를 보고 있는 것이고, 깃발이 없으면 왕이 출타한 것이다. 이에 빗대어 기쁨을 깃발에 비유한 것이다. , 기쁨을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기뻐하는 생활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기쁨의 왕이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니 내 삶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를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 속을 짐작하게 된다. 말을 예쁘게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예쁘다고 말하고, 행동이 얌전하고 올바른 사람을 보고 착하고 선하다고 말한다. 물론 실제와는 다를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으니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주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인지 아닌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 척도가 기쁨이라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기쁨의 깃발을 힘차게 펄럭이자! 그리하여 온 세상이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인 것을 알아차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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