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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980회 작성일 12-01-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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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와 같은 교회

출15:27

2012. 1/1(신년주일, 개당 기념주일)   11:00

휴테크(休tech)

유명한 아나운서가 생방으로 뉴스를 진행하다가 죽고,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죽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인(死因)이 똑같이 나왔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질식사’였다. 뉴스 원고와 악보에 ‘쉼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쉼표가 없는 뉴스 원고를 읽고, 쉼표가 없는 악보로 노래를 부르다보니 숨이 막혀 죽은 것이다. 쉼(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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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피곤’과 ‘스트레스’가 거인처럼 위협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래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쉼’이다. 여가활동, 여가문화, 여가산업이 번창하고, ‘재테크’(財tech, 돈을 어떻게 모으는가), ‘시테크’(時tech,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라는 말에 이어 어떻게 건강한 휴식을 갖는가를 뜻하는 ‘휴테크’(休tech)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일(2)이면 우리교회 개당(2005.1.2) ‘7주년’이 되는 날이다. 성경에서 제7일은 ‘안식일’이고, 제7년은 ‘안식년’이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50년 째)를 ‘희년’이라고 한다. 금년은 우리교회가 안식년으로 들어가는 해이다. 그래서 이 안식년에 맞추어 금년 교회의 주제(표어)를 ‘쉼’, 즉 ‘쉼을 주는 교회’로 정했다. 그리고 쉼을 상징할 수 있는 것으로 ‘의자’를 떠올려 보았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의자와 같은 교회’라고 한 것이다.

 

의자의 이미지들

의자는 일상적인 생활의 도구지만 여러 가지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것들은 교회와 신자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대개 의자의 다리가 네 개인 것처럼 의자가 가지고 있는 4가지 이미지를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의자의 첫 번째 이미지는 ‘쉼’(안식)이다. 의자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다가 잠시 쉬는 곳, 길에 지친 나그네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의자다. 의자는 자기에게 다가온 누구에게나 쉼을 제공한다. 신자와 교회는 의자처럼 쉼을 주는 사람, 쉼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살이에 시달려 기진맥진 영혼들이 쉴 수 있는 곳(영혼의 쉼터)이 되고, 신자는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자신을 우리의 의자로 내놓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외쳤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본문에 엘림이란 장소가 나온다.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로 머문 장소다. 그곳은 12개의 샘과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장막을 치고 잠시 쉬었다. 그래서 엘림이란 말은 쉼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엘림은 신자와 교회의 상징이다. 신자와 교회는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의자가 되어야 한다.

 

회복

쉼은 그 자체에 목적이 아니다. 하나의 과정이다. 다음 행동(활동)을 위한 준비다. 그래서 쉼에는 안식의 의미와 함께 ‘재충전’의 의미가 있다. 활동(일이나 운동)이 에너지의 ‘방출기’라면, 쉼은 에너지의 ‘충전기’다. 이것이 의자의 두 번째 이미지다. 의자는 쉼과 함께 방전된 힘을 ‘회복’(재충전)하는 장소다. 다시 일을 하고, 다시 운동을 하고, 다시 길을 가기 위해서 잠시 쉬면서 준비하는 곳이 의자다. 사람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아무리 멋진 의자가 놓여 있어도 종일 그곳에 앉아 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만 줄곧 머물지 않고 신광야로 출발한 것(출16:1)도 같은 의미다. 쉬면서 충분히 힘을 회복했으니 새로운 장소로 도전을 한 것이다.

 

교회는 은혜를 회복하고, 힘을 회복하고, 능력을 회복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복되었으면 교회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는 자주 찾아와 힘을 충전하는 곳이지 눌러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의 큰 병증은 신자를 세상으로 내보지 않고 교회에만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힘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교회 안에서 방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종종 교회가 마치 게 바구니처럼 엉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變貌)를 경험한 베드로가 그곳에 천막을 세우고 거기 살기를 구하자 주님이 서둘러 그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오셨던 사건에 주목을 해야만 한다(마17:1~8).

 

만남

식탁과 거실소파는 가정에서 식구들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다. 식탁의자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가족이 만나고, 식사 후에 가족이 모두 소파에 앉아서 만난다. 의자의 세 번째 이미지는 ‘만남’이다. 의자와 만남은 깊은 관련이 있다. 공원이든 학교든 카페든 그곳이 어디든 만남의 장소에는 의자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의자는 만남의 장소이면서 만남을 이어주는 곳이다. 교회가 바로 이런 곳이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고, 또한 사명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 그 만남을 이어주는 곳이 바로 교회다. 신자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만남을 주선해 주는 ‘중매인’으로 소개를 하였다(갈2:9).

 

내어줌(받아줌)

의자의 네 번째 이미지는 ‘내어줌’(받아줌)이다. 의자는 누구에게나 어른이든 아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옷을 잘 입은 사람이든, 지저분하고 더러운 옷을 입을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고 또한 받아준다. 이런 점에서 의자는 우리 주님의 모습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여러분, 이 의자를 항상 여기에 놓아둔 이유를 아는가? 이 의자는 몇 년 전에 어느 권사님이 기증한 값이 꽤 나가는 것이다. 강단에서 사용하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 사용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둔 이유가 있다.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또한 받아주시는 주님을 생각하기 위함이고, 그 주님께서 여기에 계심을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주님이 항상 곁에서 보시고 들으시고 응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가끔 마음이 힘들고 답답할 때 여기에 앉으면 마치 주님 품에 안긴 것 같다. 그리고 방석을 놓고 기도를 하면 주님의 발등에 입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상이군인(傷痍軍人)의 이야기다. 그는 전장에서 한 팔을 잃은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거리를 걷고 있던 그에게 어떤 행인이 없어진 그의 팔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잃은 것이 아니라 내어주었소.’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이미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기에 팔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어준 것이라고 한 것이다. 내어줌과 잃음은 다르다. 내어줌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의자는 내어줌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쉼과 회복, 만남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의 모습이고, 신자의 삶이어야 한다. 교회와 신자는 의자처럼 누구에게나 기꺼이 내어주고, 또한 누구든지 받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세파에 시달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주님 안에서의 참된 쉼과 회복, 행복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금년 한해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가 이를 지향하며 더욱 정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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