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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Ⅲ,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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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094회 작성일 12-01-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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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Ⅲ, ‘찬양’

엡5:18~21

2012. 1/22   08:00, 11:00

천국 통행증(passport), 찬양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움직이는 강력한 도구다. 그래서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서 노래가 빠진 곳이 없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쌓여도 노래를 부르고, 힘들고 어려워도 노래를 부르고, 슬퍼도 노래를 부르고, 기뻐도 노래를 부른다. 놀이를 할 때는 물론이고, 일을 할 때도, 사람이 죽었을 때도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는 사람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파괴시키는 전쟁의 현장에서도 노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신령한 노래인 찬양은 영적인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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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학대학교에서 구약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이야기다. 꿈속에서 천국을 가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가 ‘예수를 믿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단박에 베드로에게 항의를 했다. 명색이 신학대학교 교수인데, 그것을 질문이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웃으며 ‘그럼, 찬송가 중에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한 곡 불러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외워서 부를 수 있는 찬송가가 생각이 나지 않아 쩔쩔매다가 꿈을 깨고 일어났다고 한다. 여러분은 외워서 부를 수 있는 찬송이 몇 곡이나 있는가? 이 일을 계기로 이 교수는 틈나는 대로 찬송을 부르고, 외워질 때까지 찬송을 부른다고 한다. 성경요절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찬송도 외워서 부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야 어느 상황에서든지 찬양할 수가 있고, 찬양을 통해서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다. 이 교수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찬양생활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적어도 10여 곡 정도는 외워서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

이 시간은 복이 따라다니는 복된 인생의 비결 세 번째로 ‘찬양’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 성품, 하나님이 이루신 위대한 사역(창조와 구속 등)을 기리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호흡이 있는 모두 자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이고, 고백이고, 간증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고, 입술의 열매이고(히13:15), 또한 명령이다(시150:).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43:21)고 했다. 우리를 지으신 목적과 사명이 찬양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본문은 구원받은 신자의 생활에 대한 말씀이다. 신자는 술 대신 성령으로 충만하고, 방가(放歌) 대신 찬양을 드리라는 것이다(찬양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모습이고,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방법). 본문은 찬양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누래하며 찬송하며.”(19)

 

여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찬양의 종류로 해석하고 있다. ‘시’는 시편찬양, ‘찬송’은 찬송가, ‘신령한 노래들’은 복음성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시편찬양과 찬송가로만 제한하여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초대교회시절에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시편찬양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라고 해석하면서 이들 역시 예배찬송으로 시편찬양만을 주장한다. 이 역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신학자 부르스(F. F. Bruce)는 ‘시’를 감사, ‘찬송’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고백, ‘신령한 노래들’을 우리의 간증으로 해석하고 있다. 찬양의 다양한 내용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찬양은 감사요, 고백이요, 간증이다. 이런 내용을 담아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 본문의 강조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 하는가?

 

“서로 화답하며”

 

첫째,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여기서 ‘화답’(speaking to one another)이란 ‘이야기하다.’ ‘대화하다.’는 뜻이다. 받은 은혜를 서로 이야기하고, 경험한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이 화답이다. 이것이 찬양이다. 반드시 멜로디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것만 찬양이 아니라 감사를, 고백을, 간증을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나눈 것도 찬양이다. 예배 후에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교제를 나누는 것도 찬양이다. 그러므로 찬양이 가득한 삶, 찬양이 넘치는 삶을 위해선 지체들과의 나눔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주 만나고, 모이고, 교제해야 한다. 시편 기자가 형제의 동거함이 아름답다고 선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찬양이 되기 때문이다. 그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아론의 수염을 타고 그 옷깃을 적시는 보배로운 기름과 같은 복, 헐몬의 이슬과 같은 복)이 부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화답은 ‘서로 노래하다’는 뜻이다. 함께 찬양하는 것이다. 찬양은 혼자서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부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찬양에서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만 찬양을 하고, 다른 편은 듣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찬양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찬양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찬송하며”

 

둘째, ‘찬송하는 것’이다. ‘찬송’을 영어성경은 ‘making melody’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멜로디를 만들어 찬양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악기를 동반한 찬양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찬양의 방법이다. 찬양은 멜로디에 따라 목소리뿐만 아니라 각종 악기를 동반하여 드려야한다. 그래서 시편 150편은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3~5). 그 외에도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춤을 추면서 찬양하라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어떤 제한이 있을 수 없고, 제한을 둘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찬양은 누구든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상황에서 찬양을 드려야 한다. 이렇게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찬양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셋째,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는 찬양을 드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형식에 있어서는 찬양이나 일반노래의 차이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앞에서 말했듯이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 성품, 하나님이 이루신 위대한 사역을 기리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초점이 하나님께 맞춰진 노래가 찬양이다. 이런 찬양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방법이 바로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일반노래는 입술로 부를 수 있으나 찬양은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일반노래는 음악적 기교나 가창력이 중요하지만 찬양은 영성이 중요하다. 일반노래는 자기감정이나 기분이 중요하지만 찬양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성령의 은혜에 젖어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있는 골로새서는 여기에 “감사하는”(원어/“εν τῇ χαριτι”)이란 단어를 첨가하고 있다(3:16). 마음으로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에 젖어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방법이듯 찬양도 이렇게 드려야한다. 찬양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찬양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하나님은 형식적인 입술이나 음악적인 기교로 부른 노래가 아닌 성령의 은혜에 젖은 마음의 찬양을 기뻐하신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드릴 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한다. 이렇게 찬양하는 사람에게, 찬양하는 곳에 주님의 복이 흐른다.

 

“화답하며.......노래하며, 찬양하며”

여기에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는 단어들은 모두 ‘현재분사’로 되어있다. 계속적인 의미다. 성경에 찬양하라는 말씀이 400회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대부분이 현재 명령형이다. 이는 항상 찬양하라는 것, 즉 찬양을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찬양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특정한 장소나 시간, 혹은 사람들만 드리는 것도 아니다. 찬양은 누구든지 언제나 항상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할렐루야 내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1,2).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찬양하며 살겠다는 결심이다. 신자는 씨를 뿌릴 때나 거둘 때나 밤이나 낮이나 우리의 일생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찬양의 생활화 이 역시 찬양의 중요한 방법이다.

 

어느 숲속에 있는 넓은 호숫가에 많은 개구리들과 새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구리들은 쉴새없이 재갈거리고 있는데, 새들은 너도 나도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나무에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목동이 이 관경을 보고 새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새들이 대답을 했다.

 

‘저것 좀 들어보세요. 개구리들 소리가 저렇게 시끄러운데, 우리가 아무리 예쁜 소리로 노래를 부른들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기나 하겠어요?’

 

그러자 목동이 ‘바보들아, 그러니 너희들이 더 크게 노래를 불러야지. 너희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개구리들의 소리가 더 시끄럽게 들리는 거야.’라고 말했다. 세상도 회사도 교회도 가정도 개인의 심령도 참으로 요란하고 시끄럽다. 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불평하며 노래를 멈추고 있는 새들처럼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세상의 소리가 요란할수록 주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소리를 더욱 높이자. 어떤 경우도 찬양을 멈추지 말고 더욱 찬양의 볼륨을 높여서 열심히 주님을 찬양하자. 찬양이 복의 통로가 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쉬지 말고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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