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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15, ‘거룩한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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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446회 작성일 12-05-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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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15, ‘거룩한 교제’

빌2:1~4

2012. 5/20 11:00(전교우어울한마당, 광양실업고등학교 체육관)

교제의 중요성

교회 통계학자 조지 바나(G. Barna)는 사람들이 교회를 결정하는 이유와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조사했다. 많은 이유 중 그 첫 번째가 바로 ‘교제’였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영적인 것(신령한 예배, 은혜로운 설교, 기도 분위기, 감동적인 찬양, 선교적 비전 등)을 이유로 말하지만 실상 내면적 이유는 ‘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에게서 사랑을 느껴서’가 교회를 결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교회를 떠나는 결정적 이유도 ‘사람에게 실망하여서’다. 최소한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때 곁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어주고, 밥을 먹은 후에 커피를 뽑아 함께 마시기만해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 교회 남게 하여 뭐하겠느냐는 사람도 있겠으나 교제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이고,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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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어느 교회에 시골출신의 두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두 청년은 결국 결심했다. ‘다음 주일에는 결판을 내자!’ 그런데 두 청년의 결심이 서로 달랐다. 한 청년은 다음 주일에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그 교회를 떠나겠다.’고 결심했고, 다른 청년은 다음 주일에는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걸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 청년은 교회를 떠났고, 말을 걸었던 청년은 남았다. 그 남은 청년이 17세기에 영국의 청교도 신앙을 이끌었던 리처드 백스터(R. Baxter)다. 누군가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렸던 청년이나 자신이 먼저 말을 걸었던 청년이나 그 핵심은 ‘교제’다. 중요한 것은 교제에 실패한 사람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교제에 성공한 사람은 그 교회에서 성장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자의 교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다. 즉 환경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힘의 원천이다. 교제가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교제는 마치 새의 날개와 같다. 새는 날개를 무겁다고 부담스럽게 생각지 않는다. 그 날개 때문에 더 높이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제를 통하여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능력과 용기와 영감이 풍부해지고, 더 부지런하고 책임 있는 존재가 된다. 신앙생활도 교제를 통하여 풍성해지고, 주님의 복도 교제를 통하여 주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열다섯 번 째, ‘신자의 교제’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교제의 원칙

교회의 본질 중의 하나가 신자의 ‘거룩한 교제’다. 이를 ‘코이노니아’(κοινονια)라고 하는데, 교통, 소통, 사귐, 연합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귀고 함께 노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교제, 거룩한 교제를 말한다. 이 교제를 위해선 본문 말씀처럼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일치와 연합)을 가져야 한다(2). 그래야 서로에게 ‘충만한 기쁨’(4)을 주는 건강한 교제가 이뤄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제는 오히려 상처와 실족, 갈등을 낳을 수가 있다(3). 그러므로 이 교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이 요구된다.

 

1. 만남이다.

건강한 교제를 위한 첫 번째 원칙은 자주 만나는 것이다. 만남의 빈도와 친밀도는 비례한다. 자주 만날수록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만남이 습관이 되도록 부지런히 만나라는 것이다. 예배하기 위해 만나고, 기도하기 위해 만나고, 찬양하기 위해 만나고,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만나고, 운동하기 위해 만나라는 것이다. 아무튼 기회가 있는 대로 만나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을 보면 항상 만난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습관’이란 말이다. 습관은 반복해서 자주 행하는 행동이다. 만남이 습관이 될 때 건강하고 거룩한 교제가 일어난다.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 선생님이 그 동네 처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만 섬으로 전근을 가야만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처녀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내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하루도 빼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방학 때, 선생님은 청혼을 하기 위해 처녀를 찾아갔다. 그런데 처녀가 자신은 우체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편지를 가지고 찾아온 우체부와 매일 만나다보니 정이 들어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 것이다.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이야기다. 만남을 통해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교제, 참된 교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주님과의 거룩한 교제다. 이 거룩한 교제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비결은 만남에 있다.

 

2. 상호성이다.

건강한 교제를 위한 두 번째 원칙은 상호성이다. 교제는 둘이나 그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것이다. 즉 교제는 ‘서로 함께’ 경험하는 삶이다.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 정직한 나눔, 실제적인 봉사, 희생적인 구제, 동정어린 위로가 성경에 나타나는 교제의 모습인데, 이 모두가 상호성에 기초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 배려와 이해, 격려와 위로, 서로 기도하고, 서로 돌보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상호성의 원칙이다. 이런 상호성의 원칙을 통해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을 품게 된다. 즉 일치와 연합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교제가 일어나고, 교제가 발전하게 되고, 교제가 더욱 풍성하게 된다. 또한 교제가 서로의 성장을 돕고, 세워주고, 회복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제는 우리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상호성이란 이런 특징이 있다. 하나는 상대방의 호의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상호성이란 건강한 교제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보다는 그 결과가 나에게 달렸다는 것, 나의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도 내가 외면하면 교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상대방이 소극적이어도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서면 교제가 발생한다. 앞에서 소개한 리차드 백스터 이야기처럼 교회가 교제에 소극적이었지만 그가 먼저 다가서자 교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교제의 상호성이다.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말을 걸고,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의 닫힌 마음이 열리고, 막힌 담이 무너지고, 맺힌 것이 풀리게 된다. 상호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조금 앞서는 것이 건강한 교제를 부르는 중요한 태도다.

 

3. 존중이다.

바울은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일치와 연합)을 건강한 교제의 조건(이자 결과)으로, 이를 통한 ‘충만한 기쁨’을 건강한 교제의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건강한 교제를 깨뜨리는 걸림돌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남을 멸시하는 태도(3), 즉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면서 남을 은근히 무시하는 교만한 태도다. 바로 이것이 건강하고 거룩한 교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교제 공동체인 교회 안에 다툼(이기적인 경쟁심)과 허영(헛된 욕망)이 틈을 타게 된 것은 바로 이 교만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제를 위한 세 번째 원칙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 곧 ‘존중’이다.

 

존중이란 겸손한 마음에서 온다. 겸손은 모두의 발아래 엎드려 우러러 보는 태도다. 즉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또한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교제가 발생하게 되고,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반면 아무리 큰 혜택을 받아도 존중받지 못하면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다(모 방송국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수혁). 그러므로 우리가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생각’을 가진 건강하고 거룩한 교제를 위해선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거기엔 다툼과 허영은 사라지고 충만한 기쁨이 임할 것이다.

 

거룩한 잡담

어느 회사 사장이 직원들이 일과시간에 잡담하는 것이 업무성과를 떨어뜨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판결하기 위해 한 연구기관에 연구를 의뢰했는데, 그 결과는 의외였다. 직원들이 회사나 업무에 관련된 지식의 70%를 동료들과의 사소한 잡담을 통해서 얻고, 협동심도 높여주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잡담은 업무에 오히려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장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만약 무거운 대화만 오가고 즐거운 대화나 잡담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과 만남은 경직되고 무거울 것이다. 서로 친밀해지기도 힘들 것이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잡담은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와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양념이다.

 

교회 안에서도 적당한 잡담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냥 잡담이 아니고 ‘거룩한’ 잡담이다. 주님 안에서 나누는 사소하고 가벼운 대화들, 이런 거룩한 잡담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교회가 이런 건강한 잡담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서 주고받는 가벼운 대화들을 통해 모두가 친밀해지고,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정겨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오늘 같은 이런 야외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잡담 속에 간증과 고백도 담기기를 바라고, 거기에 웃음과 유머가 넘쳤으면 더욱 좋겠다. 또한 구역모임에서의 나눔이 말씀과 잡담 가운데 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건강하고 거룩한 교제가 풍성하게 일어나는 교회, 주님의 복이 따라다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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