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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Ⅷ,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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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453회 작성일 12-03-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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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Ⅷ, ‘나눔’

딤전6:17~19

2012. 3/18   08:00, 11:00

황금물고기

연못에 아름다운 황금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다른 물고기들은 그를 부러워하면서도 그의 곁에 접근을 못했다. 황금물고기 역시 비늘이 다칠까봐 다른 물고기들과 어울리지 않고, 마을축제 때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그는 늘 혼자였고, 이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그즈음 다른 연못에서 이사 온 물고기가 그의 아름다움에 반해 말을 걸었다. 외로웠던 황금 물고기는 그를 반갑게 맞았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이사 온 물고기가 황금물고기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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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너의 아름다운 비늘을 내게 하나만 주라.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

 

그러자 황금물고기는 선뜻 자신의 비늘 하나를 떼어주었고, 좋아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도 기뻤다. 그것을 본 연못의 다른 물고기들도 너도나도 황금 물고기에게 몰려와 비늘 하나만 달라고 졸랐다. 마침내 비늘을 다 주고 난 황금물고기는 보통 물고기처럼 되었지만,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행복했다. 어느 밤, 연못을 지나던 어떤 사람이 연못 전체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고기들이 하나씩 지니고 있는 황금빛 비늘이 연못 전체를 황금빛으로 빛나게 한 것이다.

 

황금물고기라는 동화내용이다. 외톨이 황금 물고기가 자신의 황금 비늘을 나눔으로 다른 물고기들을 친구로 얻게 되고 연못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나게 되었다는, 나눔이 곧 사람을 얻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비결인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세계의 문제는 경제문제이고, 경제문제는 곧 분배문제라고 한다. 지금 세계 절반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재화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부가 소수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집중되어 있는 부가 효과적으로 분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쪽에서는 배가 고파 고통이고, 다른 한 쪽에선 배가 불러서 고민인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눔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작은 출발이다. 모두가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을 위한 의미있는 실천이다. 물론 물 한 방은 미미하지만 그 하나가 둘이 되고, 열이 되고, 백이 되고, 만이 될 때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나눔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삶

그런데 이 소중한 나눔의 실천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나눔을 산술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눔을 산술적으로 보면 지금 당장은 손실이고 희생이다. 그렇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본문의 말씀처럼 ‘장래를 위한 보장’(19)이다. 잠언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19:17)고 하였다. 나눔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다. 꾸어준 것은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 그것도 이자까지 붙여서 받는다. 이것이 나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잠언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는 내용을 첨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눔은 일방적인 손실도 희생도 아니다. 오히려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일이다. 나눔은 고귀한 인생저축이고, 복의 통로다. 그래서 이 시간은 복의 통로 여덟 번째로 ‘나눔’에 대하여, 특히 나눔의 복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주는 대로 받는다.

못생긴 친구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우리 집에 된장찌개 끓이는데 놀러올래? 호박이 없어서 말이야.’

 

그랬더니 답장이 왔다.

 

‘니가 와라. 우리 집에선 감자탕 끓인다. 그런데 돼지 뼈가 필요하거든!’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법칙을 넘어 ‘형통의 법칙’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사해(남북으로 약 100㎞, 동서로 약 20㎞)라는 소금바다가 있다. 글자 그대로 아무 생명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다. 사해의 수면이 해저400m다. 물이 흘러들어가기만 하고 나갈 곳이 없다.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는 바다, 그래서 생물이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실재로 바다의 크기가 50년 전보다 1/3로 줄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 내어줄 줄도 나눌 줄도 모르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죽은 사람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사랑을 받고,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받는다.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고, 미움과 증오를 품고 사는 사람은 미움과 증오를 받는다. 저주하는 사람은 같은 모습으로 저주를 받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그러니 잘 심고, 잘 뿌려야한다. 최고를 받으려면 최고를 심고, 최악을 받으려면 최악을 심으면 된다. 결국 받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주는 것, 심는 것이다. 행복을 얻고, 성공을 얻고, 기쁨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나눔의 정신은 다른 사람을 잘되게 행복하게 형통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위하여 잘됨을 심고, 행복과 형통을 뿌린 것이다. 그러니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잘되고 행복하고 형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신 것이다.

 

2. 주는 만큼 받는다.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신께 바치는 송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거지가 구걸을 나섰는데, 마침 왕의 수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일생일대의 행운이 왔다고 느낀 거지에게 왕이 묻었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

 

거지는 어리둥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루에서 작은 낟알 한 개를 꺼내 왕에게 드렸다. 왕이 가고, 날이 저물어 그 거지는 구걸해 온 초라한 자루 속에서 황금으로 된 작은 낟알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순간 거지는 ‘나의 모든 것을 왕께 바칠 마음이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면서 애타게 울었다. 우리 인생을 잘 반영해 주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임종할 때 대부분 사람들의 후회가, ‘기회가 있을 때 좀 더 베풀 걸!’이란 말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주는 만큼 받는다.’는 교훈이다. 주는 만큼 받는 것은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하고, 주되 아낌없이 풍성하게 주라는 의미다.

 

심은 만큼, 뿌린 만큼 거두는 것도 자연의 법칙이고, 또한 중요한 형통의 원리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를 말하면서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고 하였다. 결국 심은 만큼 거둔다는 뜻이다. 많이 거두기를 원하면 많이 심으라는 말씀이다. 즉 거두는 양은 심을 때 이미 결정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를 확장해 보면, 오늘이 내일을 결정하고, 이 땅에서의 삶이 저 나라에서의 삶을 결정한다는 심오한 영적 진리가 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소개했던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국을 연습하는 것이다.’고 루터가 말한 것이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교회의 부유한 형제들에게 권하는 말씀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이 물질이든 지식이든 명예든 가진 것이 많게 되면 거기에 마음을 쏟게 된다. 교만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자칫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다음과 같이 권하라고 디모데에게 말한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이 심고 많이 뿌리고 많이 주라는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나눔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다.

‘나누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갈라놓는 것’, ‘성질에 따라 분류하는 것’, ‘무리가 갈라져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빼기’(-), 혹은 ‘나누기’(÷)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쓰임새에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어려움을 같이 겪는 것이나 음식을 같이 먹는 것 등 ‘함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누다’에는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와 나누기(÷)의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사회는 아직도 ‘나눔’을 더하기(+)보다는 빼기(-)로, 곱하기(×)보다는 나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산술적으로는 10을 반으로 나누면 5가 되어 줄어드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삶에서는 나눔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커지고 증가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물질은 줄어들 수 있으나 기쁨은 배가 되고, 힘은 들어도 보람은 커지고 행복이 커진다. 이것이 나눔의 신비다. 나눔은 내가 가진 것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나눠 전체를 키우는 것이다. 나눔은 내 안에 있는 인색함이나 이기적인 욕심은 줄여주고 이웃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키워준다.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은 줄여주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 주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키워주는 것이 나눔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가지려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려고만 하지 내어놓지 못한다. 아홉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다. 반면에 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나눌 수 있다. 그는 소유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서 기쁨을 찾고,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더불어 잘되고 잘사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더 기뻐하고, 더불어 잘사는 일에 관심을 갖자.

 

 

※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말씀 중에 당신에게 도전이 되었던 내용이 있다면 어떤 부분입니까?

 

3. 떡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체 간 은혜의 나눔이고, 나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를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각 구역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1~2가지 결정하면 더 좋겠음).

 

4. ‘필리핀 어린이 돕기’(1인당 매월 2만원)에 대하여 개인이나 구역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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