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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부터 온 사람,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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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904회 작성일 12-11-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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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부터 온 사람, ‘아담’

창2:1~7

2012. 11/4 08:00, 11:00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 인간의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이다. 철학과 고고학, 생물학 등 여러 학문들이 인간의 기원을 밝히려고 애를 써왔고, 또 나름 결론에 이르거나 추론한 것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성경만큼 인간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7)는 것이다(옆으로 그림은 한자 흙 의 상형이다. 이는 흙으로 빚어진 사람의 모습).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동에 의해 창조된 것은 인간 밖에 없다. 다른 것들은 모두 말씀으로 지으셨다(창1:3,6,9,14 등). 아무튼 다른 것들을 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인간이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다. 특히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창1:27), 그를 창조세계의 관리자로 삼으셨다. 즉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에 있는 모두를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 2:15). 말하자면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인간의 근본은 흙이다.

그런데 이렇게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은 ‘흙’으로 창조하셨다(7). 그래서 아담이라는 이름도 히브리어로 땅(흙)을 의미하는 ‘아다마’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이 흙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장 나중에 창조하셨으니까 아담을 지으실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태였다. 그러니 하나님은 얼마든지 좋고 귀하고 강한 재료로 사람을 만드실 수 있었는데, 굳이 흔하고 값싸고 연약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우린 이 사실을 통해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다.

 

지금까지 복의 통로에 대하여 오랫동안 살펴보았는데, (이 주제로는 설교하지 않았지만)가장 중요한 복의 통로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사람을 통해 뜻과 계획을 보여주시거나 말씀하시고, 사람을 통해 사랑을 보여주시고, 사람을 통해 복도 주신다. 성경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 그리고 그들은 크게 복의 통로가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앞으로 ‘복의 통로가 된 사람’이란 주제로 성경에 등장한 인물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최초의 사람 아담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하는데, 아담은 온 인류의 조상이면서 ‘원형’(prototype)이기 때문이다. 원형(原型)은 제품을 찍어내는 틀을 말한다. 틀에서 찍혀 나온 제품은 그 틀과 같은 모양을 가진 것처럼 원형으로서 아담에게서 나온 인류는 아담의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아담을 알면 우리의 근본을 알 수가 있고, 복의 통로가 되는 삶 또한 알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아담은 복의 통로가 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고(창3:18), 노동의 의미가 바뀌었고(:19), 에덴동산을 잃게 되었고(:23), 나아가서 죄의 통로(롬5:16), 사망의 통로가 되었다(:17). 그 이유는 자신의 근본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흙처럼 되라!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아담의 근본은 흙이다. 그렇다면 왜 흙으로 아담을 지으셨을까? 이는 ‘흙처럼 되라!’ ‘흙처럼 살아라!’고 흙으로 지으신 것이다. 그러면 흙처럼 되고, 흙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자신의 연약성과 한계를 아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통찰에 도달하고 고도의 문명을 건설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믿음의 왕 다윗도 죽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도 죽었다.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징키스칸도 죽었다. 우리 역시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아무리 재주가 있고 가진 것이 많아도 별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그 근본이 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연약성과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철학의 역할을 영국의 작가 헉슬리(A. Huxley)의 「섬」이라는 작품에 나온 찌르레기와 같다고 했다. 이 새들은 매일 날아다니면서 ‘주의!’ ‘주의!’, 그리고 ‘여기!’ ‘지금!’이라고 외치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항상 인생의 종점(죽음)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삶에 충실하도록 돕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충실하게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신앙의 역할도 바로 이와 같다. 겸손하게 자신의 연약성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충실하게 현재를 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이 흙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영어로 ‘인간’(humanity)이란 단어와 ‘겸손’(humility)이란 단어가 어원이 같다는 점이다. 이 두 단어가 라틴어로 ‘흙’(humus)이란 단어에서 왔다. 사실 흙의 존재방식을 보면 항상 만물의 가장 밑자리에 존재한다. 모든 존재의 밑자리에 있으면서 그것들을 받쳐주고 붙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흙은 겸손의 상징이다. 때문에 흙이란 단어에서 겸손이란 단어가 나온 것이고,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흙은 많은 사람에 의해 밟힐수록 비싸다. 그래서 순천보다 서울이 비싸고, 농촌보다 도시가 비싸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흙처럼 되고, 흙처럼 살라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연약성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겸손을 통해 더욱 빛나게 되고, 더욱 가치와 존엄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이 복을 받고, 복의 통로가 되는 비결이다. 아담의 실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흙임을 망각하고, 연약성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죄의 통로, 불행의 통로, 사망의 통로가 된 것이다.

 

2.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다.

흙은 불평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그냥 있다. 흙은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고,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고 무엇이든 다 받아들인다. 받아들인 것이 생명이라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마음껏 뛰어놀며 살게 하고, 받아들인 것이 숨 끊어진 시체나 쓰레기라면 햇빛과 공기와 바람과 함께 푹푹 썩혀서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다. 더러운 물도 오염된 물도 다 받아들여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 나무을 심으면 나무를 받아주고, 씨앗을 뿌리면 씨앗을 받아준다. 그래서 나무로 더욱 풍성하게 하고, 씨앗으로 생명을 움트게 하여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아무튼 흙은 무엇이든 다 받아드려서 잘되게 도와주고, 잘살게 만들어 준다. 더욱 풍성하게 하고, 더욱 아름답게 하고, 더욱 새롭게 하는 것이 흙이다. 이 땅에 모든 존재들이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흙이 있고, 그 흙이 받아주기 때문이다. 만약 단 한순간이라도 흙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쓰레기천지, 오물천지, 냄새천지, 질병천지가 되어 더럽고 위험해서 살 수 없는 곳으로 금방 변하고 말 것이다. 사람의 근본이 흙이고, 그래서 흙처럼 되고 흙처럼 살라고 하는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하는 포용력과 수용성이 큰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사람의 자질과 역량을 판단할 때 그릇의 크기에 비유한다. 화물차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용량은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크기는 포용력과 수용성이다. 큰 산은 한 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泰山不辭土壤)고 했다. 그래서 큰 것이다. 큰 바다와 큰 강은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는다(河海不擇細流)고 했다. 그래서 넓고 깊은 것이다. 우리 모두 태산과 같고, 바다와 같은 사랑의 사람이 되자. 모든 것을 품어 변화시키고, 품고 사랑하는 흙은 모두를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닮았다. 사랑의 속성은 품는 데 있다. 미움도, 슬픔도, 한숨도, 원수까지도 다 품어준다. 이와 같은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화신이 되자.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복을 받고, 세상에 복의 통로가 되는 길이다.

 

흙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작자 미상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흙과 같이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하지 않는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을 내게 허락 하소서.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흙과 같이

얻은 것만큼 누군가에게 환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호미질 쟁기질하면 할수록 부드러워지는 흙과 같이

핍박받고 고난당할수록

겸손한 성품을 갖게 하소서.

모진풍파 극복하며 새 생명 키워내는 흙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 되게 하소서.

 

이름 모를 들풀에게 조차도 자기를 내어주는 흙과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자기 몸을 가르며 씨앗의 성장을 돕는 흙과 같이

주변 사람의 변화를 돕는

온전한 사랑을 베풀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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