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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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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345회 작성일 13-01-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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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수5:2~12

2013. 1/6. 11:00(신년주일, 개당기념주일, 성찬예배)

길갈의 중요성

 똑같은 시간인데, 젊은 사람들은 세월이 느리다고 말하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세월이 빠르다고 말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고 여겨지는 것을 보니 저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교회를 시작한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8년째가 되었다. 물론 그 간에 가슴을 조이는 아픔의 시간들도 많았지만 참으로 행복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나같은 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맙고, 또한 교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튼 여러분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게 되어 기쁘고 기대가 된다.

 

개당 둘째 주일(2005.1.9)에 오늘 본문으로 ‘길갈’이란 주제의 설교를 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그 주제로 설교를 준비했다. 그 이유는 금년이 첫 안식년을 보낸 첫 해이기 때문에 새로 교회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를 갖기 위해서다. 길갈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길갈은 요단과 여리고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작전 기지가 되었던 곳이다(4:19). 또한 가나안 정복전쟁 중에 일련의 사건들의 무대가 되었다. 그곳에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기념비를 세웠고(4:20).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할례를 받았고(9), 가나안에서의 첫 유월절을 지켰다(10). 광야에서 먹었던 양식 만나가 그친 곳도 길갈이다(11). 가나안 남부지역 정복작전도 그곳에서 지휘되었고(10:), 각 지파의 영토분할도 그곳에서 이뤄졌다.

 

길갈의 의미

길갈은 이렇게 하나님이 과거 애굽과 그 크고 두려운 광야로부터 구원하신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고, 하나님의 인도로 얻은 현재 승리의 증거가 되었으며, 장차 얻게 될 기업을 바라보는 곳이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 길갈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첫 안식년을 보내고 첫 해를 맞이한 우리교회에게 주신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불행이 굴러간 장소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한 가지 명령을 주셨다. 그것은 할례명령이다(5:2). 할례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됨의 표시로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지기 전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다(창17:9~14, 할례언약). 그런데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 동안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5:5). 그래서 서둘러 할례를 행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할례를 행한 후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곳 지명을 ‘길갈’이라 부르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9).

 

길갈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주신 최초의 지명인데, 이는 ‘구르다’, 또는 ‘굴러가다’는 뜻이다. 무엇이 굴러갔다는 말인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당한 모든 수치, 불행, 고통, 상처와 아픔이 굴러갔다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이라는 새 땅에 들어왔다. 그리고 할례를 받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에서 노예생활은 끝이 난 것이다. 노예로 살 필요도 없고, 노예생활의 아픈 상처를 부여안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돌을 굴려 보내듯 그렇게 노예생활의 모든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다 굴려버렸다는 것이다.

 

구속적인 의미에서 길갈은 예수님의 상징이다. 주님이 우리의 길갈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죄로 인한 죽음과 저주, 불행, 고통, 슬픔, 상처, 수치를 다 굴러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 것이 다 지나가고 새 것,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이다(고후5:17)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어두운 과거는 잊혀진 과거다. 우리는 과거에 발목 잡힌 인생이 아니라 나의 가나안을 개척해가는 인생, 나의 지경을 넓혀가는 인생이다. 노예의 인생이 아니라 주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다. 아직도 과거의 수치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 다 잊어버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선포를 하기 바란다. 또한 교회 역시 길갈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금년 한 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교회가 이곳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의 불행, 고통, 슬픔, 상처,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장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런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자!

 

전폭적인 신뢰와 맡김의 장소

할례의 의미는 나의 힘, 나의 지혜, 나의 능력을 꺾고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삶에 대한 결단이다. 길갈에서 행한 할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길갈이 어떤 곳인가? 요단강과 여리고성 사이에 있는 여리고성을 바로 앞에 둔 지역이다. 여리고성에는 당시 최강 군대를 가진 가나안 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진군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하는 성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싸워야 할 모든 장정들까지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다. 할례를 받고나면 최소한 3~4일은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만 한다(8). 만에 하나 이 때 적이 처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몰살을 당할 수밖에 없다(창34:). 그러니 길갈에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한 마디로 ‘날 잡아 먹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런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나 여호수아에게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나 누구하나 이의를 단 사람들이 없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이 사실을 그들이 몰랐겠는가? 그 명령이 얼마나 무모하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한 것이다. (물론 순종이 기적을 부르지만)사실은 순종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순종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기적이 일상이 된다. 이런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맡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 힘, 내 지혜, 내 능력보다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고 위대하다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광야생활이라는 영적 훈련에서 온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40년은 단순한 유랑생활이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을 훈련하는 연단의 시간이었다. 그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맡김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훈련의 결과가 길갈에서 증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도전이었다. 장차 여리고성 전투승리를 비롯한 가나안 정복전쟁의 승리가 이미 이 도전에서 결정이 난 것이다. 이것이 길갈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다. 길갈은 전폭적인 신뢰와 맡김의 상징이고, 이와 같은 태도가 되는 인생, 형통한 삶의 비결이다.

 

요단강과 여리고 사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에서 자꾸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게 했던 것이 애굽생활에 대한 향수였다. 광야생활이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애굽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애굽에 대한 기억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과정으로 40년의 광야생활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곳을 생각하고 생각나게 하는 출애굽 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고, 새로운 세대들만 가나안을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길갈에서 할례라는 전폭적인 신뢰와 맡김의 사건을 통하여 이미 과거(애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음을 확증해 주면서, 동시에 성공을 위한 새로운 출발의 기초가 되게 한 것이다. 아무튼 요단강과 여리고 사이에 있는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작의 장소, 성공적인 가나안 정복의 전진기지였다.

 

요단강과 여리고 사이에 있는 길갈은 우리 인생의 반영이다. 우리가 있는 자리, 있어야 할 자리는 길갈이다. 곧 주님이고, 그의 몸된 교회이다. 이것이 과거의 모든 악업(惡業)을 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리고 철저한 신뢰와 맡김이 형통의 비결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쪼록 주님 안에서 모든 수치와 불행이 굴러가고, 모든 일에 있어서 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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