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곁에 두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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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95회 작성일 25-09-21 12:33본문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시101:1~8
2025. 9/21, 11:00(성령강림 열여섯 번째 주일)
정치인의 거울
본 시편은 정치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시다. 종교개혁 당시 믿는 통치자의 책임과 시민정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마르틴 루터(M. Luther)는 이 시편에 대해 무려 80페이지나 되는 강해를 남기면서 본 시를 ‘정치인의 거울’이라고 불렀다. 모든 정치인, 곧 통치자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영국 왕 제임스 1세가 조지 빌리어스(G. Villiers)를 총애하여 버킹엄 공작으로 등용하였다. 그가 왕실의 인재 선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예견한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에게 본문 6~7절을 보내어 인재 등용의 기준으로 삼을 것을 충고했다. 물론 무능할 뿐 아니라 정직하지도 않았던 빌리어스는 이 조언을 무시했고, 궁정생활의 실패 후 결국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이컨이 빌리어스에게 조언하고자 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을 등용할 때, 혹은 지도자를 선출할 때, 특히 교회에서 지도자를 청빙하거나 선출할 때 이 기준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왕의 결심
본문은 다윗의 시로 왕으로서 다윗의 통치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데렉 키드너(Derek Kidner)는 본 시의 제목을 ‘왕의 결심’이라고 붙였다. 다윗이 왕으로서 자신의 통치 기준과 목표에 관한 자신의 결심을 본 시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윗의 결심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결심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2). 완전한 길을 주목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집은 물론 가정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왕의 관점에서 궁정과 나라를 의미한다. 다윗은 먼저 자신이 자기 가정이나 궁정이나 나라에서 완전한 길을 주목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완전한’은 히브리어로 ‘타밈’(תָּמִים)인데,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희생 동물이 흠이 없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한 것’ 혹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다. 영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integrity’(인테그라티)라고 주로 번역하고 있다. 이 영어 단어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기 쉽지 않기에 종종 영어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온전하고 나뉘지 않은 상태’, ‘정직하고 변하지 않는 확고한 도덕적 원칙’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완전한 길’을 주목하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여기시는 길을 주목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특히 ‘내 집 안에서’라고 말하는 것은 가정에서나 궁정에서,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길을 주목하며 살아야 한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그의 결심 둘째는, 인사정책(用人術)과 관련된 것이다. 일종의 통치원리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한 것처럼 사람을 잘 가려서 사용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다윗은 소극적으로 이런 사람은 결코 등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3). 비천하다는 것은 ‘악하고 쓸모없으며 무가치한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처럼, 다윗도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그리하겠다는 결심이다. 이런 사람이 어찌 정부에서 가치있는 공직을 수행할 수 있겠으며, 특히 인자와 공의에 가치를 두고 나라를 운영하는 다윗과 함께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다윗은 이런 자들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 5절에서는 이런 사람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5). 여기서 다윗은 사람의 성품을 입과 눈으로 설명한다. 입은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로 설명하고, 눈은 ‘마음이 교만한 자’로 설명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단호한 결심이다. 뒤에서 은근히 헐뜯는 행위는 은밀히 행해지고 서서히 확산되어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사람을 단지 등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멸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헐뜯는 일은 언제나 교만과 함께 간다. 그래서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로 이어진다. 눈이 높다는 표현은 교만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다. ‘마음이 교만하다.’는 말을 직역하면 ‘마음이 넓다.’인데, 이 말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스러운 마음을 가리킨다. 아무튼 다윗은 이런 사람을 분별해 낼 것이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런 자들을 참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7절에서는 거짓을 행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배척하겠다고 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거짓말과 행위는 다윗이 2절에서 말한 완전한 마음과 반대에 있는 자질이다. 이런 자들은 정부에서 어떤 역할도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8절이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8). 악인의 행악은 결국 예루살렘 성안 백성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악인의 존재는 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윗이 말하는 범위가 ‘내 집’(7)에서 ‘여호와의 성’(8)으로 향하는 것을 본다. 그는 사적인 영역(가정)에서부터 공적인 영역(나라)에서까지 인자와 정의가 가득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람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 말한 것이다.
함께 할 사람
이제 긍정적인 면에서 다윗은 이런 사람을 중용하겠다고 선언한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6).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등용하겠다는 것이다. 충성된 자는 신실한 사람이고, 완전한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길로 행하며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이다. 다윗은 그들(충성된 자들)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라고 강력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들로 내 곁에 머무는 협력자,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여 그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완전한 길’을 언급한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을 중용하여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길에 행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다윗이 항상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그래서 항상 유의하여 찾은 사람이다. 이는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 말이나 행동이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주님 역시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이런 사람과 늘 함께하시고, 또한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
형통의 비결
다윗과 그의 나라가 번영한 비결은 ‘함께’라는 단어에 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신 것이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삼하5:10). 그리고 다음은 충성스러운 사람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그가 결심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곁에 충성스러운 사람을 많이 붙여주셨다. 삼하23장 8절 이하를 보면, 다윗의 용사 37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혼자서 800명과 더불어 싸워 이긴 요셉 밧세벳를 비롯하여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고 하자 목숨을 걸고 블레셋 진영을 돌파하여 우물물을 길어 온 세 용사가 있다. 다윗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싸운 충성된 용사의 이름이 쭈욱 기록되어 있다.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구축했던 사람들이다. 다윗의 이면에 이렇듯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충성한 믿음의 용사가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 그와 함께했기에 인자와 공의를 실현하는 성공적인 인생, 성공적인 왕이 되었고, 나라를 성공적으로 세웠다.
인생은 혼자가 아니다. 함께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인간은 고독한 ‘섬’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광장’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을 풀이해 보면,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기대어 살고,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다. 이 말은 사람은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뜻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사실 모든 생명은 서로 의존되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곁에 있는 존재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그 사람에 의해 나의 존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주님이 함께하시는 삶, 주님께서 붙여주신 좋은 사람이 북적이는 삶, 더불어 누군가를 잘 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자!
관련링크
- https://youtu.be/F4AfzOwnICY 200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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