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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과 넘어짐, ‘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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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3건 조회 15,429회 작성일 13-05-2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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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과 넘어짐, ‘하와’

창3:1~6

2013. 5/26. 11:00(전교우 체육회)

영혼의 낚시꾼

 저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낚시로 잡은 고기를 먹는 것은 좋아한다. 어려서 비가 오는 날이면 형과 함께 냇가로 나가 형은 낚시로 고기를 잡고 저는 그 고기를 손질해서 초장에 찍어먹었다. 반면 형은 고기만 잡고 먹질 않았다. 먹지도 않을 고길 왜 잡냐고 농담처럼 물으면 '니가 좋아하니까 니 주려고 잡지' 하고 대답을 했는데, 그 형이 20여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고기를 먹을 때면 종종 형 생각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 그런데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낚시할 때 가장 신경 써야할 것이 ‘장소, 시간, 미끼’라고 한다. 물고기가 물 속 어느 곳에나 있는 것 같지만 사람처럼 다니는 길이 있고, 노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 낚시꾼은 물고기가 어디서 노는지를 예측하고, 물고기가 노는 장소에 낚시를 던진다. 시간도 장소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고기도 자는 시간이 있고 활동하는 시간이 있다. 주로 아침이나 저녁은 활동하는 시간이고, 한낮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러니 낚시도 물고기가 활동하는 시간에 해야 한다. 또한 미끼가 싱싱해야 함은 물론이고, 잡을 물고기의 대상에 따라 미끼도 달라야한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가 유혹에 넘어갈 만한 미끼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흔히 신자를 영혼의 낚시꾼에 비유한다. 죽음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혼을 죽이는 낚시꾼도 있다. ‘사단’이다. 사단도 영혼의 낚시꾼이다. 하지만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낚시꾼이다. 최초의 사람 하와가 바로 이 악한 영혼의 낚시꾼에게 걸려 무너졌다.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세상에 악의 통로가 되었다. 사단은 하와가 잘 가는 장소, 활동하는 시간에 맞춰 적절한 미끼로 그녀의 영혼을 낚아챘다. 사실 사단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안다. 우리가 잘 가는 장소,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잘 맞는 것을 미끼로 사용하여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유혹한다. 본문은 ‘모든 산 자의 어머니’(3:20) 하와가 이와 같은 전문적인 영혼의 낚시꾼 사단의 유혹에 걸려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혹의 통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하와를 통하여 이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아담과 함께 유일한 인간으로 지음을 받았고,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장소 에덴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살도록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단한번의 유혹으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 그녀를 통하여 태어날 인류,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저주아래 놓이게 하는 저주의 통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하와를 무너지게 했던 사단은 동일한 방법으로 성경의 인물들에게 접근을 했고, 오늘날에도 그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사단은 다음 세 가지 방법으로 하와를 유혹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우리가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1. 누구와 교제를 하느냐?

교제는 삶의 부록이 아니라 내용이다. 산다는 것은 교제하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교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교제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산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방식도 교제다. 삼위일체 신관이 이를 뜻한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는 이 교제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도 교제하는 존재다.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게 여기셨다(2:18). 그래서 하와를 아담의 돕는 배필로 창조셨다. 아담과 교제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뜻이다. 아담이 있는 곳에 하와가 있고, 하와가 있는 곳에 아담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서로 돕는 배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동료 인간과의 교제, 주변 환경과 교제할 수 있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것이 에덴의 삶을 누리는 비결이다.

 

그런데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교제의 실패에 있다.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 최초의 범죄자가 되고, 저주의 통로가 된 것도 여기에 있다. 아담과 함께 하지 못함이다. 아담과 함께 하지 못한 그곳을 사단에게 내어준 것이다(1).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고 했는데, 하와는 그 틈을 사단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자기가 교제하고 있는 사람의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을 닮는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란 말이 이런 이유에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시1:1)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혹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즉 함께 있지 않고, 틈도 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접근하면 이 또한 어쩔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는 요셉처럼 그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아무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하는 것이 곧 지키는 것이다.

 

2. 누구의 말을 듣느냐?

정신심리학자 하드필드(J. A. Hardfield)가 말이 사람의 육체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3명의 남성에게 보통 상태에서 약력계를 쥐게 했더니 평균 101파운드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말하고 쟀더니 겨우 29파운드에 불과했다. 평상시 힘의 1/3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당신은 강하다’고 말하고 쟀더니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 단지 말만 다르게 했을 뿐인데,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보다 긍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가 그 힘이 무려 5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는 사람은 듣는 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듣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을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잘못된 소리를 듣고 좇아가면 인생을 망친다. 이것이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또 하나 이유다.

 

사단이 자신에게 말을 걸도록 옆 자리를 허용한 것이 첫 번째 문제라면, 두 번째는 사단의 말을 들은 것이다. 뱀으로 변장한 사단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말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하/2:16 비교).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모함하는 말까지 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게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4,5). 결국 하와가 무너진 것은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말이나 듣고 따라가서는 안되다. 듣는 말을 잘 분별해야 한다. 바벨탑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인간의 악한 계획을 멈추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은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듣는 말을 분별할까? 믿음에 합당한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는가? 믿음을 세워주는가?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가? 긍정적인 말인가? 연약한 양이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는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기 때문이다(요10:4). 이것은 신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3. 무엇을 보느냐?

맹독성을 지닌 방울뱀은 특이한 방법으로 다람쥐를 사냥한다. 먼저 꼬리를 흔들어서 소리를 내면 나무 위에 있던 다람쥐가 그 소리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소리 나는 곳을 보게 된다. 그 순간 다람쥐의 눈과 뱀의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러면 다람쥐는 겁을 먹고 떨게 되고 뱀은 입을 쫙 벌리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떨던 다람쥐는 비실비실 중심을 잃고 나무 아래로 떨어져 뱀의 입으로 직행한다. 다람쥐가 뱀을 본 것이 문제였다. 물론 사단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하와의 마음은 이미 사단에게 점령되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선악과를 본 것이 결정적인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6). 듣고 무시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듣고 ‘보니까’ 평범한 그 나무가 사단의 말대로 ‘특별하게’ 보였다. 그 열매를 따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어도 안보면 된다. 그렇지만 듣고 보면 다람쥐처럼 하와처럼 된다. 이것이 하와가 유혹에 무너진 세 번째 이유다.

 

오감(五感)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각이 시각과 청각이다. 매일 눈에 보이는 것들과 귀에 들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보이는 것들, 즉 시각정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눈을 돌리면 끝없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내게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다. 그 보이는 것들이 내 사고를 지배하고, 판단과 행동을 지배한다. 탄광촌에 사는 아이들은 강물의 색깔을 까만색으로 칠한다. 매일 보는 강물의 색깔이 까맣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많은 시간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문제가 있다면 눈을 돌려 다른 것들을 보도록 행동해야 한다. 보는 것을 조정해야만 후회하지 않는 인생, 유혹을 극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시선을 항상 주님께 고정하고 살았던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모든 유혹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아담처럼 직접 창조한 인류 최초의 여인 하와는 여성의 심리와 속성을 대표할 만큼 여성의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허영심도 욕심도 많고, 현재보다 더 나아지고 싶고 높아지고 싶은 욕망과 호기심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공통된 성향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결국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따라 선악과를 자기도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범죄하고 말았다. 죄의 통로, 저주의 통로가 되고 말았다.

 

하와의 실패는 ‘잘못된 교제, 잘못된 들음, 잘못된 바라봄’에 있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한 고전적인 전략이자 중요한 무기이다. 이와 같은 전략과 무기로 사단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넘보고 있다. 이런 사단의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주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여 사단에게 틈을 보이지 않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에 마음과 귀를 항상 열어놓고 그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며, 유혹하는 세상 모든 것들에 눈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건하고 거룩한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댓글목록

장양식님의 댓글

장양식 작성일

고등학생인 딸이 어느 날 왜 남성들만 설교를 하느냐고 물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좋은 믿음의 본보기된 여성들이 많은데.....


그래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끝으로 창세기에 나온 남성들을 마치고


다시 창세기 앞으로 돌아가 중요한 여성들에 대한 설교를 하기로 했다.


 


아무튼 부족하지만 저의 설교를 잘 경청해준 지체들과


홈페이지를 통해서 만나는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설교자 되도록 더욱 말씀과 기도에 전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장양식 드림

주님사랑해요님의 댓글

주님사랑해요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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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예배가 없는 날이라서 말씀을 못 들어 많이 허전 했는데 홈피를 통해서 은혜 받습니</span><span style="font-size: 14px;">다</span>."

장양식님의 댓글

장양식 작성일

그런 믿음의 마음과 태도가 참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요행사에 모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지만


꼭 1부예배를 드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론 1부예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