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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천국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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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099회 작성일 17-02-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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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천국소망

마13:44

2017. 2/12. 11:00

희망이라는 약

1982년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 뇌암(腦癌)에 걸린 아이가 누워있었다. 이름은 숀 버틀러,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그는 의사로부터 ‘회생불가’판정을 받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야구를 좋아한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런타자 스테플턴의 열렬한 팬이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스테플턴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내 아들은 지금 뇌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열렬한 팬인 아들이 마지막으로 당신을 한번 보고 싶어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스테플턴은 그가 입원한 병원을 방문했고, 그는 눈을 번쩍 뜨며 반갑게 야구영웅을 맞았다. 스테플턴이 말했다. ‘숀, 내일 내가 너를 위해 멋진 홈런을 날려주마. 희망을 버리지 마!’ 다음 날, 스테플턴은 그와 약속을 지켜 홈런을 쳤고, 병상에서 이를 지켜본 그는 환호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의 병세는 완연한 회복기미를 보였다. 5개월 후에는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져 퇴원할 수 있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실을 연일 대서특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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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온 최초의 여성이 누군지 아는가? ‘판도라’(Pandora)이다. 제우스가 인간 세상을 벌하기 위해 대장장이의 신(헤파이토스)에게 만들도록 한 인간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탄생했다. 제우스는 신들의 선물이 담긴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를 생각 없이 행동하는 인간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미모에 홀딱 반해 결혼을 한다. 결혼해서 깨가 쏟아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판도라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온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제우스가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일까? 하지마라, 보지마라, 먹지마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더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아무튼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만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 온갖 질병을 비롯해서, 전쟁, 기근, 고난, 고통, 근심, 걱정, 시기 등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모든 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깜짝 놀란 판도라는 빨리 상자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그 때 미쳐 상자를 빠져나오지 못한 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희망’이다. 그래서 이 판도라의 상자는 당시 그리스인의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만 있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있어야 산다.

그렇다. ‘절망’이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악성종양이라면, ‘희망’은 그 암세포를 죽이는 명약이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ce), 즉 ‘희(소)망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희망이 있어야 살고, 희망을 먹고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세상 희망은 가짜라고 말씀하고, 그리스 신화는 인간은 희망을 가져야 사는데,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판도라가 희망을 상자 안에 가둬놓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찾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하니 가짜인 것이다. 성경은, 특히 오늘 본문은 우리가 정말 붙잡아야 할 참된 소(희)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2천 전 이 땅에 오신 때 이미 가져오신 나라, 그리고 다시 오실 때 완성될 나라, ‘천국’이다. 천국이 참된 소망의 근거다. 그래서 오늘은 ‘자나깨나 천국소망’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염려를 이기는 사람(Titedios)이 되게 한다.

옛날에 가장 안전한 은행은 안전하게 감출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한 것을 주로 땅속에 묻어두었다. 땅 속에 묻어둠으로써 도적으로부터, 그리고 빼앗는 자로부터 그것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런데 소유주가 그 장소를 말하지 않고 갑자기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포로가 되면 그것은 수세기 동안 땅속에 그냥 묻혀 있게 되고, 우연히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본문의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비유로 천국을 설명하셨다. 이 비유는 보화를 발견한 사람, 곧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 신학자가 초대교회 문서를 조사하다가 사도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이름들 앞에 ‘티테디오스’(Titedios)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름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로마 지하교회에도 여기저기 이 단어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티테디오스라는 단어는 ‘염려(근심,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가령, ‘티테디오스 장양식’은 염려하지 않는 사람 장양식이란 뜻이다. 당시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로마제국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다. 그 기간이 무려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소유를 다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생명도 위협을 당했다. 그래서 박해 때문에 지상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 무덤으로 사용하던 지하묘지(Catacomb)로 들어가서 살았다. 우리는 지금 안전하고 안락하고 풍요롭게 살면서도 근심과 걱정, 염려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는데, 그들은 모든 것 다 빼앗기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근심이 없는 사람, 걱정이 없는 사람, 염려가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본문에 나온 이 농부처럼 보배로운 천국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그 천국을 소망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핍박에 대한 두려움을 기쁨으로, 생활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기쁨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기쁨으로 변화시켜 찬송을 부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은 단순히 죽은 다음을 위한 준비만이 아니다. 현실의 삶에 낙심하지 않고, 현재적 상황에 무릎 꿇지 않고 초연하게 살 수는 힘과 능력이다.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이기게 하는 힘, 삶의 무게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다.

 

삶의 분별력과 결단력을 준다.

또한 천국을 소망하는 삶은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는 비결이다. 어느 다이아몬드 전문가 이야기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고를 때 먼저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다이몬드 반지를 들여다본 다음 골랐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 다이아몬드 반지는 순수한 다이몬드입니다. 이것을 자주 보지 않으면 쉽게 분별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라도 순수한 다이아몬드를 자주 보지 않으면 분별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다이몬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 진짜를 알면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올바른 기준을 가지면 분별과 결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은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과 결단력을 준다. 본문의 이 농부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자신의 모든 소유를 내려놓을 수 있는 분별과 결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천국소망 때문이다. 보배로운 천국을 발견하니까 세상 것들이 보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을 갖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C. S. 루이스는 말했다. ‘만일 당신이 교회사를 읽는다면, 현세를 위해 가장 힘쓴 사람들이야말로 내세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로마제국을 회개시킨 사도들, 중세를 건설한 믿음의 위인들, 노예제도를 철폐한 영국의 복음 전도자들, 이들 모두가 이 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그들의 마음이 천국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는 천국에 대해 생각하기를 중단할 때부터 이 땅에서 힘을 잃게 된다.’ 천국소망은 강한 중력으로 우리를 잡아당겨 우리 삶을 견고하게 만든다. 오직 그것만이 이 땅에 발을 딛는 데 필요하며,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영적 견실함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천국소망은 바벨론 포로생활과 같은 세상살이에서 듣는 고향소식이고, 선한 행실을 지속하도록 용기와 힘을 북돋는 복된 소식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온갖 아름다운 것과 웅장한 것들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된다.

 

이소산금(二疏散金)

이소산금(二疏散金)이란 고사가 있다. 소광(疏廣)이란 사람과 그의 조카 소수(疏受)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소광과 소수는 중국 한(漢)나라 때 태자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이미 부와 명예를 보장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광이 조카 소수에게 말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욕된 일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知足不辱, 知止不殆). 이제 그만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자.’ 소수는 삼촌의 말에 쾌히 동의했고, 두 사람은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향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황제가 내려준 황금을 이웃을 초대해 매일같이 잔치를 베풀고 즐기면서 나누는 데 썼다. 이를 보다 못한 한 이웃이 그 돈으로 자손을 위해 논밭을 사두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소광이 이렇게 답했다. ‘우리 집안은 이미 자손이 열심히 가꾸기만 하면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땅이 있소. 거기에 재물을 더하면 게으름만 가르치게 될 것이요. 현명한 이가 재물을 많이 가지면 그 뜻이 손상되고, 어리석은 이가 재물을 많이 가지면 그 과오가 더 늘어날 뿐이오. 여기에 부자는 원래 사람의 원망을 쉽게 사니, 나는 자손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원망 듣는 것을 원치 않는 다오.’ 이처럼 소광과 소수가 황제에게 받은 재물을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쓰지 않고, 주위 사람과 함께 나눴다는 말에서 ‘두 소씨가 황금을 뿌리다.’는 뜻의 이소산금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요즈음 상식과 가치로 이해가 안 되는 처신이다. 왜 그들은 이런 바보스런 결단을 하였을까? 그들이 자신의 소망을 ‘소유’가 아닌 ‘존재’에 두었기 때문이다.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것에 두었기 때문이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도 이와 같다. 세상 것에 죽자 살자 목매지 않고, 아쉬워하지도 않고, 마음 빼앗기지도 않는다. 기죽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삶에 지분(知分), 지지(知止), 지족(知足)하면서 초연히 살 수가 있다. 날마다 천국을 사모하며 소망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죽어도 내가 눈을 뜨는 곳은 천국이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품인 것을 확실히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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