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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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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414회 작성일 17-04-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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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5:27~32

2017. 4/23. 11:00

복음의 돌직구

요즈음 2017년도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진행되고 있다. 야구용어 중에 ‘돌직구’라는 말이 있다. 삼성구단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오승환 선수(현재 미국에서 활약)가 던지는 직구(直球)를 가리켜 시작된 말이라고 한다. 직구로 던지는 그의 공이 돌처럼 묵직해 보여 칭찬하는 별명이었다. 그는 타자의 실력과 자세를 무시한 채 오직 자신의 공의 위력만 믿고 던졌더니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타자들이 오승환 선수의 공을 알고도 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워낙 강한 정신력으로 나오니까 타자들이 거기에 압도를 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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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이 관계용어로도 사용이 되고 있다. 말을 할 때 돌려서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제대로 말하는 것을 ‘돌직구’라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솔직하고 시원시원하다고 말한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이런 돌직구 화법(표현)이 통할 때도 있지만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성도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누구에게나 ‘복음의 돌직구’를 날릴 수 있는 강심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음의 돌직구를 날릴 수 있어야 한다(마사이족 선교사 일화). 본문에 나온 사도들이 좋은 본보기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그들을 감옥에서 탈출시켜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본문 앞부분 상황). 그리고 다시 체포가 되어 유대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 앞에 서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 이 때 사도들은 그들에게 시원한 복음의 돌직구를 날렸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29~32).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이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말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이자 자신들의 분명한 입장표명이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이 말로 큰 화를 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혜로운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중재로 간단한 태형(笞刑)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이 때 태형을 당하고 풀려난 사도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면서 감동적이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41). 매를 맞고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특권과 영광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믿음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라,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히11:38). 우리도 이런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자!

 

증인이 된다는 것

본문은 성도와 교회의 존재이유,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그것은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32).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우리의 왕이요 주(主) 되심을 선포하는 일이 사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곧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이고, 또한 복음의 성격이다. 복음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그것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본문에 나온 사도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고(19), 권력으로부터 위협을 당했고(28), 매를 맞았다(40).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이렇게 여러 가지 불이익과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인’(μαρτυς)이란 헬라어 단어에서 ‘순교자’(martyr)란 영어 단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포스트에 의하면, 2016년도에 6분마다 1명 씩 총 9만 명의 성도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다(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간 90만 명에 달한 성도가 순교를 당함)고 했다. 심지어는 성경을 들고만 다녀도 총격을 당하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 모두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상황에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성도는 이런 상황에서 복음의 돌직구를 던지며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전도를 헌금과 함께 가장 부담스러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취미삼아, 혹은 마음의 위안과 위로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전도가 사명이고, 여러 불이익과 고난까지 감수하면서 전도해야 한다고 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큰 교회는 사람이 많으니까 묻혀갈 수 있는데, 작은 교회에서는 그것도 안 되니 더욱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각자 개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결코 묻혀서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어디에서든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반드시 실천을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한 사람에겐 큰 복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다보니 거룩한 부담 때문에 증인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작은 교회 다닌 것이 더 복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하기 바란다. 어디 전도뿐이겠는가? 기도도, 섬김도, 예배생활도 작은 교회라는 거룩한 부담감 때문에 잘하게 되었다면 이처럼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가장 강력한 증거는 삶이다.

시편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라고 했다. 이는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이 잘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선포하고 드러내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만의 빛깔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보게 한 것이다. 작년 초여름에 포도나무 고목을 구해다가 화분에 심었는데, 올해 그 가지들이 연분홍의 예쁜 싹을 틔워 이제 제법 잎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옆에 작은 은행나무를 김영상 형제가 분을 만들어주었는데, 겨울 내내 헐벗고 있던 그것도 우리 다애의 손바닥처럼 예쁜 이파리를 뿜어내고 있다. 작은 무화과나무도 마찬가지다. 살아있기에 이렇게 자신의 살아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신자됨을 드러내는 증거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증거하는 삶을 사명 운운하며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고, 또한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인데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으려고 하면 먹여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해야 할 증거하는 생활을 우리가 잘 실천하지 못하니까 성경도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때로는 설득하기도 하고,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령하기도 하여 이 일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모쪼록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자녀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보다 강력한 증거는 없다.

 

영국의 어떤 무신론자가 탄광촌을 방문하여 광부를 상대로 강연을 하였다. 그는 성경은 신화와 전설을 모아놓은 책이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은 상상의 허구일 뿐이며, 기독교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의 강연은 광부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그가 강연을 끝냈을 때 한 광부가 무리 앞에 서서 말했다. ‘저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사님의 주장에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네요. 그런 제가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막장에서 목숨걸고 번 돈은 항상 술집에 다 바쳤고, 집에만 들어가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행패(行悖)를 부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예수님 이야기와 죄와 술로부터 구원하시는 그의 능력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구원해주시라고 기도했고, 예수님은 저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저가 이렇게 변하니까 지옥 같았던 우리 가정은 천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사실은 이곳에 있는 저의 동료들이 증인입니다. 강사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강사는 한 마디도 못하고 입을 다물 뿐이었다.

 

집 주인이 바뀌면 집이 바뀐다. 가구도, 인테리어도, 분위기도 모두 바뀌게 된다. 우리 인생도 주인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부활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우선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인하여 변화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증거하는 삶이다. 우리의 삶이 증거가 되어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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