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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라면(0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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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8,923회 작성일 06-02-13 16:00

본문

주와 함께라면
수14:6~15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인간과 하나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질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나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물학적(자연적인) 나이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먹게 되는 나이입니다. 다른 하나는 관계적인 나이입니다. 남이 보는 나이입니다. 주변에서 자기 나이보다 적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가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거나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관계적인 나이입니다. 그리고 정신적 나이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처럼, 정신적 나이는 마음 가진, 혹은 삶의 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나이는 많지만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신적으로 청춘입니다. 반면에 이상도, 열정도, 정열도 없이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늙고 병든 사람입니다. 이 중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정신적인 나이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늙어짐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노인이 받는 할인 혜택을 받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런 생물학적인 나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사랑의 운동을 직접 실천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지역까지 와서 이 일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분쟁이 있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분쟁을 해결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권좌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영예를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물리적인 나이를 극복하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며 사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이 나이에 맞게 살되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것, 청년 정신으로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복된 삶입니다. 이는 살면서 삶의 성취를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85세 된 노인, 그렇지만 청년 정신으로 만년 청춘의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할 땐 모세를 도왔고, 가난안 정복 시기엔 여호수아를 도와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이 갈렙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갈렙은 만년 조연(助演)의 삶을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연에 주목하지 조연에는 관심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연이 없는 주연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연과 조연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때때로 훌륭한 조연으로 인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빛나는 조연’ 운운합니다. 본문의 갈렙은 평생 조연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멋있고 훌륭한 빛나는 조연이었습니다. 모세를 도와 광야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성공시킨 사람입니다. 모세를 모세 되게 하고 여호수아를 여호수아 되게 한 사람입니다. 즉 리더를 리더 되게 한 리더였습니다. 갈렙은 오늘날 교회에서 평신도 사역의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록 갈렙의 역할은 조연이었지만 모든 신자들이 선망하는 믿음의 용장(勇壯)이 된 것입니다.

2. 갈렙은 환경을 극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갈렙이란 이름은 ‘개’라는 뜻입니다. 그는 순수 이스라엘 혈통이 아닙니다. 그는 에돔 땅에 거하는 이방인 그니스 족속의 후손입니다(창15:8-12). 아마도 그의 출신을 두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사이에 붙여 사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이런 수치스런 뜻을 가진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이스라엘의 12정탐꾼 중 유다 지파의 대표로 뽑힙니다(민13:6).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 지파에 속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방 혈통으로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과 인정받은 삶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의 믿음이 인정을 받아 여호수아와 함께 출애굽 세대 중 광야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정복을 성공시키고, 가나안 땅 중에서 가장 험하고 그 거민들이 강하여 정복을 포기했던 땅 헤브론을 정복합니다. 그래서 훗날 다윗 왕국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개처럼 취급받은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출신과 85세의 나이로 거인 족 아낙자손을 물리치고 헤브론를 정복하여 자신의 나이를 멋지게 극복했던 사람입니다.  

3. 갈렙은 도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제 제비뽑기를 통해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참이었습니다. 산지와 농지가 있고, 정복지와 미정복지가 있는 상황에서, 각 지파들은 좋은 땅, 힘들지 않는 땅, 보다 넓은 땅을 원했습니다. 실제로 땅 분배를 놓고 지파 간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땅 분배 전에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합니다. 이 산지는 헤브론 산지입니다. 그곳은 가나안의 거인족 아낙자손이 견고한 성을 쌓고 버티고 있는 해발 927m의 천연요새였습니다. 45년 전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이들을 보고 기가 죽었었고, 지금도 여전히 미정복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험악한 땅, 아직 정복도 되지 않는 땅을 요구한 것입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중 여호수아 다음의 어른이었고, 공헌자였습니다. 좋은 땅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좋은 땅을 차지한다고 하여 불평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와 같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정복지를 향한 도전을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갈렙은 왜 정복도 어렵고, 산지인 이곳을 요구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12, 9)때문입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말씀의 성취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전정신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는 그렇지 않고 도전정신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앉아서 편히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한 뼘이라도 더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살아서 자기 손으로 직접 성취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의 마음과 삶의 태도가 나이를 뛰어넘어 도전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렙으로 하여금,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게 했던 힘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12절의 말씀이 이를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이는 갈렙의 삶의 근거가 되었던 말씀입니다. 갈렙으로 하여금 출신과 나이와 같은 그의 환경을 극복하고 도전하도록 격려했던 말씀입니다. 여기에 갈렙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두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이 두 단어가 빛나는 조연, 환경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한 핵심(key-word)입니다.

1. ‘혹시’입니다.
‘혹시’는 가정법에 사용되는 부사입니다. 가정법은 일반적으로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가정과 의심, 상상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이 때 혹시는 ‘만약’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혹시는 ‘정녕, 반드시’의 의미입니다. 이 혹시는 소망과 확신으로서의 ‘혹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자신과 함께 하시리라는 확신과 소망, 반드시 아낙 자손을 쫓아내리라는 확신과 소망, 그리하여 헤브론 땅을 회복하리라는 확신과 소망을 의미합니다.

소망과 확신! 이것이 갈렙으로 하여금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게 했던 원천입니다. 그는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동일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믿음을 잃고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에게 이 소망과 확신으로 위로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 이는 우리 신자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 삶의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것은 허풍도 자기 암시도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런 소망과 확신은 어디서 올까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2. ‘함께’입니다.
갈렙이 애굽을 나올 때 그의 나이가 37,8세였습니다. 그 후 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세를 도우면서 갖가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했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비롯하여,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내고, 기적의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40년 동안 계속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가 절실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소망과 확신의 ‘혹시’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습니다(8,9,14). 그리고 그는 아낙자손이 아무리 강하고, 그들의 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도전한 것입니다(12).

성경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에녹은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인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 노아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홍수 심판에서 유일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들 외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 그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 40일 동안 특별 새벽예배 시간에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도 우린 이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죽은 사람이 살아났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졌고,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게 되고, 소경이 보게 되고,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갈렙은 결국 아낙 자손을 섬멸하고 헤브론을 정복합니다(:14).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은 결과입니다. 평생 많은 실패를 경험한 링컨의 좌우명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이었습니다. 이 신앙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했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미지근 무관심한 사람, 도피적 부정적인 비판적인 사람,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능동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마28:20)을 믿고 도전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갈렙의 삶은 우리교회와 우리가 직면한 삶에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우리에게도 도전해서 정복해야 할 아낙자손과 헤브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아낙 자손은 구누이며, 헤브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로일수도 있고, 생업일수도 있고, 자녀일수도 있고, 가정문제일수도 있고, 건강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주와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와 함께라면 넘어설 수 있고, 주와 함께라면 뚫고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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