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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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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5,728회 작성일 22-08-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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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연결

15:1~11

2022. 8/21. 11:00

새로운 사회적 질병, 외로움

사회적으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혼밥’, ‘혼술’, ‘혼영’, ‘혼여’, ‘혼캠등 혼자서 일상을 즐기는 문화가 익숙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혼자서 즐기는 문화는 동시에 외로운 감정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의 외로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한국임상심리학회가 발표한 우리나라 고독(외로움)지수가 100점 중 78점으로 나왔다. 학자들은 외로움이 정신적 문제 및 사회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 우울증, 자살, 고독사, 일중독, 악성댓글, 혐오범죄 등을 유발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외로움이 심각한 새로운 사회적 질병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사회의 외로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새로운 사회적 질병인 외로움은 공허감과 고독감을 심화시키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관계재()’라는 재화획득을 어렵게 만든다. 관계재(關係財)란 인간관계에서 얻어지는 무형의 재화를 뜻하는데,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여러 면에서 외로움이 불러오는 문제가 불거지고, 사회적 해결비용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외로움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 외로움을 국가적적 문제로 인식하여 20181월에 정부에 외로움부처를 신실하고,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였다. 세계 최초 외로움(고독)가 탄생한 것이다. 외로움이 생존과 생활(존재와 삶)을 위협하기에 영국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외로움을 사회적 전염병으로 보고 국민의 외로움을 국가적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더욱 귀감이 된 것은 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보수당 정부가 추진했다는 점이다. 여야가 하나가 될 정도로, 외로움과의 싸움에 함께 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그후 일본에서도 영국을 벤치마킹하여 고립(孤立)를 신설했다.

 

외로움의 치유책, 연결

이 외로움의 시기에 덜 외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외로움을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과 더 많이 접촉하여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느 글을 보니 치매와 같은 질환이 생기는 이유를 뇌기능의 비활성화 때문이 아니라 뇌 각 부분의 연결(link)감소 때문이라고 했다.연결이 감소하거나 연결이 끊기면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병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몸의 병뿐만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질병인 외로움이 생긴 이유도 연결 끊김(관계단절)에 있다. 그래서 연결이 외로움을 치유하는 최선책이라고 한 것이다. 하바드 경영대학 전략담당 교수 바라트 아난드가 쓴 콘텐츠의 미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는 함정에서 벗어나 연결 관계를 키워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고의 콘텐츠,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업에서도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이슈가 되는 구호가 인생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랑!’이다. 소유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뜻이다.

 

신앙생활도 연결이 중요하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은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연결,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와 그 교회 지체인 성도와의 긴밀하고 돈독한 연결에 있다. 우리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 공동체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신관’(三位一體 神觀)이 이와 같은 우리 기독교의 특징을 잘 대변해준다. 삼위일체는 삼위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의 공동체적 연합(상호내재, 상호순환, 상호침투)을 표현하는 그림언어다. 이뿐만 아니다. 성경에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 주님과 교회의 관계, 교회와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들도 좋은 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목자와 양, 몸과 몸의 지체, 포도나무와 가지관계 등등. 이 모두가 강한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여느 종교보다 공동체를 강조하여 함께 모이고, 서로 연결하는 연합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외로운 시대를 치유하고, 외로움을 치료하는 해결책이 있다.

 

더 풍성한 생명을 얻으려면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 하려는 것이라.’(10:10). 주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10:11)오셨는데,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양들로 생명을 얻는 것을 넘어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춥지 않다고 따뜻한 것은 아니다. 어둡지 않다고 밝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 없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다. 생존하는 것과 생명을 누리는 것은 같지 않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존을 넘어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주님은 자녀된 우리가 자신의 삶을 100% 충분하게, 풍성하게, 넘치도록 살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는 삶을 넘어 선을 행하는 삶, 질병이 없는 삶을 넘어 건강한 삶, 생존을 넘어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로 그 비결을 본문이 보여주고 있다.

 

본문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 이 비유는 가지가 나무와 절대 의존관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주님께 절대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지인 우리가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려면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주님과의 연결을 의미하는 거하다는 동사를 9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연관어까지 합치 훨씬 많다. 바로 이것이 풍성한 삶의 중요한 원리다. 가지는 홀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생명도 유지할 수 없다. 반드시 나무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하고, 많은 열매를 맺고, 주인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주님께 연결되어야 영생을 얻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다. 은혜의 주님께 연결되어야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되고, 능력의 주님께 연결되어야 능력 있는 삶,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의로우신 주님께 연결되어야 의의 열매가 가득한 의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 거룩하신 주님께 연결되어야 거룩한 존재로 거룩한 일상을 살 수가 있다. 아무리 값비싼 전기전자 제품도 전기연결이 끊기면 무용지물이 된다. 우리 인생도 신앙도 마찬가지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4,5).

 

주님 연결된 삶을 위하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 이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방법, 곧 주님께 연결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계명이 무엇일까? 이는 주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말씀과 더불어 사는 것이 주님과 사는 것이고, 말씀 안에 있는 것이 곧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항상 말씀과 연결된 삶이 주님과 연결된 삶이다. 말씀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 하고, 말씀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시야를 작곡한 헨델은 음악에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당시 대중성이 없어 그의 곡을 연주할 때 항상 관객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상처는 컸고, 이런 그의 상처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가벼운 중풍까지 걸린 상태였다. 어느 날, 음악가들이 모이는 파티에 갔다가 입장을 거절당하고는 너무 서러워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거닐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누군가 메시야란 제목과 함께 성경구절을 적어놓은 쪽지가 있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40:1,2).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외로움이 사라지고 대신 큰 영감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철저한 외로움 가운데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주님, 온 인류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골고다에 오르신 주님의 생애를 음악으로 표현하기로 결심하였다. 22일 만에 메시아를 작곡했다. 말씀을 통해 그의 마음이 주님과 연결이 되고, 주님과 연결이 되고 보니 그 외로움이 창작의 원동력으로 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이 우리를 주님께 친밀하게 연결시켜준다. 이외에도 기도와 예배도 주님과 연결된 삶으로 이끄는 중요한 도구다.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매일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예배생활에 집중한 사람은 주님과의 핫라인이 구축된 건강한 성도다. 이런 사람에겐 외로움의 시간도 가장 영광스러운, 창조적인, 기쁨의 시간으로 변화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우리의 뇌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신경회로가 있다. 특정한 목적이 없는 행동을 할 때, 간단히 말해 멍하니 있을 때 이 신경회로가 작동해 머릿속을 정리한다. 그러면 뇌의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의성이 활성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에도 영적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순간이 필요하다. 가끔 세상의 흐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감각적으로, 정욕대로, 비판적 성찰 없이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는 마치 과부하로 전기의 연결이 끊어져 모든 전기제품이 먹통이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니까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시각, 관점, 가치관의 자리에서 잠시 멈추고, 떠나고, 끊어내야 한다. 그래야 영적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영적 연결이 좋아지고,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삶의 목적, 방향, 행동이 새롭게 정리가 될 것이다.

 

건강하고 경건한 신앙은 내 곁에 주님이 계시고, 그 주님이 나를 편들어주시고, 나를 품어 주시느냐가 결정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 , 의 가치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치는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에 있다. 주님과의 건강한 로그인(log-in)을 위해서는 세상과 세상적인 것들, 곧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하여, 지난주일 말씀드린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와 걱정에 대하여 로그아웃(log-out)해야 한다. 그래서 영적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주님과 연결을 리모델링하여 주님과 연결이 깊은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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