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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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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173회 작성일 23-01-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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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

왕상3:9~10

2023. 1/22. 11:00

사랑은 잘 듣는 것이다.

딸만 6명인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6명이고 인형은 하나라 누구에게 주어야할지 난감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말했다. ‘오늘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주겠다.’ 그 말을 듣자 여섯 딸이 하나같이 소리쳤다. ‘에이! 그러면 아빠 거잖아!’ 아이들 보기에 아빠가 엄마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으로 보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면 그 가정이 행복한 이유는 충분다고 본다. 행복은 서로의 말을 잘 듣는데 있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잘 듣는 것이다. 귀를 기울여 잘 듣는 것이 사랑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말을 잘 들어준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준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자는 백성의 소리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아름다운 삶은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이다. 잘 들어주면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주는 삶에는 행복이 찾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은 내가 좀 더 들어주자!’는 태도다. ‘잘 들어주는 삶알아주는 삶을 비롯해서 붙들어주는 삶, ‘만들어주는 삶도 있다. 잘 들어줄 때 사랑하는 대상은 견고한 인생으로 세워져간다.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 배로 하고, 입보다 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높이고 존중할 때 행복은 결코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차는 휘발유로 움직이고, 몸은 먹는 음식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정신은 듣는 소리로 움직인다. 그래서 말에는 각인(刻印)력과 견인(牽引)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잘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정신의 키를 크게 만든다. 정신의 키가 작은 사람은 ‘No!’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반면에 정신의 키가 큰 사람은 ‘Yes!’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잘 듣고 많이 듣고 자주 ‘Yes!’를 하는 사람이 복되다. 잘 들어주면 이해의 폭도, 친구의 폭도, 관계의 폭도, 인생의 폭도 크고 넓어진다.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이 기브온 산당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신정국가에서 왕이 되었으니 의례적으로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행사에 앞서 예배를 드리고, 혹은 국민의례를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4). 이는 의례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일천은 천 번이 아니라 많은 양을 뜻하는 것으로(대하1:6), 엄청난 양의 제물로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그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다는 것, 곧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정성에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다(5).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도 놀라운데 구하는 대로 줄테니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소위 백지수표를 내미신 것이다. 그만큼 솔로몬의 태도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바로 본문이다. ‘누가 주의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9,10). 하여간 솔로몬은 드린 예배도, 드린 기도도 하나님을 감동하시도록 했다. 정성스러운 예배에 감동하여 무엇을 줄지 구하라는 응답을 받았고, 기도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는 부귀와 영광도주셨다(13). 우리 또한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예배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자가 되자!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여기서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잘 들을 수 있는 태도를 달라는 것이다. 듣는 마음을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라고 한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듣는다(hearing heart)는 뜻이다. , 마음을 다해 듣는 것이다. 물론 우리 신체에서 듣는 기관은 귀다. 그런데 듣는 귀라 하지 않고 듣는 마음이라 한 것은 들음의 태도를 강조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성경에서는 이를 지혜로운 마음으로 번역을 했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지혜라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틀린 번역이 아니다. 자주 듣고 많이 듣고 잘 듣는데서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태도는 들음이고, 들음을 통해 지혜자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알다시피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압살롬과 아도니아에 이은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치른 후였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솔로몬으로는 왕좌가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안위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그 중에서도 백성의 소리에 민감한 태도를 구하도록 만든 것이다. 좋은 지도자는 잘 듣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래야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공감할 수가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말이다.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상대방이 차마 하지 못한 말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3의 귀(The third ear)로 듣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업도 원리가 같다. 잘 들으면 회복되고 형통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이란 영성가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예수님은 온 몸이 귀였다!’ 이는 주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온 몸으로 들으셨다는 뜻이다혼신을 다해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그래서 누구도 듣지 못한 세미한 소리까지 다 들으셨다사실 주님은 온 몸이 귀였을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눈이었다주님은 온 몸으로 듣고 온 몸으로 보시는 분이시다그래서 주님은 모든 소리를 다 들으시고모든 상황을 다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성도는 주님을 따르는 주님 따르미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닮아야 한다. 우리 또한 주님처럼 온 몸으로 듣고온 몸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잘 듣고잘 들어주는 사람그가 바로 우리가 되었어야 한다.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기독교는 들음의 종교이고, 들음의 영성을 강조한다. 성경에 들음과 관련된 단어가 500번 이상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영성이 깊은 사람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에 열중한다. 듣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작은 소리,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민감하게 잘 듣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노만 아우구스틴은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비난은 들어도 너무 많이 듣는다는 비난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말은 적게 할수록 좋고, 많이 들을수록 좋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그렇다. 많이 하는 것보다 많이 듣고 잘 들어야 한다. 아무리 열심이 있고 충성하여도 주님의 음성 듣는 일에 민감하지 못하면 그의 삶과 사역은 주님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신앙생활의 첫 걸음은 들음에서 시작이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집에서 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는 사람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은 아니다(삼상3: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된다(삼상3:9).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사람의 종이 되고,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의 종이 된다(8:47). 그러므로 우리는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사람이 되고(10:3),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고,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 듣는 것이 생명과 복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4,25). 아무튼 우리 영혼이 살게 되고(55:3), 알게 되고(24:31), 믿게 되고(10:17), 행하게 되고(7:24), 또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13:8)이 모두 들음과 관련이 있다.

 

귀가 열리면

전투기를 몰고 월남한 이웅평 대위를 기억하는가?(1983) 그가 남쪽으로 넘어오게 된 동기가 참 특별하다. 그는 우연히 원산 앞바다에서 파도에 밀려온 비닐봉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회사의 라면봉지였다. 그는 그 봉지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남한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봉지에서 읽은 글이란 제조년//, 내용물에 첨가된 재료들과 함유량, 조리방법, 유효기간, 그리고 변질된 것은 교환해준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위치와 장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변질된 것은 교환해준다는 글에서 남한이 어떤 사회인지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월남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버려진 라면봉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게 되고, 거기에 자기 인생은 걸었던 것이다. 눈이 열린다는 것, 귀가 열린다는 것, 마음이 열린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일상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발견하거나 음성을 듣거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이웅평 대위는 하찮은 라면봉지를 통해서, 거기에 적힌 고시적인 글자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만큼 소중한 가치를 발견했고,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의 말씀을 보고 듣고 공부하면서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것은 아직 우리의 귀가 닫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해에 귀가 다시 새롭게 열리도록 애가 타도록 부르짖자.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그래서 주님처럼 온 몸이 귀가 되어 잘 듣고잘 들어주는 영성이 깊은 성숙한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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