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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음의 원리로서,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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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119회 작성일 23-03-2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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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음의 원리로서, ‘절제

15:1~2

2023. 3/26. 11:00

가지키기

봄이 오면 나무를 돌보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무의 가지를 쳐주는 일이다대부분 나무는 여기 저기 한껏 가지를 내뻗는다나름대로의 생존본능이지만 이를 방치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특히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다른 나무에 비해 과실수는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가지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틈새를 두지 않고 뻗어간다물론 가지 많은 나무의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꽃망울 자리마다 다닥다닥 붙은 열매는 보기에도 좋지 않다한 뿌리에서 뽑아 올린 양분이 한계가 있어서 열매도 작고, 자칫 나무까지 버릴 수가 있다. 튼실한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가지를 쳐주고, 열매를 따주어야 한다가지치기는 나무의 모양새, 나무의 아름다움, 그리고 열매의 질을 결정한다.

 

 

열매를 준비하는 나무는 꽃을 남김없이 다 떨어뜨린다. 꽃을 아까워하다가는 열매 맺을 시기를 놓치기 때문이다. 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로 가고, 나무도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버려야 더 새롭게 더 많이 채울 수가 있다. 이것이 가지치기의 원리이자 모든 존재의 원리이기도 하다.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R. Feynman)의 말이다. ‘현상은 복잡하나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라. 핵심을 잡으려면 버려야할 것을 골라서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핵심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 버린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미국, 노벨상 수상자).

 

 

내 안의 가지키기

가지치기든 줄기치기든 나무치기든 쳐주어야 한다쳐내야 가지가 살고쳐내야 줄기가 살고쳐내야 나무가 살고쳐내야 숲이 산다살아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그렇지 않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꼴을 면치 못하게 된다(21:19). 영성은 심기에서 키우기, 그리고 치기로 이어지는 과정이다심는 영성도 필요하고가꾸고 키우는 영성도 필요하지만 결국 치는 영성으로까지 가야한다치는 것은 쳐내는 것이며, 내치는 것은 일종의 키질과 같다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도록 하는 키질이다영성이 성장이고 성숙이고 온전이고 거룩이라고 한다면 어찌 치기키질’ 없이 이러한 상태가 가능할까영성은 이러한 작업이 내면에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가지치기를 하듯 내가 나를 치는 것이다줄기치기를 하듯 내가 나를 치는 것이다나무치기를 하듯 내가 나를 솎아내는 것이다. 키질을 하듯 내가 나를 골라내는 것이다이 모두를 절제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절제를 통해 가지로 살고줄기로 살고나무로 살고, 숲으로 산다. 알곡으로 산다. 이것이 영성이다. 그러므로 영성은 살기 위한 몸부림인데, 절제가 필수과정이다

 

내 안의 가지치기라는 점에서 으뜸이 되는 성경인물로 단연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다나무가 해마다 가지치기를 한다면 바울은 그 일을 날마다한다고 했다그의 단언적 고백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자신이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자신의 죽음은 자아(ego)부정이며, 곧 자기해체다올라오고 또 올라오는 이런 저런 가지들곧 생존본능과 자기 확장본능에서 비롯되는 가지들을 잘라내어도 그것은 어제까지의 일이고 오늘 또 다시 어느 새 올라온 가지들을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한 두 번의 가지치기로는 해결되지 않는다치고 또 쳐내야 하는 것이다이것이 날마다 죽는 것이다. 이렇게 죽고 또 죽음으로 생명에 이르게 된다씨알 하나가 죽어 뿌리로 살고, 그 뿌리가 죽어 가지로 살고, 그 가지가 죽어 꽃으로 살고, 그 꽃이 죽어 열매로 산다어제가 죽어 오늘이 살고, 오늘이 죽어 내일이 산다날숨이 죽어 들숨이 살고 들숨이 죽어 생명이 산다조상이 죽어 내가 살고, 내가 죽어 자식이 산다제대로 죽어야 제대로 산다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이 죽음의 절대성을 맞아들임으로 삶의 절대성을 누린다이 절대적 죽음이 십자가이고, 이 절대적 삶이 부활이다예수님 제자로의 부름은 바로 이 절대로의 초청인 것이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본문은 주님의 그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다. 성지(聖地)에 흔한 나무 중에 하나가 포도나무라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에 자주 비유하고 있다. 본문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열매 외에는 별 쓸모가 없는 나무다. 그러니 포도나무를 심는 이유는 딱 하나, 열매를 위해서다. 그러니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포도나무의 존재이유이자 사명이다. 그래서 본문도 곧 바로 열매를 강조하고 있다(3, 포도나무 비유 전체에서는 6).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2).

 

 

앞에서도 말했지만 포도농사를 하는 분들은 포도나무에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가지치기를 한다. 가지치기는 죽은 가지, 병충해에 걸린 가지, 서로 얽히고 통풍을 방해하는 가지, 열매를 맺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영양을 섭취하여 이미 맺힌 열매의 성장과 성숙을 방해하는 쓸데 없는 가지, 곧 도장지(徒長枝)를 제거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고’,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는 가지치기를 뜻한다. ,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단절, 단교, 단식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제거하다를 들어 올리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원어를 보면, ‘제거하다.’는 단어가 ‘아이로’(αρω)인데이 단어에는 들어 올리다.’는 뜻도 있다. 포도나무는 넝쿨성이라 땅으로 기며 자라는 습성이 있다땅 바닥으로 뻗어가면서 잎도 내고 열매도 맺는다그런데 그대로 둔 채 맺은 열매는 상품성은 물론 먹을 수도 없다그래서 농부들이 가지를 들어 올려 높이 매달아서 키운다. 이런 의미라는 것이다. 이 또한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무조건 제거하기보다 들어올려살려서 결실의 기회를 다시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가지치기와 다르지 않다. 들어 올리는 것은 땅으로 기며 자라는 습성, 땅에 대한 집착을 가지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땅엣 것에 집착하거나 매여서는 의미 있는 것, 특히 하늘에 속한 신령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은 생각하지 말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했다(3:1~5). 제거하던 들어 올리던 깨끗하게 하던 그 결과는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맺도록 하기 위한 가지치기이다.

 

 

훌륭한 농부는 세 가지 기법의 가지치기를 한다고 한다. 첫째, 윗가지 자르기다. 나무의 맨 위쪽 가지를 쳐주어 모양을 잘 만들어주는 기법이다. 이렇게 해야 열매가 햇빛을 충분히 받아 잘 익을 수 있다. 둘째, 솎아내기다. 솎아내기를 하면 통풍과 햇볕이 안쪽의 줄기까지 잘 들기 때문에 잎이 썩지도 않고 병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셋째, 눈 자르기다. 열매를 조정해주는 과정이다.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서 가지가 부러지는 일이 없도록, 또 질이 좋지 않은 열매를 맺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다. 나무의 크기에 따라 열매의 개수를 적절하게 맞추는 일이 농부의 지혜다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적정선(適正善)이다적정선을 위한 적정선(適正線)이 있다이 선에 모자라거나 또 이 선을 넘어서면 안 되는 것이다이를 위해 눈 자르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성도가 가장 먼저 가지치기를 해야 할 것은 교만이라는 윗가지이다. 주님의 일에 힘쓰고 헌신하며 충성을 다하였지만 결국 교만이라는 윗가지가 자라면 온전한 영적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자체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 교만이다. 다음은, 세속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어두움의 일을 솎아내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같은 욕망의 가시덤불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눈 자르기를 해야 한다. 육신의 소욕이 가득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기가 어렵다. 시기와 다툼의 눈 자르기를 해야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미움과 분노의 눈 자르기를 해야 사랑의 눈이 튼실하게 자라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교만의 눈 자르기를 해야 겸손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고, 불만이나 불평의 눈 자르기를 해야 감사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가 있다. 아무튼 땅엣 것들을 눈 자르기 해야 신령한 것들이 보이고, 신령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주님을 두목(?)으로 삼으려고

일본에서 사역하였던 어떤 목사님의 간증이다우람한 체격에 몸에는 문신이 덕지덕지 새겨진 남성들로 구성된 남성중창단의 찬양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그들의 모습은 교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큰 은혜를 받았다그런데 찬양이 끝나고 중창단대표의 간증을 듣고는 더욱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그 사람은 팔을 걷고는 왼손을 펴 보이며, ‘찬양을 드린 우리는 모두 야쿠자였습니다또한 아내가 모두 한국 사람이고, 각자 아내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우리 모두는 왼손 새끼손가락이 이처럼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두목을 찾아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성도로서 더 이상 야쿠자로 살 수는 없다고 했다그 말에 두목이 칼을 탁자 위에 꽂았다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고 나가라는 것이었다예수님을 잘 섬기기 위해 그들은 단호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다.


 

주님을 인생의 두목으로 삼고 섬기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야쿠자 출신 중찬단의 이야기가 감동과 도전이 된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잘라낸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서 무엇을 자르고 나오는가자신을 온전한 예물을 드리기 위해 무엇을 자르고 나오는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잘라야 하는가? 생각해 봐야겠다절제를 뜻하는 이 가지치기가 제대로 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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