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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는 원리로서,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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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033회 작성일 23-03-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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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는 원리로서, ‘절제

11:1~3, 고전9:24~27

2023. 3/19. 11:00

크라수스라는 별명을 가진 왕자 이야기

벨기에 왕가를 다룬세 명의 에드워드라는 책이 있는데여기에 뚱뚱한 것보다 더 뚱뚱하다는 뜻의 크라수스라는 별명을 가진 레이놀드 왕자가 주요 인물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차기왕권을 물려받게 될 사람이었지만 부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동생에게 왕권을 빼앗기게 된다왕이 된 동생은 형을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유커크 성에 감금했다. 그리고 형이 불편하지 않게 감금한 방을 안락하게 잘 꾸며주고작은 창을 달아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형님이 원하면 언제든지 이 창으로 나갈 수 있고, 그래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문제는 보시다시피 이 창이 작습니다몸을 줄여야만 바깥으로 나가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하들에게도 공언했다. ‘형님이 만약 몸과 체중을 줄여 저 창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왕의 자리를 형님에게 넘겨줄 것이오그러나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면 자기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가 있겠소?’ 그리고는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매일 꼬박꼬박 세 끼의 식사를 산해진미로 갖추어 제공하도록 하였고원한다면 간식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레이놀드 왕자는 어떻게 되었을까감옥에 갇힌 지 10년이 지났을 때 동생 왕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그는 그 때 자유인이 되었지만 더욱 비대해진 몸을 가누지 못해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레이놀드의 비극은 동생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간 한 인물의 비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평생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결국 탐욕의 노예가 되어 탐욕의 감옥에서 살다간 비극이다. 감옥을 나올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었지만 스스로 감옥을 나오지 못했고, 심지어는 감옥을 나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국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기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절제의 중요성

절제를 헬라어로 엥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라고 한다. 자기 스스로를 알맞게 잘 조절한다는 뜻이다또한 경비하다.’ ‘파수하다.’ ‘지키다.’의 뜻도 있다절제는 나를 지키는 것이다죄로부터 나를 지키고사단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다여러 위험으로부터방탕이나 방종탐욕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다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에덴의 복을 비롯한 모든 신령한 것을 지켜주는 영적 지킴이가 절제다성령의 열매(5:22~23)를 보면 이것이 더 분명해진다성령의 열매 중에 제일 마지막이 절제다절제가 맨 나중에 나온 것은 다른 열매에 비해 비중이 작거나 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오히려 파수하고 지킨다는 절제의 뜻처럼 절제가 마지막에 나온 것은 다른 열매를 지켜서 완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절제를 다른 열매를 담는 바구니라고 했다, 그렇다. 절제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절제가 없는 사랑은 방임이다절제 없는 화평은 태만이 되고절제 없는 자비나 양선은 의존적 거지근성을 만든다절제 없는 충성은 탈진에 이르게 하고절제 없는 온유는 유약한 인간을 만든다그러니 절제는 성령의 열매를 더욱 빛나게 하고 그 가치를 완성시켜주는 성품이다절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잘 지키는 지혜다복을 더욱 복되게 하는 것이 절제다주어진 복을 잘 누리는 행복한 인생이 되려면 절제해야 한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놓는 절제, 이것이 장수와 건강의 지름길이다

 

 

쓰임을 받으려면 절제를 해야

또한 절제는 쓰임을 받는 중요한 원리이기 하다. 미군의 경우, 비만이 장군진급에 결격사유라고 한다. 그래서 배 나온 대령은 있어도 배 나온 장군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히 체형의 문제가 아니다. 배가 나오고 나오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관리의 문제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은 장군과 같은 최고 지휘관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뚱뚱한 의사에게는 진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몸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절제는 결국 자기 관리다. 그래서 영어로 절제를 셀프컨트롤(self-control)이라고 한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힘들다. 그러니 쓰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회가 주어져도 레이놀드 왕자처럼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이는 기관이나 사람뿐만 아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 절제하여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귀한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27). 당시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오늘날 올림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경기가 4년마다 열렸다. 이와 비슷한 경기가 주변 도시국가에서도 있었는데, 고린도에서는 2년마다 올림픽에 버금가는 이스무스(Isthmus) 경기가 열렸다. 고린도 사람들은 최대명예를 이 경기에 선수로 나가보는 것이었다반면에 이 경기에 선수로 나가 실격당하거나 선수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불명예로 생각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씀은 이런 배경에서 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27b)고 했는데, 버림이라는 말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다우선 바울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울이 현재 주님께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쓰임을 받고 있지만 자기 관리를 허술하게 하여 실격을 당하거나 자격을 상실한 선수처럼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더 이상 쓰임을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어떤 성경에서는 버림실격’, ‘자격상실을 뜻하는 디스쿼리파이(disqualify)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사도로서 자격을 상실하여 쓰임 받지 못할까 두려워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며 훈련에 집중한 운동선수처럼(24), 자기 관리에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27a). 끊임없이 자신을 절제하며 훈련하여 자기 관리를 위해 힘쓴다는 뜻이다. 이것이 계속해서 귀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비결이다.

 

 

불우(不遇)를 극복한 불후(不朽)의 사람

구약본문은 사사 입다의 이야기. 그는 참으로 불우(不遇)한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판() 홍길동과 같은 사람이다. 둘 다 서자(庶子)에다 부모형제와 함께 살지 못했고, 불량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홍길동보다 입다가 더 비참했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설음에 스스로 집을 나왔지만 그는 기생의 아들이고 배다른 형제들에게 집에서 도둑처럼 쫓겨났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고향에서까지 쫓겨났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차별과 왕따와 배척을 당한 불우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갔다. 돕은 갈릴리 북쪽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산악지대였다. 이렇게 쫓겨난 한심한 처지인 그에게 잡류가 모여들었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잡류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백수건달인 셈이다. 소위 차별과 왕따로 사회에서 거절을 당하여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과 돕이라는 험지(險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아무튼 그를 둘러싼 환경은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본문은 그를 큰 용사였으니라고 평가하고 있다(1).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인생을 포기하고,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얼마든지 자신을 차별하는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을 학대하여 내쫓은 형제와 고향 사람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따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누군가? 사회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였으니 그들을 부추겨서 세상에 불을 지를 수도 있었다.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암몬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형제, 고향 사람에게 복수의 칼이 되고, 복수의 창이 되고, 복수의 화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자기를 잘 관리하여 성장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도적떼로 전락하고도 남을 사람들을 모아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용사로 길러냈다. 자신 또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큰 용사로 성장했다그래서 위기를 만났을 때 생각이 난 사람, 거절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간청할 만큼 탁월한 사람이 되었다(11:4~6). 이렇게 불우한 인생, 불우한 환경에 처한 그가 민족을 구한 큰 용사, 곧 불후(不朽)의 사람이 되었다. 이 모두가 절제하면서 자기를 잘 관리한 결과다.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한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민족의 구원자로 사용하신 것이다.

 

여는 사람

입다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열다.’는 뜻이다그는 사방이 꽉 막히고, 굳게 닫힌 인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니까 기생의 아들이 큰 용사가 되었다가족에게, 고향 사람에게 버림받은 그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사사가 되었다. 그 또한 여는 사람이 되었다. 주류사회에서 쫓겨나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주고, 암몬의 침략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여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닫힌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 쓰시면 열리는’ 인생, 나아가서 열어주는’ 인생이 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코털 잘못 뽑아 파상풍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 병의 크기나 심각성, 문제의 크기나 심각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놔버리시면 우리 인생은 끝인 것이다. 그러나 불우한 인생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하나님께서 쓰시면 불후의 인생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꽉 닫힌 인생도 활짝 열리는 인생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앞길을 틀어막는 인생도 활짝 열어주는 인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인생,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인생, 하나님께서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인생이 되려면 바울처럼, 입다처럼 자신을 쓰임에 맞게 잘 조절해야 한다. 절제하고 훈련해야 한다.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절제가 유용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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