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어주신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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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66회 작성일 25-05-25 18:13본문
하나님이 지어주신 짝
창2:22~25
2025. 5/25 11:00(부부 주일)
행복하고 건강한 부부
미국의 닉 스티네트(N. Stinnett) 교수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조사 연구한 결과 그 가정들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가 ‘감사’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은 가족이 서로에게 고마움을 자주 표시했다. 부부가 서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였다. 나아가 이웃에게도 감사와 고마움을 자주 표시했다. 사실 감사는 자주 많이 표현하는 사람이 마음이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이다. 둘째가 ‘헌신’이다. 나보다 가족, 나보다 서로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셋째가 ‘의사소통’이다. 부부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 자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는 누구의 말처럼 대놓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담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는 것이 대화다. 무엇이든 막히면 고통이 되고 병이 되고 사고가 발생하지만 통하면 회복이 되어 고통이 사라지고 건강해진다. 넷째는 ‘함께하는 시간’이다. 건강한 가정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함께 해야 고마움을 알게 되고, 헌신과 섬김이 있고, 소통도 함께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한 함께해야 사랑도 깊어지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다. 다섯째는 ‘정신적 건강’이다.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고, 칭찬을 자주하고 많이 했다. 축복과 격려와 칭찬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영양분과 같다.
성공한 사람에겐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도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부부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세상에 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백년해로하는 행복하고 건강한 부부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스티네트 교수가 발견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의 공통점을 부부생활에 적용해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부부관계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변화는 작은 시도에서 시작이 된다. 1%만 바꿔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놀라운 변화의 경험이 여러분의 부부 사이와 가정에서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부부의 원리
본문은 부부생활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맺어 인류 최초의 가정을 창설하신 장면인데, 부부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짝이라는 것이다. 부부는 내가 좋아 맺어진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선택을 통해 맺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부부를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배를 타고 천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잠자리에 들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부부라는 것이다. 24절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짝지어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일종의 멋진 하나님의 주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동시에 이 말씀은 성경적 부부의 원리를 가르쳐준다. 하나는 부모를 ‘떠나는’ 독립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원리다.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선 이 두 원리가 잘 작동이 되어야 한다. 우선 부모를 ‘떠나야’ 한다. 결혼은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경제적으로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독립적인 한 개체로 서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하는 부부 중에 상당수가 떠나지 못함에 있다. 부모가 자녀를 독립시키지 않고 계속 조종하거나 좌우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부모의 음식, 가정의 생활패턴, 문제해결 방식 등을 떠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부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모도 자녀도 떠나서 독립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 몸을 이루어 연합하는 것이다. 즉,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출발한 부부가 부부관계를 아름답게 가꿔가지 못하고 중도에 깨진 경우가 많다. 연합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다. 서로 한 몸이 되지 못하다 보니 평안도 화목도 다 깨지고 결국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헬라어로 ‘평안’, ‘화목’을 ‘에이레네’(ειρηνη)라고 한다. 이 단어는 ‘연합하다.’, ‘분리된 것을 하나로 묶다.’는 뜻을 가진 ‘에이로’(ειρω)에서 왔다. 이는 평안과 평화와 화목, 그리고 화평의 원리가 연합에 있다는 뜻이다. 즉, 연합이 없으면 평안도 평화도 화목도 화평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부가 아름답게 연합할 수 있을까?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관계, 나아가 이런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
부부 연합의 삼겹줄
관계에는 ‘삼결줄’이 있다. 그것은 첫째 깊은 신뢰, 둘째 철저한 은혜의식, 그리고 셋째 즐거운 부채의식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부부 연합의 삼겹줄’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연합하다.’는 히브리어로 ‘다바크’(דבק)라고 한다. 여기에는 ‘매달리다.’, ‘풀로 붙이다.’(paste), ‘친근히 하다.’는 등의 뜻이 있다. 부부관계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단어다. 부부란 마치 두 장의 종이를 강력 접착제로 붙인 것과 같다. 부부는 이렇게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이란 서로 다른 행성에 온 존재라고 할 만큼 다른 두 사람을 부부로 묶는 것이다. 이렇게 결혼하여 부부가 된 두 사람을 강력하게 묶어주는 끈, 강력 접착제가 있다. 그것이 ‘신뢰’다. 단순하고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라 같은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가정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같은 신앙고백에 기초한 신뢰다. 바로 이 신뢰가 첫 번째 줄이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의 줄은 끊어지고 부부는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신뢰는 안정적이고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심리학자 존 고트만(J. Gottman)은 커플 연구에서, 신뢰도가 높은 커플과 낮은 커플을 비교했더니 신뢰도가 높은 커플이 관계에 대해 더 만족하고, 더 친밀하고, 더 헌신적이라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이 ‘은혜의식’이다. 은혜의식이 부부 연합의 두 번째 끈이다. 내가 존재한 것은 당신 때문이라는 생각, 당신 덕에 내가 산다는 생각이다. 존중도 사랑도 고마움도 여기서 나온다. 서로에게 헌신과 희생도 여기서 나온다. 살면서 서운함이나 섭섭함, 불평과 원망이 왜 생긴지 아는가? 은혜의식 대신 손해의식 때문이다. 은혜의식에는 서운함이나 섭섭함, 불평이나 원망이 엿볼 틈이 없다. 그래서 은혜의식이 클수록 부부는 더욱 단단하게 묶이게 된다. 부부뿐만 아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다. 건강한 사람이나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항상 은혜의식으로 가득하고, 은혜의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습관처럼 ‘덕분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우리의 의식이란 근육과 같다. 사용할수록 강해진다. 손해의식을 자꾸 사용하면 손해의식이 강해지고, 은혜의식을 자꾸 사용하면 은혜의식이 강해진다. 그리고 은혜의식으로 살면 자꾸 은혜만 보인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채의식’이다.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 받은 은혜를 더 많이 갚고 싶어서 남편은 아내보다 하루라도 더 살려고 하고,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부부에게 어떻게 금이 생길 수가 있을까? 보답하고 싶어 하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부부를 더욱 든든하게 묶어준다. 건강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25시간도 부족한데 그 소중한 시간을 드려 섬기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돌보는 일이 쉽겠는가? 그럼에도 그 일을 즐겁게 하는 이유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 부족해서 고생을 사서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온갖 핍박을 감수해야 했을까? 이 부채의식 때문이다. 주님의 은혜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는 긴급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일상을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 살았다(고전9:16). 이렇게 부부가 서로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항상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부부관계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다. 그렇지만 성도에겐 해당 사항이 안 되는 말이다. 바울은 이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부부관계를 주님과 주님의 몸인 교회관계로 비유했다. 주님과 교회는 나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주님은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이다. 머리는 없는 몸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몸 없는 머리 역시 존재할 수가 없다. 성도의 부부관계가 그렇다. 남편은 머리고, 아내는 몸이다. 이렇게 한 몸을 이룬 것이 부부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내 영혼의 짝이다. 서로 깊은 신뢰와 철저한 은혜의식과 즐거운 부채의식이란 삼겹줄로 단단하게 묶어 한 몸이 되라고 주셨다. 이 엄중한 주님의 명령을 잘 받들어 건강한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기서부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교회, 사회가 시작된다는 사실 또한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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