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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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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89회 작성일 26-02-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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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보시는 하나님

5:17~28

2026. 2/1. 11:00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몰락

바벨론 제국은 성경에서 이집트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고대 국가다. 1~4장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통치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이고, 5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내용이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왕인데, 그런 그가 죽은(주전 562) 후 바벨론은 메데와 바사에 의해 멸망했다(주전 539). 느부갓네살이 죽고 겨우 23년 만에 그 찬란한 제국이 무너졌다. 당시 왕은 느부갓네살의 손자 벨사살이었다. 사실 이 벨사살은 섭정왕이었다. 진짜 왕은 나보니두스였고, 그는 느부갓네살의 치하에서 누렸던 바벨론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재위 기간 내내 정복전쟁을 위해서 원정을 다녔다. 대신 아들 벨사살을 섭정왕으로 내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이때 메데와 바사의 연합이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나보니두스가 주력 부대를 이끌고 멀리 원정을 간 사이에 바벨론을 쳐들어왔다. 그들의 총사령관은 바사의 고레스였고, 그들은 바벨론 성을 포위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도 벨사살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일천 명의 귀인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허세를 부렸다. 어떤 적도 성을 넘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벨론 성은 당시 전쟁 장비로는 함락할 수 없는 요새였다. 성은 유프라테스 강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높이 100m, 30m의 내외성벽이 이중구조로 세워져 있었다. 외벽 바깥에는 깊이 3m, 넓이 100m 수로(해자)를 벽 주위를 따라 파 놓았다. 성을 돌아가면서 100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모두 청동문이었다. 식수도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풍부했다. 한 마디로 난공불락이었다. 그런데도 성은 함락이 되었고, 그 거대한 제국은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세상에 안전지대가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멸망의 원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물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 막강한 제국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본문을 보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여간 객관적인 사실만 두고 보면 이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멸망의 원인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먼 데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은 곧 방심이었다. 그리고 이 방심은 교만 때문이었다. 적이 철통같은 방어망을 뚫고 넘어올 방법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 안전에 대한 잘못된 자기 확신에 근거한 교만이 방심을 낳았다. 그리고 이 방심이 위기의 때인데도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잔치를 베풀며 허세를 부리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만 사용되었던 성전 기물(금은 그릇)을 가져다가 술을 부어 마셨다. 하나님을 위한 성물을 여흥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이다(23). 자제력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획죄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뜻이다. ,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살아날 길이 없다는 의미다. 벨사살이 교만 때문에 방심해서 이런 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고, 이 때문은 제국이 허망하게 망한 것이다.

 

벽에 나타난 글씨

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은 생각하지도 않고 한창 잔치를 즐기고 있을 때 하나의 경고장이 왕궁 벽에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그 손가락이 벽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얼마나 소름 돋는 순간인가! 이 때문에 잔치의 즐거움은 깨졌고, 그 기고만장했던 왕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흥겨운 잔치 자리가 순식간에 얼음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왕은 제국의 모든 지혜자, 곧 모든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서 벽에 쓰인 글자를 읽고 해석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읽고 해석한 자에게는 수많은 보석과 자기 다음 자리(나라의 셋째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해석은커녕 글자를 읽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그 공포감은 더욱 커졌고,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공포에 얼어붙었다. 그때 왕비가 다니엘을 추천하였고, 다니엘이 왕 앞에 나아가 벽에 쓰인 글자를 읽고 해석해 주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25~28).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즉시 시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 벨사살과 바벨론에 그날 밤에실행된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도 없이 곧바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벨사살에게 보낸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어 보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낱낱이 세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메네). 둘째, 하나님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고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그 기준에 부합한 지를 알아보시기 위해 우리를 달아보시기 때문이다(데겔). 셋째,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관여하신 것이 아니라 당대 대제국 바벨론을 나누어 메데와 바사에게 주셨다(우바르신, 바르신의 단수형이 베레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세상의 지혜자가 아닌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다니엘)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왕이었던 벨사살이나 바벨론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그들의 신()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왕의 이름도 벨이여, 보호하소서!’라는 경건한 뜻을 지니 벨사살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다. 그들의 신은 그들의 왕도 나라도 지켜내지 못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다 세에 보시고, 달아보시고,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고 나누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이를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 경건한 삶이다. 일상에서 늘 깨어있어 우리도 다니엘처럼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 세어 보시고, 달아보신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일상을 다 세고 계신다. 심지어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신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10:30).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속속히 다 아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아시니까 안심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 아시니까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보시고 알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한지 평가하기 위해 달아보신다. 우리의 생각을 달아보시고, 마음을 달아보시고, 말과 행동을 달아보신다. 우리의 믿음도 달아보시고, 기도도 달아보시고, 헌신도 달아보시고, 섬김도 달아보신다. 우리의 인격도 달아보시고, 영성도 달아보신다. 우리의 선행도 정성도 충성도 예배생활도 모두 달아보신다. 아무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달아보시는 분이다. 그리고 평가하시는 분이시다.

 

달아서 부족함이 없도록!

문제는 이렇게 세어 보고 달아보아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27,28). 벨사살괴 그의 나라 바벨론이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달아서 부족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99도에서도 끓지 않는다. 단지 1도 부족한데도 그렇다. 사랑, 헌신, 믿음, 기도, 감사가 1만큼 모자라도 형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 몸에 부족한 것이 생기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물이 부족하거나 수면이 부족하고, 영양이 부족하고, 피가 부족하고, 운동이 부족하면 여러 질병이 생기게 된다. 비근한 예로 물이 부족하면 만성피로, 두통, 어지럼증, 집중력 저하가 생기고혈액순환이 나빠져 심뇌혈관 질환 위험이 증가하고신장기능 저하, 심하면 신장결석, 비만, 방광암 위험까지 높아진다. 자동차에 기름이 모자라면 목적지에 갈 수 없고, 카드에 돈이 모자라면 사용정지를 당할 수 있다. 모자라면 모든 일에 낭패를 보게 된다. 영적으로도 기도가 모자라고, 예배가 모자라고, 봉사가 모자라고, 영성이 모자라면 심각한 위기가 발생한다. 신앙생활이란 여러 면에서 함량미달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우리가 그 기준에 도달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결은 세상을 기웃거리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여 두는 것이고, 결핍을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경건의 훈련에 더욱 힘쓰는 것이다. 또 한 번의 기회로 2026년도를 주셨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더욱 신앙생활에 경주하여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없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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