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흐르는 공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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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6-06-28 15:32본문
공간에 흐르는 공기가 중요하다.
잠21:19
2026. 6/28(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
간호의 제1원칙
현대 간호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이 크림 전쟁(지중해로 진출하려는 러시아 제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오스만 제국 및 서유럽 열강의 패권 다툼, 서구 역사에서는 ‘첫 번째 현대전’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거대한 충돌) 당시 야전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에는 부상보다 교차 감염과 악취로 죽어가는 군인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병원을 개혁하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집착했던 것은 다름 아닌 ‘환기’(Ventilation)였다. 병실의 공기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녀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침대 사이의 간격을 넓혀 공기가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병원 내에 ‘신선하게 흐르는 공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몇 달 만에 환자의 사망률이 42%에서 2%로 뚝 떨어졌다.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저서 「간호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간호의 제1원칙은 환자가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하면서도, 방 안의 공기를 외부의 공기만큼이나 신선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공기가 정체되면 그것은 독이 된다. 공기는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 공간에 흐르는 공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물리적 공기를 넘어
흥미롭게도 건축학과 환경심리학에서도 실제로 환기가 안 되고 탁한 공기가 사람을 더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줄어들어 짜증이 나고, 두통이 생기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순환시키면 답답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부정적인 감정도 환기되는 효과가 있다. 경험적으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나면 마법처럼 화가 가라앉는다. 그래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에서 환기가 되어 우리의 뇌와 신체를 진정시키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이를 보면, 공기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실제 기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를 비롯하여, 가정에서, 일터에서, 혹은 여러 관계 속에서, 우리가 속한 공간의 공기 관리가 참으로 중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공기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아무리 최고급 주택에,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진 대궐 같은 집이라도, 진수성찬에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그 안에 흐르는 공기가 탁하면 즉, 비난, 불평, 원망,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면 그곳은 평안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수용소다. 사실 한 사람이 성내고 다투기 시작하면, 그 공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게 된다. 함께 있는 사람은 눈치를 보게 되고, 자율신경계가 긴장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마치 최루가스를 터트린 것처럼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공간에 흐르는 공기는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여기서 공기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기를 넘어 ‘분위기’를 의미한다. 본문은 이 점을 다소 과격하고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19).
젖은 담요와 같은 사람(Wet blanket)
본문과 비슷한 말씀이 9절에도 나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본문에서 ‘다투며 성내는 여인’은 공간(집안)의 공기를 망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젖은 담요와 같은 사람’이다. 또는 주변 사람의 에너지를 쫙쫙 빨아들이는 ‘에너지 뱀파이어’(Energy vampire)다. 이 표현은 단지 여성만 지칭한 것이 아니다. 이는 고대 가부장 사회의 문학적 표현으로, 늘 원망하고 지적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는 모두를 뜻한다. 이런 사람은 공기(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주변 사람을 지치게, 숨을 못 쉬게 만든다. 그래서 다투고 화내는 사람과 함께 크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아무것도 없고 외로운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반면에 비록 비바람만 겨우 막는 움막일지라도,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 먹고 있을지라도 그 안의 공기가 따뜻한 존중과 평온함으로 채워져있다면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안식처가 된다. 있는 곳마다 공기를 망치는, 젖은 담요와 같은 사람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성도는 어디서든 ‘분위기’ 메이커(Mood maker/ Mood lifter)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을 재미있고 즐겁게 만드는 것을 넘어, 어디를 가든 그곳의 공기를 긍정적이고 선하게, 화목하고 평안하게, 경건하게 바꾸는 사람을 말한다. 즉, 머무는 곳마다 갈등 대신 화평을 심고, 차가운 분위기를 예수님의 사랑과 친절로 녹여내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주는 사람이다.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사람처럼 주변으로 영적인 활력과 은혜를 흘려보내주변을 힐링 숲으로, 천국의 출장소로 만드는 사람이 성도다.
어떻게 공간의 공기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있는 곳을 힐링 숲으로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소금이 맛을 내듯, 우리가 속한 가정, 교회, 일터, 공동체의 색깔을 더 아름답고 살맛 나게 바꾸는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첫째, 불평의 흐름을 끊고 ‘감사의 말’을 채우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아쉬움, 불평과 같은 부정적인 말이 나오기 쉽다. 분위기 메이커는 그 부정적인 흐름을 지혜롭게 끊는 사람이다. 비난이나 불평이 시작될 때 동조하지 않고, 말의 방향을 믿음과 감사로 돌려놓는 것이다. 사실 말은 공간의 공기를 순식간에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드는 최고의 천연 방향제다. 즉,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 최선의 도구가 말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둘째, ‘강력한 은혜의 반응자’가 되는 것이다. 예배나 모임 때 앞장서서 은혜를 사모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적어도 예배 시작 10분 전에 나와서 앞자리에, 안 자리에 앉는 것이다. 함께 열심히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설교를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도 예배의 공기를 바꾸는 은혜의 반응이다.
셋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적 카펫’을 까는 것이다. 분위기 메이커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만들어진다. 모임이 시작되기 전, 그 자리를 위해 미리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 예배 가운데 성령님이 임재하여 주세요.’ ‘오늘 오는 지체들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위로와 회복이 있게 해 주세요.’ 미리 기도로 이렇게 영적 카펫을 깔아놓는 것이다.
넷째, ‘먼저’ 다가가고, ‘기꺼이’ 손해 보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적 권위와 영향력은 섬김에서 나온다. 먼저 다가가 반갑게 환영하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궂은일에 먼저 손을 내밀어, 공동체 안에 ‘나도 함께하고 싶다.’라는 거룩한 전염성을 퍼뜨리는 것이다. 영적 공기는 전염되기 때문이다.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데 말이 중요하지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품격이다.
냉랭한 얼음도 뜨거운 불 곁에 가면 녹아내린다. 한 사람의 뜨겁고 진실한 영적 분위기 메이커는 반드시 주변을 전염시킨다. 공동체의 영적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러므로 주변을, 혹은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내가 이곳의 영적 분위기 메이커가 되겠다고 결단하자. 특히 우리 가정, 우리 교회의 영적 공기(분위기)를 바꾸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자! 그러면 우리가 있는 곳이 곧 힐링 숲으로, 천국의 출장소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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