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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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88회 작성일 25-08-03 12:29본문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말씀
엡4:31~32
2025. 8/3 11:00(성령강림 아홉 번째 주일)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인간의 감정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스피노자 48개, 현대 인지심리학 163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기본 감정을 기쁨, 관심, 놀람, 슬픔, 혐오, 분노, 공포, 경시, 수치심 9가지로 구분한다. 이들 중에 기쁨과 관심은 긍정적인 감정이고, 놀람은 중간의 감정, 그리고 나머지 6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에 속한다. 이는 인간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서울대 민경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한국어 단어 중에 72%가 불쾌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불쾌한 감정, 곧 쉽게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빠지면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즉,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포증과 같은 질환에 걸리게 된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신체 건강 상태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이 특히 간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학에서는 간을 감정의 장기라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그 영향이 간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고, 간의 해독작용이나 대사기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정적인 감정은 간을 비롯한 우리의 건강뿐만 아니라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부끄러움과 죄책감 같은 감정은 정신적, 감정적으로 큰 고통을 가져온다. 이런 감정은 자아 존중감을 낮추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도 해를 끼친다. 이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점점 고립이 되고,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 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의 역량에 불신을 키우고, 성과를 낼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부정맥 등 심장질환의 위험도 높인다.
부정적인 감정의 실체
감정은 인간의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우리의 삶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란 객관적 세계의 사물 현상에 대한 사람의 태도를 반영하는 심리현상이다. 감정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나를 해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병들(감정이 상하면)면 우리는 늘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지고, 타인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한(☞여기서 ‘상한’ 무언가에 찌려 상처받은 것을 의미한데, 동시에 누군가를 찔러 상처를 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함) 감정은 ‘악한 시스템’이다. 상한 감정에 중독되면 반복적인 분노, 불안, 비교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고통스럽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감정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정의 패턴을 인식하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감정의 회복은 단순한 위로나 다독임이 아니라 단호한 결단에서 시작된다.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죽여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이 선언은 부정적인 감정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는 부정적인 감정을 단순히 위로하고 다독여서 끌어안는 대상이 아니라 단호한 결단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대상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어떻게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상한(부정적인) 마음을 치유하는 이론이 많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중에서도 상한 마음의 치유에 대해서 본문이 대표적이다. 우선 본문은 이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의 생활에 대한 말씀으로 상한(부정적인) 감정을 버리고 거기에 건강한(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우라는 내용이다. 우선, ‘버리는 것’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 함께 버리고’(31). 이는 우리가 버려야 할 감정들이다. ‘악독’이란 날카롭고 독기가 있는, 까다롭고 온후함이 없는 상태다. 좋은 것은 보지 않고 나쁜 것만 보려는 태도, 곧 어떤 결점이나 흠집만 끄집어내려는 태도다. ‘노함’은 일시적인 분노를 가리키고, ‘분냄’은 일시적인 분노가 마음에 자리 잡아 오랫동안 품고 있는 것을 뜻한다. 두고두고 한을 품는 것을 말한다. ‘떠드는 것’은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 곧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상태이고, ‘비방’은 고의적으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끝으로 ‘악의’는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을 뜻한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리다’는 헬라어 단어로 ‘아르데토’(αρθητω)인데, 깨끗이 쓸어버리라는 뜻으로 쓰레기를 치우듯 과감히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뿐만 아니라 누구나 하는 이야기로 우리 일상에서 늘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성경은 소극적으로 버리는 것을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것은 곧 ‘채우는 것’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 친절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와 같은 긍정적인 선한 감정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사실 인생은 버리고 채우는 것의 연속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 혹은 태도를 버리고, 은혜롭고 경건한 생각, 긍정적인 좋은 감정, 아름다운 신앙적인 태도를 채우는 것이다. 버리는 것과 채우는 것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다. 동시적인 것이다. 경건하고 거룩한 것으로 채워지면 세속적이고 악한 것들이 떠나게 된다.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면 어둠이 자연히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어둠이란 몽둥이로 후려치고 칼로 찌르고 물로 씻어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불을 밝히면 스스로 사라진다. 상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이고 경건하고 은혜로운 선한 감정으로 가득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상한 감정들이 사라지게 된다. 물론 성경은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채우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선한 감정을 채우려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항상 기쁨을 주는 교회였는데, 옥의 티처럼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몇몇 여성 지도자에 의한 사소한 갈등이다. 여기서 바울은 갈등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버릴 것과 채울 것을 제시한다. 다툼과 허영과 교만을 버리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을 채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곧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예수님으로 충만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 예수님으로 충만하면 다툼과 허영과 교만이 들어올 수도 없고, 또한 견딜 수도 없다. 여기서 충만하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통치적인 의미다. 즉, 예수님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예수님으로 충만하다는 것, 혹은 예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하다는 뜻이다. 즉,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한다. 말씀을 마음에 품는 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마음에 말씀을 품게 되면, 말씀으로 충만하고 말씀의 지배를 받으면 옛사람의 감정들, 곧 부정적인 상한 감정이 사라지고 새사람의 감정들, 곧 경건하고 은혜롭고 따뜻하고 선한 감정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유명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지 않고, 가난해도 부족하다는 불평 대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고난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고,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몸이 약해도 낙심하지 않고, 화려한 세상이 부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 곧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는 기쁨, 만족 때문이다. 말씀으로 충만한 삶, 말씀으로 가득한 삶, 말씀으로 넘치는 삶,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 그 안에 있는 기쁨이, 사랑이, 은혜가, 부요함이 우리 안에 샘 솟듯 솟아나게 된다. 그래서 부정적인 상한 감정이 사라지고, 은혜롭고 경건한 감정, 건강하고 좋은 감정이 가득 채워지게 된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kLVQ_HL0L8g 12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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