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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사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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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5-12-1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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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사명의 시간이다.

25:14~30

2025. 12/14, 11:00(대림절 셋째 주일)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

사회학 용어 중에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라는 것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라는 말씀을 근거로 만든 용어다. ‘누적 이득 효과’(Cumulative Advantage Effect)라고도 한다. 그리고 생물학자들은 승자효과’(Winner Effect)라고도 부른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앞서 나가면 그 장점과 강점이 점점 더 쌓이면서 더 크게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성공은 더 큰 성공을 부른다는 주장이다. 소득의 양극화, 빈곤의 악순환, 지식과 교육의 격차, 선점 기업의 시장 독점, 마케팅의 선점 위치, 선진국과 후진국의 소득 격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는 원리다. 소위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학술적 표현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든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우리 주위에서도 마태복음 효과의 실례를 쉽게 볼 수 있다친구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빈번한 교류를 통해 더욱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그래서 친구가 많은 사람은 사회활동이 더 왕성해지고, 더 많은 기회를 얻어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영적 생활도 마찬가지다. 기도의 능력, 찬양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찬송한다.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일수록 더욱 말씀을 사모하여 더욱 풍성한 영적 삶을 누리게 된다. 소위 영적 마태복음 효과인 셈이다. 이 마태복음 효과를 잘 활용하여 일상생활은 물론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본문은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한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마지막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장사를 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맡은 사람은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받은 그 한 달란트 그대로 돌려주었다.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은 주인에게 칭찬을 듣고,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반면에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다시 돌려주었던 종은 주인의 책망을 받고 그 집에서 쫓겨났다. 이 비유에서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두가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받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능력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맡기다는 단어 4, 받다는 단어 6).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가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이다. 착하고 충성스럽게 산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악하고 게으르게 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이 비유에 세 명의 종을 나오지만 실은 두 부류 사람의 이야기다. 맡겨진 일에 충성한 사람충성하지 않은 사람이다. ,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과 악하고 게으른 사람이다. 충성한 사람은 더욱 풍성하게 되고(부익부 사이클), 충성하지 않은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었다(빈익빈 사이클). 특히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 사람은 바로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책망했다. 어찌 보면 이 책망이 지나쳐 보일 수도 있다. 원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의 돈을 맡긴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금 유지가 아니라 그것으로 장사해서 이윤을 남기도록 맡긴 것이다. 원금 유지가 목적이었다면 자신이 안전한 곳에 숨겨두든지 아니면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맡기지 굳이 세 사람에게 그 능력에 따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주님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이야 한다는 것과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본전 인생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긴 인생을 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착하고 충성스럽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림은 착하고 충성스럽게 살아서 남긴인생이 되기 위한 사명의 시간이다.

 

 

왜 충성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악하고 게으르다고 책망을 받고 주인의 집에서 쫓겨난 종은 왜 충성하지 않았을까? 그의 변명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24,25). 종이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이유, 곧 주인이 맡긴 일에 충성하지 않은 이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인에 대한 종의 생각이다. 그는 주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굳은 사람,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 무서운 사람.인색하고 잔인하고 자비심이 없는 무서운 사람이란 뜻이다. 한 마디로 주인을 고약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충성하지 않은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다. 주인이 인색하고 잔인하고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너무 두려워서 그 어떤 일도 시도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인에 대한 오해는 주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불신은 불충을 낳게 된다. 그래서달란트를 땅에다 묻어두었고, 그대로 다시 가져온 것이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게으름과 악함을 이렇게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 종이 충성하지 않은 이유이자, 주인이 이 종을 악하다고 평가한 이유다. 누구를 막론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즐겁게 하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다 내어주면서도 더 못 주어서 안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반면에 신뢰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선 손끝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다. 불편하고 지루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와 같은 주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가 이 종이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이유다. 또한 주인에 대한 불신, 주인에 대한 오해,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자신의 책임인데도 주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악이다. 때문에 주인이 이 종을 악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하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에 해당이 되는 문제다. 이에 따라 신앙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고, 좋아하고 사랑해야 사랑하며 섬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우리의 신앙을 결정짓는다. 살면서 자주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작은 일에 충성하며 살아가기

불신은 두려움을 낳지만, 믿음은 충성을 낳는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긴 종들을 동일하게 칭찬했다(21,23). 칭찬의 내용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칭찬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은 더 많은 성취를 하면 더 큰 칭찬을 하고, 적게 성취하면 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주인의 평가 기준이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태도(자세)였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끝 날에 우리를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기준도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태도다. 성공이 아니다. 물론 많은 것을 성취한 성공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맡겨주신 일, 그것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혹은 중요하든 사소하든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영적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삶의 태도가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으니 다 거저 받은 것이다(생명도 건강도 시간도 재물도 자녀도 부모도 등등). 본문의 표현대로는 맡겨진이다. 또한 맡겨진 것은 언젠가 결산의 때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 그날이 곧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신 날이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승천과 재림의 그 사이(Interim)를 살고 있다. 이 기간을 앞에서 말한 사명의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시간을 맡겨진 일에 충성으로 채워가야 한다.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은 우리로 충성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을 올바로 보는 인생관이다. 그러면 주님 앞에서 남긴 인생이 되어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그 주인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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