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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할 복음Ⅶ,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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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570회 작성일 09-09-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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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할 복음Ⅶ, ‘회복’

출15:22~27

 

2009. 9/6 11:00

마음이 중요하다.

병의 90%는 마음의 병에서 온다고 한다. 병(病)을 뜻하는 한자어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病(병 병)=疒(병들어 기댈 녁)+丙(남녘 병)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병(丙)은 불(火)의 기운을 상징한다. 그리고 火(화)는 心(심)과 같은 글자다. 心은 火를 눕혀 놓은 모양으로,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하지 못한 상태가 火이고, 이 火를 다스리지 못하면 병(病)이 생긴다. 결국 병은 마음의 병에서 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마음이 치유되어야 몸도 치유가 된다.

 

한 젊은 여성이 여고동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젊은 여성과 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방금 보았다는 것이다. ‘그이가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믿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남자들은 다 그런다던데, 그럴지도 몰라.’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이 여성은 갑자기 무력증에 빠진 사람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 준비도 할 수가 없었다. 귀가하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밤새 잠도 설쳤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친정 여동생이 놀러왔다. 대학생인 동생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랑하듯 떠들어댔다.

 

‘언니, 어제 형부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 사 주셨다. 용돈도 주시고......’

 

‘호텔’이란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과 장소를 알아보니 어제 친구가 호텔 앞에서 목격한 젊은 여성은 바로 친정 동생이었다. 친구가 오해한 것이다. ‘오해였구나. 그럼 그렇지. 내 남편이 그럴 리가 없지.’ 그 순간 이 여성의 마음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의욕도 없이 죽고만 싶었는데, 의욕이 회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의 태도가 이런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 병의 95%가 마음의 병에서 온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잠언은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14:30)하였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17:22)하였다. 그리고 전도서에서는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2:24)이 헛된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복된 일이라고 하였다. 화평의 마음, 즐거운 마음에 건강과 행복이 있고, 시기와 근심하는 마음에 질병과 불행이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마음이 평안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지만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은 최고의 회복제이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issues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한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의 회복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마음을 지키고, 회복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떻게 이 일을 이룰 수 있을까? 본문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자.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끝내고, 이집트를 출발하여 홍해를 건넌 다음 처음 만난 사건이다. 그들은 홍해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넜다.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쁨과 감사는 겨우 3일을 못가서 불평으로 변했다. 광야 길에서 물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신자의 신앙생활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의 광야여정은 우리의 신앙여정과 같고, 신앙생활에 소중한 교훈들이다. 특히 본문은 장차 그들이 광야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비결에 대한 교훈이기도 하다.

 

 

1. 불평하면 쓴물이 된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24).

23절, ‘마라’란 말은 히브리어로 ‘쓰다, 괴롭다, 애달프다’는 뜻이다. 홍해를 건너 3일 길을 걸어서 만난 물인데, 마셔보니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22). 그러자 백성들의 입에서 모세를 향한 불평과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공개적인 불평과 원망을 의미한다(NIV, NASB). 이 말은 그들이 지난 3일 동안 수르광야를 걸으면서도 불평과 원망을 품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라에 이르러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자 공개적으로 그 불만을 쏟아 놓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분은 ‘불평하면 쓴물이 된다.’고 했다. 의미있는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환경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자신의 불평이나 원망을 정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니다. 내 마음이 문제다. 내 마음에 불평과 원망을 품고 있으니 모든 주변 환경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마음이 상한 사람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을 주어도 맛이 없다고 한다. 반면에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는다. 입맛이 좋으니까 무엇이든 맛이 있는 것이다.

 

미국 의사 존 자웻(J. Jaweet)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 그들에게서 세 가지의 특이한 분비물이 나오더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첫째 분비물은 연구자 자신도 규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한 백신인데, 그것은 모든 질병을 예방해 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기도백신’이라고 불렀다. 둘째는 항독소라는 물질이다. 이것은 항체 역할을 담당하여 각종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 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으며 살균을 해주기 때문에 질병의 예방과 아울러 치료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한다. 셋째는 안티셉틴(antiseptin)이라는 물질인데, 이것은 방부제 구실을 한다. 이는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이상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흡수를 도와 건강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즐겁게 식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유익한 물질이 나와서 건강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먹느냐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마라의 쓴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마음에서 쓴물이 나오고, 환경이 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불평과 원망은 불신앙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신뢰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쓴물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마라가 된 것도 당연하다. 불평과 원망은 우리 마음을 더욱 지치고 상하게 할 뿐이다. 반면에 감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감사가 있는 곳에 치료가 있고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2. 불평대신 기도하라.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25).

불평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기도하면 해결의 길이 열린다. 그러므로 기도야말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다. 기도를 쉬면 불평과 원망이 고개를 든다. 염려와 걱정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그러나 기도하면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도 걷히게 된다. 모세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을 향해 원망하는 백성들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홍해를 건너이후 침묵하셨던, 특히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 소리에도 침묵하셨던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의 귀는 기도소리에 열려있고, 하나님의 눈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향해 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 해결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25).

 

광야생활은 어렵고 힘들다. 그렇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내 안팎에서 쓴물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불평대신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기도하면 힘들고 어려운 환경들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고, 지치고 상한 마음도 회복할 수 있다. 기도가 최선이고 최상의 방법이다.

 

 

3. 말씀에 순종하라.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25).

모세가 기도했더니 해결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 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다. 이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첫째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의 중요성이다.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소중하게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본문의 이 나무는 당시 마라 주변(시나이 반도)에 자생하고 있던 구르쿠드(Ghurkud)라는 나무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쓴물을 단물로 고치고, 목이 말라 피곤에 지쳐있는 백성들에게 단물을 제공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 것이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볼품없이 사막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였으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니 치유의 도구, 회복의 도구가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소중한 존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둘째는, 문제해결의 방법은 가까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의 특징이다. 14장에서 홍해를 건널 때도 그랬다.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그 지팡이를 통해 바다 가운데로 길을 열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곳에 문제 해결책을 감추어 놓으신다. 내가 가진 것 속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기도할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세가 마라의 쓴 물 앞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그 나무는 모세가 기도하기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나무를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면 무엇보다도 기도하라. 그러면 문제 가까이에 있는 해결책을 보여주실 것이다.

 

셋째는, 순종의 중요성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고 응답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복음의 능력,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제가 지난주와 비슷한 이 설교를 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주에 복음의 능력,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권세를 사용하라.’고 하면서 세 가지(기도, 동역, 선포)를 말씀드렸는데, 거기에 이 말씀(선포에 대한 응답으로서 순종)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온 기적의 현장을 보면, 항상 이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먼저 선포가 있고 선포에 대한 응답으로서 순종이 따를 때 기적이 일어났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보여주셨고, 모세는 그 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던졌다. 그랬더니 물이 달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축복을 선포하는 말씀들로 가득하다. 그 선포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말씀의 축복과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다.

 

 

회복의 길로서 십자가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본문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주석가 데이비드 베이커(D. W. Baker)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평과 불만의 쓴물을 단물로 만드는 마라의 나무다.’고 했고, 매튜 헨리(M. Henry)도 ‘십자가는 모든 고통을 주는 쓴물을 단물로 만든다.’고 했다. 이 나무가 주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모든 쓴물을 단물로 회복시키는 길이다. 우리 마음을 비롯하여 가정이나 교회, 직장이나 사회에 쓴물이 많다. 때문에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고통을 당한 것이다. 이런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다. 십자가 정신이 실현될 때 쓴물이 단물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성 프란시스(St. Francis)가 자기 고향에 있을 때다. 하루는 자기 집 하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인은 물을 길을 때마다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했다. 큰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후 거기에 작은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넣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프란시스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하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가득 찬 물통에 나무토막을 넣으면 물이 출렁거리지 않아 물이 밖으로 넘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토막을 넣지 않으면 물이 출렁거려서 넘치게 되고, 옷도 다 망치게 됩니다.’

 

하인의 설명을 들은 프란시스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자기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마음, 고통으로 요동하는 마음, 절망으로 부서지는 마음, 이것은 마치 심하게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물통과 같은 것이지.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라는 막대기를 던져보게.’

 

십자가가 해결의 길이라는 뜻이다. 십자가는 온갖 것들로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길이다.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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