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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기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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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442회 작성일 14-11-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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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기뻐함’

빌4:4

2014. 11/2. 08:00, 11:00

장수비결

 공자, 맹자, 순자, 노자보다 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누구일까? ‘웃자’라고 한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웃음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말처럼 잘 웃고 많이 웃는 사람에게 건강을 비롯한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근육은 건강과 힘의 상징이다. 그런데 웃음은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을 건강하고 힘 있게 해준 것이 웃음이다. 웃을 때마다 마음의 근육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분노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지만 웃음은 각종 질병의 치료제다. 그러니 웃자가 참으로 훌륭하고 위대하다.

 

같은 나이인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는 삶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어느 분이 장수마을에서 105세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할아버지에게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안 죽으니까 오래 살지’ 라고 했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까 ‘다섯 살’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100살은 무거워서 집에 두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까지 긴 세월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욕하고 음해하고 그래서 열 받을 일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그것들을 해결하며 살았느냐고 물으니 ‘그거야 쉽지. 욕하든 말든 내버려뒀더니 나를 욕하던 놈들 다 죽고, 세상에 한 놈도 안 남았어.’ 라고 했다. 이 정도면 이 할아버지의 유머감각이 대단하지 않는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줄만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 오래 산다. 사실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수준은 그가 당면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40인분의 요리를 준비하면서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두 세 명의 손님을 청해 놓고도 걱정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차이는 전적으로 삶의 태도에서 온다. 그러므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 항상 웃을 수 있는 기뻐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특히 우리 신자가 힘써야 할 일이다.

 

기독교의 핵심 브랜드

기쁨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 브랜드다.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이 ‘기쁘고 좋은 소식’이다. 복음이 있는 곳에 기쁨이 함께 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접한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16:34/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을 듣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이 크게 기뻐함). 또한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시다. 시편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그리고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고(갈5:22),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다(롬14:17). 그러므로 기쁨은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기쁨은 복음의 향기이고, 주님의 향기이고, 성령의 향기이고, 천국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기뻐하는 생활에 대하여 곳곳에서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다. 특히 본문처럼 ‘기뻐하라’는 현재 명령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계속해서 기뻐해야 하고(현재형), 기뻐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라는 것이다(명령형). 본문은 단 한 구절이지만 기뻐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해서 기뻐하라는 명령의 끝을 맺고 있다(참조, χαιρετε εν κυριω παντοτε παλιν ερω χαιρετε.). 이렇게 문장의 구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기뻐하는 생활의 중요성과 함께 항상 기뻐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분이 사도 바울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진데,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른다.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에 20회 이상 기쁨이란 단어가 나오고 있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몹시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18)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고 말하였다(:23). 이것은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그의 감옥생활이 무척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처한 어려운 환경과 당하고 있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운 빌립보 교회, 그에게 큰 위로를 준 지체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복음의 향기, 주님의 향기, 성령의 향기, 천국의 향기를 가득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

엘리자 에드먼드 히윗(E.E.Hewitt)은 갑작스런 사고로 척추를 다쳤다.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다. 그 때 어려운 환경에도 기쁨을 잃지 않는 병실 청소부의 모습에 감명과 도전을 받게 된다. 그녀는 원망이 쌓여가는 자신의 생활을 회개하며 시를 썼다. 그것이 찬송가 370장이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세상의 조건으로 기쁨의 조건을 삼으면 결코 기뻐할 수 없다. 세상의 조건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금방 변하고, 안개나 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들이다. 여기에 기쁨의 조건을 둔 사람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밖에 없다. 즉 ‘영적’ 조울증(躁鬱症)에 빠지게 된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선 주님을 기쁨의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히윗 여사의 고백처럼 근심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변해서 기도가 되고, 한숨이 변하여 찬양이 된다. 항상 기뻐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무조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분명한 조건을 제시고 있다. 그것이 “주 안에서”(εν κυριω)이다.

 

주 안에서’는 바울신학의 핵심단어인데, 여기서는 기뻐해야 할 대상과,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이는 주님을, 그리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를 기뻐해야 할 대상(기쁨의 조건)으로 삼을 때 항상 기뻐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위해서는 주님과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분이 그랬다. ‘나 같은 것이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이라는데 감격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그래서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말씀 배우고 섬겼다.’고 했다. 그렇다. 나를 절망적인 죄에서 구원하여 의의 자녀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주님, 나 같이 못난 인간을 왕 같은 제사장 삼으신 주님, 죄인 중에 죄수였던 나를 만왕의 왕의 자녀로 삼으신 주님, 지옥을 가더라도 가장 밑바닥으로 가야할 나를 영광스러운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주님, 마귀의 하수인으로 부끄럽고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던 나를 주님의 일꾼이요 동역자로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신 주님,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 안에서’다. 이렇게 주 안에 있는 사람에겐 마음에는 감사가, 입술에는 찬양이, 그래서 기쁨으로 충만하여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느 때에서도 기뻐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신 주님, 그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라! 그러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던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이 내게 기쁨을 주신다. 말씀에 내 자신을 노출하여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면 내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게 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묵상하면 말씀이 마치 누룩처럼 우리 안에서 기쁨을 발효시킨다. 마음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게 한다. 시편에도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119:54).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119:92). 주님의 말씀 때문에 고난도 기쁘게 이겨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면 섬김이다. 흔히 섬김의 자세로 기쁨을 말한다. 그래서 섬길 때는 기쁘게 섬겨야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행복해진 것처럼 섬기면 기쁨이 생긴다.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기쁨의 뿌리인 성령, 기쁨의 나라인 천국, 기쁨의 복음을 섬기면 자연히 기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 교회에 그 증인이 있다. 최 장로님에게 물어보라! 왜 섬기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섬기는지 한 번 물어보라. 책임감 때문에? 아니다! 몇 년씩 교회를 다녀도 책임감이 생기지 않는데 등록한지 겨우 3개월 됐는데 무슨 책임감이 있겠는가! 그것은 기뻐서 섬기는 것이다. 섬김의 기쁨 때문에 섬기는 것이다. 기쁨은 섬기는데서 생긴다. 기쁨은 초점을 자신에게서 주님과 주변을 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찾아온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이는 선교지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모습과 고백이다. 그들은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돌아왔다. 선교뿐만 아니라 모든 섬김이 그렇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기회있는 대로 열심히 섬기자! 이것이 또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의 비결이다.

 

복 받는 좋은 습관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가 유명한 랍비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하여 물었다. 랍비는 그녀를 정원으로 데려가서 그곳에 있는 나무 몇 그루를 뽑도록 했다. 첫 번째 나무는 쉽게 뽑혔다. 갓 심어놓은 나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나무는 상당한 힘을 들여서야 뽑혔다. 심은 지가 꽤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째 나무는 손바닥이 벗겨지도록 있는 힘을 다했지만 뽑을 수가 없었다. 이 나무는 이미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랍비가 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자녀교육도 이와 같습니다. 오랜 습관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그것을 바꾸기가 어렵지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갖도록 하십시오.

 

좋은 습관은 그 자체가 복이다. 홍 집사님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남들은 새벽을 깨우기가 너무 힘들다는데, 심지어는 새벽예배 때문에 목회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목회자도 있는데, 집사님은 일찍 일어나는 좋은 습관으로 인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매일 첫 시간을 교회에서 예배로 시작한다. 그래서 매일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습관이 복을 부르기도 하고 화를 부르기도 한다. 건강도 습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 의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잘못된 습관 때문에 죽는 것이 50%라고 했다. 아무튼 좋은 습관(언어습관, 절제하는 습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습관, 배려하는 습관, 도와주는 습관, 경건생활의 습관 등)이 빛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선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시간 여러분에 권하고 싶은 좋은 습관이 있다. 우리 인생에 복을 부르는 좋은 습관이다. 그것은 ‘기뻐하는’ 생활이다. 그래서 본문은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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