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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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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226회 작성일 15-06-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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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빌4:4~7

2015. 6/21. 08:00, 11:00

두려움의 종류

동영상(‘나의 등 뒤에서’)보기

호랑이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아기 곰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같다. 며칠 전부터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에 대한 두려움이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물론 무시해서도 안되지만)크게 두려워할 것은 아닌데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두려움이 이렇게 크게 확산이 된 데는 매체의 역할이 가장 크다. 사람들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대처하도록 지도해야 할 매체들이 오히려 두려움을 조장하고 퍼뜨리는 형국이 되었다. 아마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 놓으려는 고도의 상술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어려울 때 일수록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연함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금번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이런 점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씁쓸하다(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의 일화). 그러니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안전부절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아무튼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선 교회들(특히 대형교회들)의 예배집회 수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이 국민경제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생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을 통해 두려움(공포증)의 종류를 찾아보았다.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찾아보니 공식 학명을 가진 두려움의 종류가 글자 크기 8포인트, 줄 간격 130으로 하여 A4용지 양면 다섯 장 분량이었다. 제 아내가 두려워하는 개 공포증을 비롯하여 이, 벼룩, 질병, 폐쇄, 고소, 광장, 대중, 소리, 빛, 어둠 공포증 등 무려 519가지였다. 문제는 이런 두려움(공포)이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되겠는가? 말 그대로 근심과 걱정, 불안, 염려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고, 우리 마음은 이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공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가사에 이런 내용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그렇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참 평안을 알 수 있고, 가질 수 있겠는가?

 

문제는 마음이다.

솔로몬은 이런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언과 전도서에서 마음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상하게 한다.’(잠17:22)고 했다. 마음의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하고, 근심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다. 그리고 전도서에서는 헛된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전2:24). 그런데 이런 마음, 이런 태도가 지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25). 우리가 노력한다고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 평안하고 평화로운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셔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마음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하나님께 절대 의존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영혼의 평안이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란 문제, 곧 이 두려움에서 파생된 근심과 걱정, 불안, 염려의 문제 역시 주님 안에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과 기쁨,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그 해답이 곧 본문 6절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 학자들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이번 메르스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유동성이 큰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사건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 신자가 붙잡아야 할 말씀 중 하나가 6절 말씀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맡기라!

 본문은 두 번에 거쳐 ‘기뻐하라’(4)는 명령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뻐하는 삶을 실천하는데 가장 장애물은 염려다. 근심이나 걱정, 염려는 기쁨을 질식시키는 영혼의 잡초다.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영적 바이러스다. 6절은 이런 영혼의 잡초, 영적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기뻐하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 말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모든 것을 맡기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맡긴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다. 믿을 수 없는 존재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맡기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께 가정과 가족, 일, 미래, 생명까지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맡길 때 염려나 걱정, 근심,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영어에 ‘care’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근심, 걱정, 심려, 염려’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돌봄, 보살핌, 관리’라는 뜻이다. 같은 단어지만 서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이든 내가 가지고 있으면 근심거리, 걱정거리, 염려거리지만 그것을 주님께 맡기면 돌봄의 대상, 보살핌의 대상, 관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주님을 믿는데도 맡기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 어느 시골 아주머니가 시장을 봐서 물건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침 선교사가 차를 몰고 지나가게 되었다. 선교사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이 안쓰러워 차를 세우고 그녀를 태웠다. 잠시 후, 선교사는 웃지 못 할 광경을 보았다. 그 여인이 차에 타서도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채로 앉아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가 왜 짐을 내려놓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 몸 태워준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태울 수 있겠냐!’고 대답했다. 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절이라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의 자동차에 태워주셨는데도 여전히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을 짊어지고는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라!

그러면 믿으면서도 왜 맡기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염려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면서 동시에 주님께 맡기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비결이다. 믿음은 선물이다.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 믿음이다. 그리고 기도는 선물인 믿음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역사하는 믿음, 활동하는 믿음으로 만드는 것이 기도다. 아무리 좋은 자원도 그것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로 만들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요즘 방송에서 실용정부(이명박 정부)에서 가뭄을 대비하여 4대강 사업을 했는데, 정작 가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湺)에 많은 물이 채워져 있으나 그것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믿음은 보에 채워진 물과 같다. 그것을 에너지로 바꿔주어야 역사가 나타난다. 그것을 에너지로 바꿔주는 것이 기도다. 믿음이 없어서 맡기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역사하는 믿음, 활동하는 믿음으로 바꿔주지 못해 맡기지 못한 것이다. 즉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본문은 ‘오직’이란 뜻의 ‘다만’이란 부사를 사용하면서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가 중요한 것은, 기도는 주님의 시선(혹은 관심)을 나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집중시키는 비결이다. 물건을 팔 때도 고객의 관심을 어떻게 끄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치밀한 전략이 따른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서도 주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복음서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주님의 시선이 집중되면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맹인이 보고, 문둥병이 깨끗해지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고 주님의 시선이다. 어떻게 주님을 시선을 끄느냐에 있다. 바로 그 비결이 기도다. 시작하면서 보여드린 동영상에서도 이런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기 곰이 호랑이 앞에서 부르짖었더니 어디선가 엄마 곰이 그 소리를 듣고 쫓아와서 구해주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고 중요성이다.

 

감사함으로 아뢰라!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특히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도 태도다. 물론 어떻게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도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태도들이 있다. 본문은 그들 중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감사함으로’이다. 이것은 기도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태도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에만 집중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던 베이커는 「감사요법」이란 그의 책에서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나 태도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감사한다고 상황이나 조건, 사건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감사한다고 못생긴 얼굴이 예뻐지고, 작은 키가 커지고, 뚱뚱한 몸매가 날씬해지고, 나쁜 머리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 곧 태도가 바뀐다. 그리고 태도가 바뀌면 가치도 관점도 바뀌게 되고, 해석과 적용도 바뀌게 된다. 그래서 동일한 환경, 상황, 사건에 대하여 전혀 다른 해석과 적용을 하게 된다. 물론 기도해야 감사의 마음이 생기지만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기도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신앙은 환경을 넘어서라고 요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환경에 묶여 산다.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온갖 두려움에 매여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서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마음의 즐거움, 심령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보배로운 믿음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의 능력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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