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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자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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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324회 작성일 16-06-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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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자의 샘

삿15:14~20

2016. 6/5. 11:00

하나님의 미소

존 파이퍼의 「하나님의 숨겨진 미소」(God's hidden smile)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세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존 번연이다. 그는 12년 동안 옥살이 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였고, 「천로역정」과 같은 불후의 명작으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었다. 두 번째 사람은 윌리엄 쿠퍼다. 그는 우울증으로 정신적 고통을 많이 당했다. 연약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찬송시를 많이 작사했다. 세 번째는 데이빗 브레이너드다. 그는 29세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아 신령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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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시며 미소를 짓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하나님의 숨겨진 미소」라고 한 것이다. 비록 이들이 고통 가운데, 연약한 가운데 살았지만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세 사람 모두 누구도 원치 않는 끔찍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진정한 성공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을 보신 주님의 표정을 한 번 생각해 보라!

 

고독한 영웅, 삼손

동양에 항우가 있다면 서양에는 헤라클레스가 있고, 성경에는 삼손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힘이 세다’(strongman)는 것이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열두 번째 사사다(사사기에 나온 마지막 사사).그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 20년 동안 사사로 활동했다. 그를 이야기할 때 항상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비극적인 영웅’, 혹은 ‘고독한 영웅’이라는 말이다. 그는 블레셋과 싸울 때 항상 혼자였고, 백성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백성들은 그가 블레셋을 무찌른 것을 보고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망을 했다(11). 그의 승리보다 블레셋의 보복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했다(12,13). 본문 사건만 해도 그렇다. 주변에 유다인 3천 명이 있었는데(11), 혼자서 블레셋 사람을 상대했다. 이는 그가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했거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잘 아는 대로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에 모였을 때 신전기둥을 넘어뜨려 그들과 함께 죽었다(삿16:30). 한 마디로 적과 함께 자폭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위 ‘자폭테러’ 원조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그를 비극적인, 혹은 고독한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적은 힘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주변에 함께할 수 있는 3천 명의 사람을 두고 혼자서 싸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울러 혼자서 많은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데 나서서 돕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자신들의 지도자이고, 그가 많은 적을 상대로 자신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희망이 없었고, 그 희망이 없는 시대에 삼손이 희망의 불꽃이 되려고 애쓴 것이다. 이것이 삼손 이야기다. 이렇게 혼자서 애를 쓰다가 결국 탈진(burnout)이 되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라맛레히, 승자의 저주

살면서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고, 그 위기는 예고 없이 닥치게 된다. 본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또한 본문이 보여주고 있다. 본문은 삼손이 나귀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인 사건이다. 14장에서 결혼과 관련하여 화가 난 그가 꼬리에 횃불을 묶은 여우 삼백 마리를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으로 몰아넣어 곡식을 모두 태워버렸다(1~5).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보복으로 그의 처가식구를 모두 불살라 죽였다(6). 다시 그는 블레셋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여서 복수를 했다(7,8). 그러자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그에게 달려들었고(9), 그러다가 천 명의 사람이 그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15).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둔 그에게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갈증이 찾아왔다(18). 그 갈증 앞에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면 삼손은 왜 이런 심각한 갈증, 곧 삶의 위기를 만나게 된 것일까? 이것은 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위기와도 관련이 깊다. 대부분 인생의 위기는 성공과 함께 온다. 대개의 경우 성공하면 방심(放心)하게 되고, 방심하면 만심(慢心)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잠16:18)는 말씀처럼 교만하면 위기를 만나게 된다. 겸손과 존영이 친구인 것처럼 교만과 위기도 친구다. 삼손이 그 전형이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 천 명을 나귀턱뼈 하나로 쳐부수고 그곳 이름을 ‘라맛레히’라고 붙였다(17). ‘나귀턱뼈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 마디로 보잘 것 없는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인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공적비를 세운 것이다. 그가 부른 승리의 노래에 하나님은 없고 자신만 드러내고 있다.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16). 승리로 인한 이와 같은 교만이 심각한 갈증, 곧 위기를 부른 것이다. 그가 이렇게 큰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나귀턱뼈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승자의 저주다. 승리에만 도취되면 이렇게 된다. 모든 위기는 여기서 시작이 된다.

 

엔학고레, 위기를 기회로

사람이 대단한 것 같지만 별 것 아니다. 삼손을 보라! 나귀턱뼈 하나로 천 명의 적을 단take my hand.jpg 순에 무찌르는 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갈증에 사로잡히자 순식간에 땅 바닥에 버려진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저 주님께서 붙잡고 계시니까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지 주님께서 놔버리시면 그도 별 수 없는 인간이다. 이것이 본문의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니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께 붙잡아 달라고, 붙잡고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옆의 찬양처럼).

 

지금까지 삼손은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다. 결혼을 할 때도, 그 결혼을 부모가 크게 걱정하며 반대할 때도, 그 결혼이 파국을 맞이하고, 결혼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할 때도 기도하지 않았다. 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는 부르짖어 기도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위기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기는 곧 기회다. 위기는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든다.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하게 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도록 만든다. 비로소 삼손은 블레셋 사람 천 명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18a). 그리고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갇혔다고 부르짖었다.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18b). 위기에 처하고 보니 주님이 보이고, 모두가 주님의 은혜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주셨다.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19).

 

위기를 만났을 때

앞에서 말했듯이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고, 그 위기는 예고 없이 닥친다. 그러면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삼손이 좋은 모델이다. 삼손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게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문제를 놓고 간절히 부르짖으니까 주님께서 삼손에게 ‘엔학고레’를 허락해 주신다. 이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의 심령이 회복되고 소생하였다.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의 샘이고, 생명의 샘이고, 능력의 샘이고, 축복의 샘이다. 구원의 샘이다. 자녀를 위해 부르짖으면 자녀에게 엔학고레를 허락하시고, 가정을 위해 부르짖으면 가정에 엔학고레를 허락하시고, 사업을 위해 부르짖으면 사업에 엔학고레를 허락해주신다. 그러면 무너진 것들이 다시 회복이 되고, 죽어가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연약한 것들이 강해지고, 부족한 것들이 풍성해진다.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엔학고레의 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가 최선이다. 위기는 ‘기도에로의 초청장’과 같다. 이 비밀을 알기에 믿음의 사람은 위기를 만나면 더 많이, 더욱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서 위기를 넘어서게 되고, 더욱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삼손 역시 위기를 기도로 극복하고, 이후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가 되었다(20). 위기 가운데 최선의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 기도는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무료 이용권과 같은 것이다. 이 기도를 잘 선용하기 바란다. 그러면 인생의 갈증, 자녀의 갈증, 가정의 갈증, 사업의 갈증을 완전히 해결 받을 수 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에서 분수처럼 주님의 은혜와 생명과 능력과 축복이 솟아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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