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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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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123회 작성일 16-07-0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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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거룩하게

롬12:1~2

2016. 7/3. 11:00

불이문(不二門)

「너와 나」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틴 부버의 말이다. ‘에녹은 구두수선공이었는데, 가죽의 위쪽과 아래쪽을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맬 때마다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였다. 인간은 영원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데, 어떤 특별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든 일을 할 때 마음에 품은 의도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을 거룩하게 바치는 것에 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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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버에 따르면, 에녹은 평생 구두수선공으로 살면서,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성(聖)과 속(俗)을 ‘둘이 아닌 하나의 문’(不二門)으로 여기고, 일상생활을 거룩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거룩함은 특별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생활하는 삶의 자리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도 전 생애를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보내셨다. 당시 소위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했던 갈릴리 지역을 활동의 무대로 삼고, 주로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내몰린 거리로, 고난 받고 굶주리고 아파하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셨다. 그곳에서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소외당한 사람들(세리, 창기, 죄인,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섬기고 치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며 생활하셨다. 본문을 이와 같은 주님의 삶에 비춰보면 그 해석이 더욱 분명해 진다.

 

거룩한 산 제물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1장까지는 ‘교리’(신학)부분이고, 12장부터는 ‘실천’(윤리)부분이다. 그러니까 본문부터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의 생활에 대한 말씀이 시작된다.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1)이다. 이는 한 마디로 일상생활을 거룩하게 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일상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주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이다. 주님의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라는 것이다. 훌륭한 생활 신앙인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는, 일상을 거룩하게 살 수가 있을까?

 

거룩한 마음

미국 프로야구선수 켄 허브스의 이야기다. 그는 현역시절 ‘확실한 손’(Sure Hand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수비실력으로 얻은 이름이다. 그는 야구선수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87경기 무실책이라는 대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가 1962년에 세운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한 기자가 그를 찾아가 이 별명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별명은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조금 바꿔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실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손이 아닌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확실한 손(Sure Hands)이 아니라 확실한 마음(Sure mind)이라고 해야 합니다. 실책은 손이 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질 때 생깁니다.

 

실책은 손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세상은 결과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결과물을 놓고 왈가왈부한다. 하지만 신앙은 동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동기를 유발시키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상의 거룩함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본문도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a). 먼저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거룩한 말, 거룩한 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자 바리새인들이 비난을 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1~20a).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도 자기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없다. 모르는 것이 마음인데, 누가 그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직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밖에 없다. 그래서 본문이 ‘마음을.......변화를 받아’를 수동태 명령형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수동태마음의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고, 명령형반드시 변화를 받아야한다는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바꾸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피흘려 죽게 하셨다. 그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거룩한 습관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성도는 거룩한 일상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주님의 보혈로 이미 깨끗하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거룩함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살지 못하고, 주님의 향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세속적이고 육적인 옛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 마음과 함께 중요한 것이 거룩한 습관이다. 물리학에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를 뉴턴의 제1법칙이라고 하는데,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정지되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정지관성),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움직이려고 한다(운동관성). 예를 들면 멈춰있던 차가 출발할 때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몸이 뒤로 가는 것은 정지관성이고,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출 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은 운동관성이다. 이런 운동법칙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며칠 전, 모 탤런트가 자살을 시도했는데 발견이 되어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그는 몇 년 전 우울증으로 마약을 복용해서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석방이 되어 자숙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기간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 후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여기에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습관의 관성이다. 그는 교회 집사였고, 마약 때문에 감옥까지 다녀왔고, 치료의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 습관에 묶여있었던 것이다. 습관이란 이렇게 견고한 진(陣)과 같은 것이다. 이 습관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거룩한 생활을 살아낼 수가 없다. 마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처럼 습관이란 돌이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습관이란 가시덤불이 믿음이 열매를 맺을 수 없도록 한다. 사단의 최대 작전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은 하되 나쁜 옛 습관에 계속 빠져 있게 하는 것이다.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보면, 사단이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했다는 조카의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한다.

 

네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인(成人)이 되어 회심한 사람 중에는 잠시 원수의 진영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수백 명도 넘으니까. 네가 할 일은 그로 하여금 원수 앞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몸에 배어 있는 나쁜 습관들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는 아직도 우리 편이다. 이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단의 점령지가 되고 있는 나쁜 습관, 악한 습관, 경건하지 못한 습관들은 버리고, 새로운 습관, 좋은 습관, 경건하고 거룩한 습관을 갖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이미 마음이 새롭게 되었다. 이제 이 마음이 경건하고 거룩하게 길들여져야 한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말씀 중심, 하나님의 은혜 중심으로 습관이 들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이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만 추구하는 하나님 중심의 마음으로 길들여질 수 있을까? 그 비결은 ‘말씀’이다. 성경은 말씀을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예리한 검’(히4:12)이라 했고, 습관의 가시덤불을 깨끗이 태워버리는 ‘’(렘23:29a)이고, 습관의 돌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방망이’(렘23:29b)라고 했다. 말씀을 통해 악한 옛 습관을 무너뜨리고, 깨끗이 태워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도’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8).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항상 좋은 마음, 복된 마음, 은혜로운 마음,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지속되어 마음의 습관, 생각의 습관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말씀과 기도다(딤전4:5).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 하고, 말씀을 영혼의 양식이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씀과 기도가 거룩한 마음의 습관, 경건한 생각의 습관을 좌우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조문효도(蚤蚊孝道)

조문효도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가장 탁월한 효도라고 생각한다. 조문(蚤蚊)은 벼룩과 모기를 뜻한다. 이는 벼룩이나 모기, 이, 빈대와 같은 모든 해충을 총칭하는 말이다. 자식이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옷을 벗고 자면서 벼룩이나 모기와 같은 해충을 유인해서 자신의 살을 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런 해충에게 물리지 않고 깊은 잠을 자도록 해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효자(녀)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마음만은 최고 아닌가? 마음이 이런 사소한 일에까지 부모에게 가있는 사람이라면 부모를 위해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장 탁월한 효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데도 이런 마음이 요구된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마음을 항상 주님께 두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 주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의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이 말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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