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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머물게 하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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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829회 작성일 17-05-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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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머물게 하는 비결

롬12:10~13

2017. 5/14. 11:00

행복이란 천사

하나님께서 어느 가정에 한 사람을 보내주셨다. 그 사람은 그 가정에서 크고 작은 일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정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아이들도 돌보는 등 여러 가사 일을 비롯하여 기도도 해주고, 위로가 필요할 땐 위로도 해주고, 상담도 해주고, 병도 고쳐주고,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부부가 갈등하고 있을 땐 화해도 하게해주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그 가정의 모든 것이 잘되고 행복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보내주신 행복이란 천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행복이란 천사가 그 가정을 떠나겠다고 했다. 부부는 몹시 섭섭해 하면서, 왜 떠나려고 하냐며 계속 함께 살자고 매달렸다. 그러자 행복이란 천사가 말했다. 자신은 계속 머물고 싶지만 이 가정이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여건이 안돼서 떠나야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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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행복도, 건강도, 기쁨도, 즐거움도, 부귀나 권세도, 명예도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건강 하나만은 그동안 자신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질병이나 사고로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부부가 결혼할 때 우리만은 기필코 행복하리라 얼마나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가? 그런데 얼마 못가서 사네 못 사네 아우성을 친다. 아무튼 일정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여지(餘地)없이 떠나버리는 것이 이들이다. 하지만 이를 바꿔 생각하면 일정한 여건이 갖춰지면 계속 머물게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행복이란 천사가 떠나지 않는 여건을 만들어, 특히 가정에서 부부관계의 행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존중이 가진 중요성

본문은 신앙생활전반에 관한 종합적인 권면 중에 일부다. 특히 10절은 관계에 대한 교훈인데, 잠언처럼 되어 있다. “형제를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이를 부부관계에 적용하여 보려고 한다. 관계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관계가 부부관계다. 그래서 부부는 무촌(無寸)이라고 한다. 부부처럼 가까운 관계도 없지만 헤어지면 남남이라는 뜻이다. 이런 부부관계를 훌륭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10절이다. 이 말씀이 부부관계에서 행복이란 천사를 항상 머물게 하는 비결이다. 그것은 ‘존경(중)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자가 누군지 아는가? 자기 남편을 이기려고 하는 여자다. 이 여자보다 더 어리석은 여자가 있다. 이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여자다. 그렇다면 가장 찌질하고 못난 남자는 누굴까? 자기 아내를 하녀처럼 생각하는 남자다. 물론 이해는 된다. 세상살이에 여기저기서 차이다보니까 가정에서만큼은 제왕처럼 군림하고 싶고, 아내에게만큼은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신성한 가정에서 아내나 자녀에게 군림하고, 남편을 이기려고 가정을 전쟁터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이런 부부가 많다. 그래서 부부의 이런 모습을 보여준 〈장미의 전쟁〉이란 영화가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부부를 마귀가 가장 좋아한다. 이런 가정을 마귀는 자신의 놀이터로 삼는다. 우리 모두는 가정을 마귀의 놀이터가 되게 하고, 마귀를 미소짓게 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부부는 서로 지고이기는 경쟁(적대)관계가 아니다. 사랑의 관계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져주는 것이 미덕이고, 먼저 항복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이 영광을 받는 비결이다.

 

발을 저는 사람과 결혼을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항상 자기 남편을 절뚝발이라고 무시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이 여인을 ‘절뚝발이 아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남편이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이 여인은 이런 남편을 박사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불렀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 역시 이 여인을 ‘박사님 아내’라고 불렀다. 먼저 존중하면 존중을 받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 은혜의 법칙, 행복의 법칙, 곧 황금률(Golden Law 마7:12)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라고 했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존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존중을 받고 싶어 하지만 먼저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존중하는 일에 있어서 서로 앞서가며’ 라고 한 것이다. 존중하는 일을 부부가 서로 ‘경쟁적으로’ 먼저 실천하라는 것이다(★천국과 지옥의 차이). 이렇게 서로 경쟁적으로 존중하다보니 서로 존중하는 행복한 부부, 서로 존중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존중은 행복을 부르고, 행복을 머물게 하는 비결이다. 아무튼 존중은 상대방에게 행복을 느끼도록 만든다. 따라해 보자!

 

아내를 행복하게!

남편을 행복하게!

자녀를 행복하게!

가정을 천국처럼!

 

올바른 부부관계는 존중에서 비롯된다.

존중이란 ‘상대를 높이어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존중이란 뜻의 영어단어 ‘respect’는 라틴어 ‘respectus’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다시’(re)와 ‘보다’(specere)가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본다는 것은 ‘상대방을 유심히 보고, 깊이 보고, 진지하게 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유심히 보고, 진지하게 돌아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그의 형편과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 소중한 모습을 알게 된다(‘풀꽃’이란 시). 이것이 바로 존중의 시발점이다. 세상에는 집과 차, 아름다운 옷, 아름다운 장소 등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고, 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다. 신뢰는 돈이 아닌 마음으로 얻는 것이다. 그 마음이 곧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은 존중을 받을 때 살맛이 나고, 신뢰가 생긴다. 그래서 존중해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게 된다. 어떤 희생도 즐겁게 감수하게 된다.

 

바울은 엡5:22~33에서 부부윤리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부부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관계를 이렇게 비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관계가 그만큼 신성하고 신비롭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고(24), 남편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25)고 했다.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종과 사랑은 존중에서 비롯된다. 남편이 아내를 존중할 때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게 되고, 아내 역시 남편을 존중할 때 주님처럼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종은 ‘굴종’(屈從)이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은 ‘위선’이다. 오늘날 부부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중없는 복종, 존중없는 사랑 때문이다. 이런 부부를 소위 ‘쇼윈도 커플’(Show Window Couple)이라고 한다.

 

존중은 이해에서 나온다.

나이든 부부가 결혼 30주년을 맞아 치킨 집을 갔다. 조촐하게 통닭을 먹으면서 30주년 결혼기념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통닭이 나오자 남편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닭 날개를 찾아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를 쳤다. ‘도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지난 30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닭 날개를 그렇게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누구 복창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다리다!’ 이렇게 남편에게 퍼부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편은 놀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닭 날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이렇게 부부는 통닭을 그대로 두고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날개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지 아내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내에게 좋아하는 부위가 어디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자책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날개를 제일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고, 가장 좋아하는 날개를 주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화를 낸 것에 깊이 후회했다. 이렇게 되자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얼마나 속이 상하고 섭섭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 남편이 고맙고, 자신의 서툰 사랑을 인내하며 받아준 소중한 아내가 고마웠다.

 

존중이란 단어의 의미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존중은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남편처럼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폭력이다. 사실 이 부부뿐만 아니라 많은 부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부부이기 전에 남자와 여자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차이가 많다. 그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존중은 깊은 이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해야 아내(남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에 감동하고, 이루고 싶었던 꿈,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또한 알아야 그것을 존중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존중에다 ‘사랑’(10a)을 곱(더)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 가정이 기적의 장소, 우리 부부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은 서로 존중하면서 거기에 사랑을 더(곱)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의 기적을 만드는 부부, 행복의 기적을 만드는 가정이 되는 것이다. 행복의 기적을 만드는 성도, 행복의 기적을 만드는 교회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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