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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둥Ⅵ, ‘무거운 짐’(Heavy la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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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375회 작성일 17-08-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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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둥, ‘무거운 짐’(Heavy laden)

고후12:7~10

2017. 8/27. 11:00

작은 철사 때문에

내가 본 아버지란 책이 있다. 우리 교단 총회장인 서울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이 자신의 아버지 이상근 목사님을 회고하며 쓴 책이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상근 목사님이 16살 때, 발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산에 가서 4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지만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한약을 붙인 것이 덧까지 났다. 그래서 3년 동안 출입을 못하게 되었다. 학교 다닐 나이인데 움직일 수 없으니 공부도 포기하고, 그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읽게 되었고, 꼼짝 못 하고 앉아서 성경만 읽다보니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소위 소년 성경박사가 된 샘이다. 이것이 그가 훗날 성경 주석서를 쓰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60년 동안 발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1993년 은퇴하면서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으면서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뒤꿈치에서 1cm 가량 되는 머리카락 굵기의 철사가 나온 것이다.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속에 들어가서 그의 평생 가시가 된 것이다. 그것을 거의 60년 만에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어이없는 일인가? 이 작은 철사 때문에 60평생을 남들처럼 뛰놀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하고, 공도 차지 못하고, 제 때에 공부도 못하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그 철사를 보여주며 이렇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여러분! 이 철사를 보세요. 내 발꿈치에 60년 동안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를 성서학자가 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이것이 아니었으면 나는 주석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잘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일찍 발견하여 수술했더라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런 일들 중에 하나가 닥치기라도 하면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를 꼭 집어 이렇게 괴롭히는 거냐.고 항의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이상근 목사님처럼 그것을 오히려 자랑하게 될 것이다. 감사할 날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면서 심지어 우리의 실수와 허물까지도 선으로 바꾸어주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매우 역설적인 주제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그것은 행복기둥 7H의 여섯 번째, ‘Heavy laden’(무거운 짐)이다.

 

가시가 주님의 은혜라고?

본문은 사도 바울의 고백적인 간증이다. 1절부터 간증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계신 낙원까지 올라가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다. 그 광경이 너무 놀라워서 말을 잃을 정도였고, 또한 말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것들이 자신의 자랑이 될까 두려워, 그래서 교만하게 될까 두려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이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가시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간질이 아닐까추정하고 있다. 요즘엔 목회자의 사소한 외모에도 시비를 거는 판국이다. 그런데 목회자가 말씀을 선포하다가 강단에서 발작을 일으켜 거품을 뿜고 괴성을 지르며 넘어진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 놀라서 도망가고 쪽팔려서 교회를 옮겨버린 신자도 많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병도 다스리지 못한 위인은 자격이 없다며 교회에서 나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바울에게 이 가시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이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숫자의 의미가 아니다. 3은 완전수로 계속해서’, ‘간절히’, ‘오랫동안기도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때 주님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이었다. 한 마디로 거절이었다. 그러면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가시가 곧 주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복의 통로가 된 가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가시가 어떻게 은혜라는 말인가? 가시는 가시지! 그리고 자녀로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수시로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가시가 은혜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서 해석을 잘 해야 한다. 사실 여기서 주님은 가시의 문제를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긴 안목에서 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바울 역시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래서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시각에서 보니 정말 그것이 은혜였다는 고백이 본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로 가시가 은혜였다고 말한다.

 

하나는 가시가 자신의 영적 자만(교만)을 막는 안전장치였다고 한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7a). 성공 후에 무너진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요한 이유가 교만 때문이다. 신앙세계도 다르지 않다. 바울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겸손하여(고전15:83:8딤전1:15) 주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하나는 가시가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9b,10).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믿음의 사람은 힘들고 어려우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도하면 은혜를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바울 역시 이런 어려움이 그를 자주 주님 앞에 엎드리게 했고, 그로 인하여 주님의 능력 부어주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가시 때문에 은혜를 받게 되었고, 은혜로 가시를 극복하게 된 것이다.

 

(본문에는 없지만)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면, 가시는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게 하는 방편이다. 살다보면 이런 것들에 시야가 가려서 인생을, 더 나아가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출발과 도전, 헌신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가시는 이런 것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알지라 카스틸유가 쓴 절벽에서 젖소를 떨어뜨린 이유라는 책에 나온 우화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이야긴데, 스승과 제자가 길을 가다가 한 농장입구에 도착했다. 농장은 넓고 위치도 좋았다. 그런데 황량했다. 농장 가운데 허름하고 낡은 집이 있는 걸 보고 스승이 가서 문을 두드렸다. 농장 주인이 나와서 스승을 맞이하는 데, 온 가족이 누더기를 입은 거지 행색이었다. 스승이 주인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가십니까?그러자 주인이 대답했다. ‘우리에게 젖소 한 마리가 있는데, 그놈이 매일 몇 리터의 우유를 줍니다. 그중에서 일부는 팔아서 다른 먹거리로 바꾸고, 남은 것으로 치즈나 버터를 만들어 먹습니다.스승이 주인의 대답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제자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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