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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이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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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564회 작성일 17-06-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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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이어주는 것

엡4:25~32

2017. 6/25. 11:00

아내가 원수라고?

집사 부부가 있었다. 수요일인데, 실컷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만 수요예배에 참석했다. 요즈음 신자들은 부부싸움을 안해도 수요예배는 안 나가는데, 부부싸움을 하고도 수요예배를 나간 것을 보면 믿음이 괜찮은 부부인 것 같다. 아무튼 부부싸움을 안하는 것이 좋지만 싸우더라도 이 남편 집사처럼 반드시 예배는 드려야한다. 사실 싸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예배를 포기하는 것이다. 싸웠다고 기도도 안하고, 찬양도 안하고, 예배도 드리면 않으면 누가 좋아할까? 물론 사단이다. 부부사이에 갈등의 장본인은 남편도 아내도 아니다. 사단이다. 그리고 사단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한가지다. 갈등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예배생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배생활이 무너지면 결국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27). 그런데 교회에서 돌아온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다. 언제 싸웠냐는 듯 싱글벙글했다. 아내는 ‘저 원수가 은혜를 받았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아내는 도대체 무슨 말씀에 저렇게 은혜를 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음날 목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이 있어 수요예배를 참석 못했는데, 남편이 크게 은혜를 받은 것 같다며 무슨 내용의 설교였냐고 물었다. 그러자 목사님이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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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지만 사실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자 중에도 건강하지 못한 부부가 많다. 그런데 부부관계도 건강하게 만들어가지 못하면서 가정 같은 교회 운운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왜 교회 안에 원수처럼 지내는 성도가 많고, 왜 콩가루 교회가 많은지 아는가? 원수처럼 사는 부부가 많고, 콩가루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사람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말했다. 먼저 자신과 가정을 잘 다스리라는 것이다. 자신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해야 행복한 교회생활, 행복한 사회생활을 기대할 수가 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이야기에 나온 남편 집사는 유감스럽기는 해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도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는 점이다. 이렇게라도 사랑하다보면 소중한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바꿔주신다. 신앙생활 잘하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낼지라도 ‘해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것이 중요하다. 실패하면 다시 작심삼일하면 되고, 계속 작심삼일을 반복하다보면 결심대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한 번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말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자꾸 넘어지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그곳에, 아직은 요원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도전하는 그 마음에 행복이 고개를 내민다.

 

행복을 이어주는 것들

지난 주일에 ‘행복을 퍼뜨리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우리는 주님 덕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로 행복을 주변에 퍼뜨리며 사는 것이 사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퍼뜨리는 생활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이 시간에는 이 행복을 퍼뜨리는, 즉 행복을 이어주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미국의 저명한 가정생활 세미나 강사 제임스 해치(J. Hatch)교수는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해서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open mouth(열린 입), open ear(열린 귀), make schedule(계획을 세우라)이 그것이다. 나는 이들을 ‘행복을 이어주는 것’에 적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open mouth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이다. 말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행복의 다리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주고, 짧지만 다음과 같은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힘내, 기도할게.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

 

진심을 담은 이런 말 한마디가 다시 일어서게 하고, 다시 시작하게 하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고, 깨진 마음을 치료해 준다. 사람은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위로를 받지 못해서 죽는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려워도 누군가 관심을 갖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주면 그것을 디딤돌삼아 다시 일어서게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누군가에게 놀라운 도약의 재료가 되고, 몸과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회복제가 되고, 영혼의 치료제가 된다. 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벤자민 플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드러내는데 있다.’ 성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이 맞다. 사람들은 험담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다. 신뢰하지도 않고 함께 있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어느 때 내가 그 사람의 험담 대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건강한 관계를 맺기가 힘들다. 반면 칭찬하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한다. 그래서 떡밥을 던지면 고기들이 모여든 것처럼 이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게 된다. 그러니 항상 풍성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 관계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부른다.

 

좋은 말 한마디는 주변을 행복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행복을 이어준다. 그래서 본문에도 말에 대한 교훈이 강조되고 있다. 본문은 1절부터 이어지는 부름 받은 사람의 생활에 대한 교훈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이 된 사람의 습관에 대한 말씀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버리고 입어야 할 습관으로 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며(25),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고(29),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31)고 한다. 여기서 덕을 세우는 참되고 선한 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말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비결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통하여 행복이 이어지게 된다. 바로 이런 말에 대하여 open mouth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 대하여 여러분의 입이 활짝 열리기 바란다. 그래서 주변에 행복을 이어주기 바란다.

 

open ear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다.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잘 들어주는 것,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다. 사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1:19)고 했다. 말은 잘해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대화는 ‘대놓고 화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대화에 서툴다는 이야기고,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잘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명령이다. 말 그대로 대놓고 화내는 것이다. 여기엔 칭찬이나 격려, 위로는 없고 무수한 지시와 명령만 있게 된다. 잘 듣는데서 대화가 시작이 되고, 들어주는 것 자체가 무언의 지지고, 격려고, 위로다. 그러므로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 open ear를 ‘잘 들음’이라고 하지 않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라고 한 것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만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understanding)는 겸손하게 아래(under) 서는(standing) 것이고,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를 가져야 진정한 들음이 이루어지고, 이런 들음은 깊은 신뢰와 사랑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이것이 행복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소와 사자의 어긋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소와 사자가 죽도록 사랑을 했다. 그래서 결혼까지 했다. 둘은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했다. 소는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고, 사자는 풀이 싫었지만 참았다. 사자도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다. 참을성은 어느 날 한계를 드러냈다. 둘은 마주 앉아 대화를 했다. 그렇지만 둘은 끝내 헤어지고 말았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하는 말이다. ‘난 최선을 다 했어!’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소는 소의 눈으로만 보고, 사자는 사자의 눈으로만 본 까닭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말은 많이 했지만 들음이 없었던 것이다. 듣지는 않고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자기 입장에서만 말을 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 일뿐이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보지 못하고 읽을 줄 모르는 최선은 최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open ear, 두 귀를 활짝 열고 잘 들음에서 시작된다. 이해와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 잘 들을 수 있지만 잘 들어주다보면 이해와 배려하는 태도가 생긴다.

 

open mind

앞에서 소개한 해치 교수는 세 번째로 ‘make schedule’를 이야기했다. 이는 사소한 것도 함께 하라는 뜻이다. 나는 이것을 ‘open mind’로 고쳐 이야기하고 싶다. 오픈 마인드는 일종의 수용적인 마음이다. 소와 사자 이야기에서처럼 갈등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해부족, 배려 없는 태도다. 이는 서로에 대한 진진한 들음이 없기 때문이다. 귀가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가 막히면 입이 닫히고 마음까지도 닫히게 된다. 귀가 열려야 입도 열리고 마음도 열리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열리면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허물도 덮어주고 품어주고 용납하게 된다. 비로소 32절의 말씀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open mind, 곧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원수까지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품으셨던 주님처럼 수용적인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진다. 또한 이 마음이 행복을 이어주고 이어가게 한다.

 

사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키나 몸무게가 아니다. 마음이다. 마음이 크고 넓은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한다. 그 마음의 크기가 수용성이다. 그래서 마음을 활짝 열고 다 받아주고 품어주는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는 행복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행복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고, 이 행복을 주변에 퍼뜨려야 하는, 이 행복을 이어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행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이 열리고(open mouth), 귀가 열리고(open ear), 마음이 열려야(open mind) 한다. 그리하여 항상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선하고 경건한 말을 하고, 깊은 이해와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누구라도 품을 수 있는 수용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소중한 것들을 통하여 주님이 주신 행복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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