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둥Ⅰ, ‘마음’(Heart)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행복기둥Ⅰ, ‘마음’(Heart)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820회 작성일 17-07-23 13:59

본문

행복기둥Ⅰ, ‘마음’(Heart)

딤전6:6~10

2017. 7/23. 11:00

H-세대

미래학자들은 19세기와 20세기를 자유와 평등의 세기, 21세기는 행복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자유, 평등, 행복’은 모두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사다. 아무튼 21세기의 흐름(trend)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행복이고, 행복한 사람이라야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상품이 많다. 심지어 행복주택, 해피 랜드, 해피 김치와 같은 행복(해피)이란 수식어가 많이 붙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항(抗)우울제, 즉 행복해지는 약 ‘프로작’(Prozac)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약제가 되었다. 이는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해 주는 좋은 사례다.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는 이 세기에 주도적 역할을 할 사람을 ‘H-세대’(Happiness Generation)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여러분과 내가 이 행복세대의 주체가 되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그 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7H, 행복기둥

잠언에 지혜의 초청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9:1~6). 지혜가 모든 준비를 풍성하게 갖추고 사람을 초청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의 초청에 응하면 생명과 명철을 얻게 된다. 이 지혜는 곧 예수님이시다. 특히 1절은 우리를 초청한 지혜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여기서 집은 곧 지혜 자신이고, 일곱 기둥은 지혜의 ‘완전성’(성경에서 7은 완전수), 혹은 지혜의 일곱 가지 ‘신적 속성’을 의미한다. 이 지혜의 일곱 가지 신적 속성이 야고보서에 나와 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이 일곱 가지 신적 속성을 통해 완전한 지혜의 삶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혜는 이 일곱 가지 신적 속성으로 완전한 집을 짓고 풍성한 준비를 갖추어 사람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지혜의 초청을 행복에로의 초대에 적용해 보려고 한다. 하나님은 행복의 일곱 기둥을 다듬어 행복의 집을 짓고 준비를 다 갖추어 우리를 행복에로 초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일곱 기둥이 무엇인가? 그것은 ‘7H’(Heart, Habit, Home, Hand, Hug, Harmony, Hope)다. 이 일곱 가지가 앞에서 소개한 행복세대가 지향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이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황홀한 행복한 인생, 가정, 교회라는 집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다. 이 시간 행복세대가 지향하는 행복기둥, 7H의 첫 번째 ‘Heart’(마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행복은 마음에서부터

사회 심리학자 엘렌 랭어(E. Langer)는 ‘마음(생각)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실험했다. 70대 노인 8명을 수도원에 가서 일주일 동안 살되 두 가지 생활규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하나는 50대처럼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50대처럼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음악도 50대에 부른 음악을 듣고 부르고, 영화도 50대에 보던 영화를 보고, 도움 없이 직접 청소나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조사해보니 8명 모두가 시력, 청력, 기억력, 지능, 악력(握力)이 신체 나이 50대 수준과 같았다. 50대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하다 보니 몸 전체가 50대로 돌아간 것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활동하니까 몸도 다시 젊어진 것이다. 마음의 생각이 이처럼 놀랍다. 그는 실험결과를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몸의 한계가 아니라 마음의 생각이다.’ 마음 챙김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나이가 70대여서 노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이 70대이기 때문에 70대 노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의 생각이 문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성경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5장에 팔복이 나오는데(3~10), 그 중 6개가 ‘마음’과 관련이 있다.

 

 

행복하도다. 마음이 가난한자여, 천국이 너희 것이다.

행복하도다. 애통하는 자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도다. 온유한 자여, 너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행복하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여, 너희가 배부를 것이다.

행복하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여, 너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행복하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여, 너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 역시 행복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의 생각을 잘 챙겨야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 마음에 더러운 생각, 부정한 생각, 불행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 삶은 더럽고 부정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속에 있는 죄악의 쓴 뿌리를 제거하고(히12:15),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를 받으라(롬12:2)고 촉구한다. 나아가서 행복한 삶의 모델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을 것을 권하고(빌2:5) 있다.

 

행복은 자족하는 마음에 있다.

본문 또한 행복한 삶을 위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특히 최소한의 것만으로 만족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안달하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말씀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현재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하는 해로운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여러 시험과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을 보라!).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가지지’ 못한 것보다 ‘더 가지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충분히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지 못하고 더 누리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 것이다.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자족할 줄 모르는 태도가 문제다. 옛날부터 행복은 자족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족하는 마음(Satisfaction)은 성취(Achievement)를 욕구(Desire)로 나눈 것이다. 이것이 ‘행복공식’(S=A÷D)이다. 아무리 많은 성취를 남겼어도 성취보다 욕구가 크면 만족할 수 없고, 비록 성취가 적을지라도 욕구보다 성취가 크면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성취를 늘리는 것보다 욕구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를 늘리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여 좀 더 행복해지려 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무한 경쟁시대에 이는 결코 만만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욕구를 줄이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요즈음 선진국에서는 ‘4S’(slow, slim, small, simple)가 유행이다. 산수에서, 분수의 값을 크게 하려면 분자를 키우는 것보다 분모를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99/4가 있다. 분자를 하나 키우면 100/4으로 그 값은 25다. 하지만 분모를 하나 줄이면 99/3으로 그 값은 33이 된다. 아예 분모가 ‘0’이면 분자에 상관없이 분수의 값은 무한대가 된다. 자족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나라 부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더 가지려고 안달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라’(히13:5)고 한다. 본문 역시 ‘지족하는 마음은 경건(=신앙생활)에 유익이 많다’(6)고 한다.

 

나는 가급적이면 뷔페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곳에 가면 꼭 과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적당하게 먹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렇지만 눈앞에 펼쳐진 음식을 보면 결심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다. 욕구를 줄여서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 역시 수많은 음식이 차려진 뷔페에 가서 먹는 것을 줄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들 천지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욕구를 줄여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뷔페를 갈 때면 먼저 적당하게 배를 채우고 간다. 그러니까 허겁지겁 먹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만족한 다른 것이 있다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미 더 좋은 것, 더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다른 그것이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던 주님의 은혜이다. 주님으로 만족하고, 은혜로 배부른 사람은 더 이상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방황도 갈망도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3 / 20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