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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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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030회 작성일 17-05-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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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습관

살전5:16~18

2017. 5/28. 11:00

행복의 주인공

딸만 여섯 명인 딸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다. 그런데 고민이었다. 아이는 6명인데 인형은 하나라 누구에게 주어야할지 난감했다. 엄마는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주겠다!’ 그 말을 듣자 여섯 딸이 하나같이 소리쳤다. ‘에이, 그러면 아빠거잖아!’ 아이들이 보기에도 아빠가 엄마의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면 그 가정이 어떤 가정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엄마의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빠이고, 아빠의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 엄마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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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은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이다. 안타까운 삶은 ‘들어달라고, 알아달라고 떼쓰는 삶’이다. 비참한 삶은 아무리 떼를 써도 소용이 없으니까 ‘떼쓰는 것마저 포기한 삶’이다. 들어주는 삶에는 행복이 깃들고, 알아달라고 떼쓰는 삶에는 불행이 깃든다. 더불어 살면서 우리가 버려야할 생각이 있다.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에 사로잡히면 ‘섭섭이’, ‘서운이’, ‘삐짐이’ 불행을 부르는 이 ‘삼총사’가 마음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삶은 한없이 불행으로 추락하게 된다. 즉시 실천해야할 생각은 ‘내가 좀 더 들어주자. 내가 좀 더 알아주자. 내가 좀 더 품어주자.’는 생각이다. 들어주고 알아주는 삶에 ‘붙들어주는 삶’이 있고, ‘만들어주는 삶’도 있다. 잘 들어주면 주변 사람들이 견고한 성도로 세워져가고 만들어져간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 배로 하고, 입보다 귀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존중할 때 행복은 결코 비켜가지 않는다. 행복은 귀가 하나고 입이 둘인 이상한 사람, 입이 위에 있고 귀가 밑에 있는 해괴한 사람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해괴망측한 사람이 가정에도, 교회에도, 사회에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 사회가 살벌한 지옥이 되어가고 있고, 사람들은 불행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잘 들어주고, 잘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행복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자.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난 원래 걱정이 많고, 염려하는 것을 타고 났어요!’ ‘난 원래 무뚝뚝해요!’ ‘난 원래 소심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알고 보면 이것도 일종의 자기합리화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오랜 기간 학습된 행동이다. 환경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삶의 태도나 습관, 행동, 말, 생각과 같은 것들 대부분이 학습된 것이고, 오랜 기간을 걸쳐서 형성된다. 본문은 성도로서 훈련해야할 삶의 자세(태도)에 대한 말씀이다. 그것은 기쁨기도감사인데, 행복을 부르는 중요한 요소다. 이 단어들 앞에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이들은 끊임없는 반복의 의미를 가진 부사들이다. 그리고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요약하면, 끊임없이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처럼 항상 기뻐하는 훈련, 쉬지 않고 기도하는 훈련,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쁨의 사람, 기도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즉 행복의 주인공, 행복을 만드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만 있고, 이룰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일시적으로 행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욕심은 또 다른 조건을 바라게 되고, 그것을 갖기까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행복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행복은 훈련과 연습의 문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빌4:12). 상황과 상관없이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배웠다는 것이다. 만족하는 법, 감사하는 법, 기뻐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다는 것이다. 그렇다. 분노를 조절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시기나 질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구원은 거저 받은 것이지만 구원 이후의 삶은 눈물과 땀을 쏟고 피를 뿌리는 훈련과 연단이 요구된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자기 몫이 아니다. 하지만 걷고 말하는 것은 자기 몫이다. 그래서 아이가 걷기 위해서 2천 번 정도 넘어지기를 반복하고,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 6천 번은 듣고 되풀이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훈련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 모든 사물에 법칙이 있듯 행복한 생활에도 법칙이 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 즉 행복해지는 습관을 갖기 위해 다음과 같은 법칙을 따라 연습해 보자.

 

1. 바늘과 실의 법칙

삶이란 바늘과 실의 악장이라 할 수 있다. 바늘 가는대로 실이 따라간다. 바늘과 실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된다. 역할이 바뀌면 바늘과 실은 따로 놀게 된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바늘이 가는대로 실이 따라갈 때 해진 것 찢어진 것이 꿰매지고 아름다운 옷이 완성된다. 바늘은 예수님이시고, 실은 우리다. 항상 주님이 앞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야 한다. 우리의 삶은 주님을 믿고 따를 때 행복이 보장된다. 주님을 따르다보니 누더기 옷처럼 깨지고 찢어지고 상처투성이 인생이 치료와 회복이 되고, 주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부부라는 행복의 옷, 가정이라는 행복의 옷, 교회라는 행복의 옷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바늘과 실처럼 주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훈련이 곧 행복해지는 습관이다. 이것이 행복해지는 습관의 첫 단추다.

 

2. 산울림의 법칙

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산이 날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다. ‘니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다. ‘야, 이 바보야!’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 멋쟁아! 귀염둥아!’ 하고 외쳐보렴. 아이는 다음 날 산에 가서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정말 산이 소리쳐 주었다. ‘야, 이 천재야! 멋쟁아! 귀염둥아!’ 그렇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삶의 황금율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웃어주고, 먼저 잡아주고, 먼저 고백하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축복하고, 먼저 섬기는 삶이 행복해지는 습관이다.

 

3. 수영의 법칙

수영을 배운 후 물속에 뛰어든 사람은 없다. 모두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배운다. 그런데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 물을 튀기지 않는다. 주변에 불편을 끼치지 않고 수영을 한다. 하지만 수영에 미숙한 사람은 허우적대며 주변에 온통을 물을 튀긴다. 인생도 꼭 같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인생이란 바다에 던져진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인생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준비없이 현장에 던져졌기 때문에 피차 미숙해서 좌충우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차 미숙함을 전제로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크게 탓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어려서 그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도 상대방도 공사중이다, 그래서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서로 기다리며 참아주게 되고,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고, 너그럽게 받아주게 된다. 안타깝게 여기며 위하여 기도하게 되고, 성장하도록 돕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남의 장점을 보면 감사하고, 약점을 보면 기도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행복은 이런 과정에 자라나서 꽃을 피우게 된다.

 

4. 타이어의 법칙

사막에서 차가 빠져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것이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살다보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많은 갈등이란 모래 구덩이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갈등이 없는 딱 한 곳이 있다. 그곳은 공동묘지다. 그곳을 가보면 각지에서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는데, 항상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다. 그러니 갈등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살아있기에 갈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갈등처리가 지혜롭지 못하면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졌을 때 취해야할 태도는 즉시 자존심이라는 바람, 교만이라는 바람, 분노라는 바람, 불평이라는 바람을 빼는 일이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효과적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는 습관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처서 이런 바람을 빼는 것이다. 이 훈련이 행복한 삶, 행복한 관계,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비결이다.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바늘과 실의 법칙에서처럼 항상 주님이 앞서고 그 뒤를 내가 묵묵히 따르고, 산울림의 법칙에서처럼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복된 일을 내가 먼저 실천하고, 수영의 법칙에서처럼 서로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타이어의 법칙에서처럼 자신을 처서 겸손하게 낮추는 훈련을 거듭할 때 행복이 따라다니는 삶이 될 것이다.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훈련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버거운 상황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도 기뻐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불신의 마귀, 불평의 마귀, 불만의 마귀, 분노의 마귀, 불행의 마귀가 왔다가 화들짝 놀라서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된다.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행복을 부르는 ‘삼총사다. 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Be joyful always)는 말씀을 ‘항상 행복하라.’(Be happy always)로 번역한 성경도 있다. 행복해지는 습관을 통해 항상 행복한 여러분의 삶, 가정, 그리고 신앙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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