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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입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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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3,884회 작성일 21-10-2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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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입Ⅱ’

시81:1~4

 

                                                                                                     2021. 10/24. 11:00

최고의 건강비결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그 직업들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가? ‘음악가’다. 특히 그 중에서도 ‘지휘자’라고 한다. 카라얀 스토코프스키 등 세계의 저명한 지휘자 대부분이 90세 정도의 장수를 누렸다. 의사들은 지휘자나 연주자의 장수비결을 네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음악에 심취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적당한 운동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청중의 사랑을 받고 거기에서 기쁨을 얻기 때문이고, 셋째는 연주나 지휘를 하는 동안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넷째는 직업을 취미처럼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습관적으로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주면 심장과 폐기능이 튼튼해진다고 한다. 건강하게 살려면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자주 올려야 한다. 영적 건강 또한 하늘을 향해, 주님을 향해 손을 높이, 자주 올리는 것과 갚은 관련이 있다. 아무튼 손을 들어 지휘하는 지휘자가 장수한 것도 이 원리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성인병을 앓고,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부분의 병은 기쁨을 잃고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 최상의 치료약이 있다. 바로 ‘기쁨’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기쁨은 성도의 표지이며 얼굴이다. 성도가 누리는 특권이다. 성도는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바울은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그리고 감옥에 갇혀서도 기뻐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님 때문이다. 그의 고백처럼 죄인의 괴수 같은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주셨음을 믿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고, 또한 기뻐하라고 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살 수가 있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쁨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 때문이다. 무엇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일까?



기쁨의 장애물

우리는 기쁨의 장애물로 여러 가지를 말한다. 그 첫 번째가 엄악한 ‘환경’이다. 여러 불편한 환경 때문에 기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환경에 민감하고, 환경의 영향과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환경에는 기뻐하지만 나쁜 환경에는 바로 우울해진다. 둘째는 가시와 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기쁨을 주는 동시에 아픔을 주는 존재다. 사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까운 가족, 믿지 않는 사람보다 같은 신앙공동체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셋째는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 ‘염려’다. 흔히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을 염려라고 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신경안정제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엄청난 양의 신경안정제가 팔리고 있다. 그래서 어느 시대보다 환각제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어느 시대보다 잘살고 편리하고 편안함에도 걱정과 염려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이 기쁨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상 부족한 ‘돈’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인 도구가 물질이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거의 없는 물질만능시대다. 우주여행도 가능하고, 수명까지 대폭 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물질에 대한 욕구도 많고, 물질로 인한 스트레스도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에 여유를 잃고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 네 가지가 기쁨의 장애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이유들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기쁨을 잃고 두려워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11:1)고 했다. 여기서 ‘실상’이란 말은 우리의 삶을 받쳐주는 ‘받침대’라는 뜻이다. 우리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건물외벽을 쌓거나 붙일 때, 혹은 칠할 때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설치된 구조물을 보았을 것이다. 그 구조물 때문에 작업자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안심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구조물과 같은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작업자가 그 받침대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염려와 불안 때문에 제대로 작업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건설현장과 다르지 않다. 곳곳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불안한 현실에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탱해주는 받침대가 믿음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서 이 믿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든든한 받침대시자 기쁨의 원친이신 주님을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영적 감각을 깨우라!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믿음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잘 작동하게 하려면 영적인 감각을 깨워야 한다. 영적 감각을 깨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찬양’이다. 장경철 교수는 「기쁨을 유통하는 삶」이란 책에서 기쁨과 감각의 관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먼저 감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닙니다. 기쁨의 반대는 무감각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임을 압니다. 오히려 미움은 무관심보다 사랑에 가깝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미움은 반쯤 간 사랑입니다. 미움이 반쯤 간 사랑이듯, 슬픔도 반쯤 간 기쁨입니다. 애통하며 슬퍼하는 사람은 기쁨에 가까이 가다가는 사람입니다. 슬프다는 것은 감각이 회복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애통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위로 중에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무감각입니다. 감각이 없을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먼저 우리의 무감각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각이 살아날 때 기쁨도 살아납니다.’



문제는 감각이 없는 마음이다. 이는 죽은 것이다. 사실 마음이 죽어버리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장경철 교수의 말처럼 감각이 없는 마음을 깨워야 하는데,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무엇으로 깨울 수 있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이 곧 ‘찬양’이다. 찬양하면 마음의 감각이 회복이 된다. 마음이 깨어난다. 영적 감각이 깨어나고, 회복이 된다. 감사가 회복이 되고, 사랑이 회복이 되고, 기쁨이 회복이 된다. 경건생활이 회복이 된다. 찬양을 듣거나 부르다면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의 쓰나미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적 감각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학자들은 성경 중에서 우리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 ‘시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탄식’시 혹은 ‘비탄’시다. 인생의 어려움에서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들이다. 이런 종류의 시가 거의 2/3에 해당된다. 그만큼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날씨도 1년 365일 가운데 맑은 날보다 흐리고 비 오고 눈 내리는 날이 많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탄식과 비탄 속에서도 빛줄기처럼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것이 있다. 찬양이다. 이는 시편을 뜻하는 말에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시편을 히브리어로 ‘테힐림’(םילהת)이라고 하는데, ‘찬양들’이란 뜻이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찬양을 잃지 말라는 것, 찬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어려움에 눌리지 않게 되고, 힘든 현실로 인하여 마음이 무뎌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입을 크게 벌려 찬양하자!

본문은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 ‘크게 노래하고 기쁜 소리로 찬양하라’(1)고 하고, 더 나아가 북을 치고 수금과 비파로 ‘아름답게 연주하며 노래하라’(2)고 한다. 특히 초하루와 보름과 명절에 ‘찬양의 나팔을 불라’(3)고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법이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라고 한다(4).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입을 크게 열어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의 으뜸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찬양이다. 특히 입을 크게 열어 찬양하는 것이다. 입을 크게 열어 찬양한다는 것은 큰 소리로 찬양한다는 뜻도 있지만 간절히 찬양하고 즐겁게 찬양한다는 뜻이다. 기쁜 일, 좋은 일이 있으면 입이 절로 벌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입을 은혜로 채워주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시고, 감사로 채워주시고, 여러 찬양의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신다. 



찬양의 유익과 복은 헤아릴 수가 없다. 우선 찬양하면 영적으로 힘을 얻게 된다. 영적 근육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과 상황을 넘어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마음의 근심과 걱정은 달아나고 기쁨이 솟아나고 평안이 찾아온다. 찬양은 암흑을 뚫고 견고한 장애물을 파괴시킨다. 사단의 진지를 무너뜨려 악한 세력을 쫓아내고,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는 구원의 열쇠다. 또한 주님의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히 채우는 비결이고, 삶의 활력을 얻는 최고의 건강비결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입을 크게 열고 찬양할 때,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부흥의 파도가 밀려오게 된다. 모쪼록 찬양의 입을 크게 열어 일상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찬양하므로 찬양의 유익과 은혜와 복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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