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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를 극복한 믿음,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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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1,910회 작성일 15-02-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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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를 극복한 믿음, ‘입다’

삿11:1~11

2015. 2/8. 08:00, 11:00

거절감에 대하여

환갑이 넘은 어느 권사님 이야기다. 이 분은 옷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괴로워했다. 예쁜 옷을 보면 사지 않고는 견디질 못했다. 옷이 없어서가 아니다. 교회바자회 때마다 많은 기증을 해도 방 하나를 옷장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그래서 옷에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옷을 그만 사겠다고 다짐해도 예쁜 옷을 보면 그런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분이 이렇게 옷에 집착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거절감’이다. 열 살 때였다. 엄마가 예쁜 블라우스를 사다가 셋째 언니에게 입혀주었다. 그 블라우스가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엄마에게 자기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런데 엄마는 ‘네 언니는 무엇을 입혀도 예쁘지만 너는 아무리 예쁜 옷을 입혀도 소용없어!’ 하고 면박만주고 사주지도 않았다. 엄마로부터 이와 같은 거절감이 평생 예쁜 옷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목회자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신자들이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까? 그래서 교회를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알고 있는 어느 목회자는 열심히 섬겨서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건축까지 훌륭하게 했다. 그런데 교회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교회를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거부하자 처음엔 경제적으로 압박을 하더니 끝내는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생활비를 주지 않는 것은 목회자 존재자체가 싫다는 반응이다. 그 동안 자신이 쏟은 정성과 사랑에 대한 너무도 가혹한 결과였다. 결국 그 분은 큰 상처를 안고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다른 교회로 옮겨가서도 거절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거절감(rejection)이란 과거에 거절 받은 아픈 감정이 부적절하게 작용하는 마음이다. 거절감은 상한 마음이 되는 첫 출발이다.

 

 

불우한 인생

본문에도 거절의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8번째 사사 ‘입다’가 그 주인공이다. 입다를 우리나라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에 비유하여, 그를 ‘이스라엘의 홍길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 다 서자(庶子)에다 부모형제와 함께 살지 못했고, 불량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홍길동보다 입다가 더 비참했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설음에 스스로 집을 나왔지만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고 배다른 형제들에게 집에서 도둑처럼 쫓겨났다(2). 집에서 뿐만 아니라 고향에서까지 쫓겨났다(11). 자기 잘못도 아닌데 차별과 왕따와 학대를 당한 불우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피하여 고향(길르앗 라못)에서 멀리 떨어진 ‘돕’지역으로 갔다(3). 돕은 갈릴리 북쪽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산악지대였다.

 

 

이렇게 쫓겨난 한심한 처지인 그에게 ‘잡류’가 모여들었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여기서 잡류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백수건달’(불량배)인 셈이다. 단어의 뜻은 이렇게 부정적이지만, 그래서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 입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다닐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피신하였을 때 부모형제를 비롯하여 400여 명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그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주로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 이었다(삼상22:1-2). 주류 사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outsider, 혹은 outlier). 입다를 따른 잡류 또한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처럼 차별과 왕따로 사회에서 거절을 당하여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받아들여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그들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아무튼 입다를 둘러싼 환경은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그를 가리켜 ‘큰 용사였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1). 그러면 그가 어떻게 큰 용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심사다.

 

 

역경을 성장의 기회로

흔히 시련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큰 인물들 중에는 남달리 많은 삶의 역경과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 맹자(孟子)에도, ‘하늘이 장차 큰 일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겐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 육체를 주리게 하고, 그 살림을 궁핍하게 하고, 그 하는 일을 어긋나게 한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에 必先苦其心志하고, 勞其筋骨하며, 空乏其身하야 行拂亂其所爲하나니)고 했다. 엄청난 역경과 고난을 겪게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역경에 두 가지로 반응한다. 하나는 역경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뚫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발판으로 삼는다. 입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얼마든지 자신을 차별하는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을 학대하여 내쫓은 형제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누군가? 주로 사회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가 그들의 지도자였으니 그들을 부추겨서 세상에 불을 지를 수도 있었다.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암몬 사람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형제, 고향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이 되고, 복수의 창이 되고. 복수의 화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세상을 저주하고, 형제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자기를 성장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도적떼로 전락하고도 남을 사람들을 모아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용사로 길러냈다. 자신 또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큰 용사로 성장했다. 그래서 위기를 만났을 때 생각이 난 사람, 거절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자기들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간청할 만큼 탁월한 사람이 되었다(4~6). 이것이 진짜 복수다. 어떻게 그에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복수의 칼을 가는 대신 자신을 키우고,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한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9절은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그의 고백이고, 11절은 그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열악한 환경을 깨뜨리는 힘은 믿음에 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도 그의 인격이 파탄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다니엘의 친구들이 뜨거운 풀무불로 위협하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다. 절대로 꺾이지 않는 힘은 오직 믿음에서만 나온다. 믿음은 모든 운명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이다. 장애를 넘어서게 하는 능력이다. 언제고 일어서서 승리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반대로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썩는다. 우리를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가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환경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여는 사람

입다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열다.’는 뜻이다. 입다는 사방이 꽉 막히고, 굳게 닫힌 인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 기생의 아들이 큰 용사가 되었다. 그 시대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 그렇게 되었다. 형제들에게 고향 사람들에게 내쫓긴 그를 위기에 생각이 나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다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텐데, 그라면 저 암몬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이 나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급기야는 그를 내쫓았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사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셨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열어주시니, 그 또한 ‘여는 사람’이 되었다. 주류사회에서 쫓겨나 아무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열어주고, 암몬 사람들의 침략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여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닫힌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때 ‘열리는’ 인생, 나아가서 ‘열어주는’ 인생이 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코털 잘못 뽑아 파상풍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 병의 크기나 심각성, 문제의 크기나 심각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놔버리시면 우리 인생은 끝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믿음이 차이를 만든다.

10여 년 전 이야기다. 한 여고생이 금품을 빼앗다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이 되었다. 그는 한 달 용돈이 2백만 원이나 되는 부잣집 아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모자란다고 강도짓을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어느 중학생이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언니에게, 나는 7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중학생이야.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몇 년 전에 자살을 했어. 그 후에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다가 재개발지역에 임대아파트가 나서 월세 4만 원을 내고 살고 있어. 어머니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피까지 빼서 파신 적이 있어. 하지만 언니, 우리는 신앙으로 살았어. 그 덕택인지는 몰라도,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오빠는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나도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어. 언니, 언니는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 마음을 돌이키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밝은 미래가 있을 거야. 언니, 절대로 좌절하지 마!

 

 

한 사람은 부러울 것 없이 다 갖추고 살면서도 막가는 인생, 소망 없는 인생을 살고, 한 사람은 월세 4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살면서도 소망이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일까? 믿음이다. 믿음이 환경에 눌리지 않는 인생을 만들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소망 가득한 인생을 꿈꾸게 만든 것이다. 믿음은 절망의 먹구름 속에서도 소망의 별을 보게 한다. 그 소망을 보고 다시 일어서게 하고, 다시 도전하게 하고, 그래서 승리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4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중학생과 입다가 그 증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스펙, 아니 유일한 스펙은 믿음이다. 또한 이 소중한 믿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또한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수많은 위기와 어려운 환경, 닥치는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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