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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분노를 잠재운 사람, ‘아비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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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527회 작성일 15-03-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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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분노를 잠재운 사람, ‘아비가일’

삼상25:23~31

2015. 3/1. 08:00, 11:00

말에는 인생을 매고 푸는 힘이 있다.

 하버드대학병원 심장전문의 레빈 박사가 경험한 임상사례다. 그의 환자 중에 심장기능이 매우 안좋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거의 회복이 불가능했다. 그는 그 노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수련생들로 하여금 기능을 상실한 심장소리를 들어보게 했다. 수련생들은 심장소리를 직접 들어보고는 하나같이 ‘잘 들립니다. 아주 뚜렷하게 들려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병실을 나오면서 가족에게 장례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생사를 넘나들던 그 노인이 계속 호흡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호흡이 점점 또렷해지고 심장상태가 급속도로 좋아져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회진을 하던 그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이렇게 심장이 좋아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노인은 오히려 반문했다. ‘지난번에 박사님과 학생들이 내 심장 소리가 잘 들린다고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노인은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레빈 박사와 학생들이 주고받은 말이 자신의 심장이 좋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그 때부터 희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인생을 매고 푸는 힘이 말에 달려있다. 위 사례처럼 말은 상대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식과 행위에도 큰 영향을 준다. 사토 도미오는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에서 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말하듯이 생각하고, 생각하듯이 말한다. 늘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항상 입으로 내뱉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입버릇이다. 어떤 사람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잘 들으면 그 사람의 의식내용을 알 수 있다. 즉 언제나 비관적인 말만 되풀이해서 하는 사람의 의식내용은 역시 비관적이다. 이것이 방아쇠 역할을 하여 결국 몸속의 화학반응계가 그에 걸맞은 현실을 만들어가게 된다.

 

말이 바뀌면 의식과 인생이 바뀐다.

말과 의식(생각)과 행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말은 의식의 표현이고, 의식은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즉 말이 의식과 행위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말이 바뀌면 의식과 인생도 바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과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말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토는 이렇게 권한다.

 

아침에 내뱉는 말 한마디가 하루를 좌우한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과 가족에게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말을 던져보자. 또 불편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이라도 오히려 기분 참 좋다! 라고 말해보자. 그러면 신바람 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재미있겠다!, 꼭 해봐야겠다!는 강한 호기심과 의욕은 뇌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내 인생이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받아들이고 일어섰을 때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의식적으로 우리의 ‘입버릇’을 고쳐보라는 것이다. 성경 역시 말의 중요성과 선한 사용을 당부하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말의 사용과 관련된 대표적인 예가 삼상25장에 나오는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다. 말의 중요성과, 그 말이 자신과 주변에 미친 영향력(결과)까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남편 나발은 어리석은 말로 다윗의 살기어린 분노를 촉발시켰다(21,22). 하지만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말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살기를 잠재웠다(32~35). 결국 어리석은 말의 주인공 나발은 열흘 후에 치명적인 질병을 얻어 죽고(38), 지혜로운 말의 주인공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훗날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42).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나발은 말로 인해 인생이 매였고, 아비가일은 말로 인해 인생이 풀렸다.

 

살기어린 분노를 폭발시킨 말

본문의 사건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다닐 때 일이다. 사무엘이 죽은 뒤, 그는 따르는 6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엔게디를 떠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서 갈멜에 거하였다(1). 그곳에는 마온 사람 부자(양 3천, 염소 1천 마리) ‘나발’의 목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나발의 목자들과 그의 짐승을 지켜주며 함께 생활했다(15,16). 마침 나발이 양의 털을 깎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는데, 양의 털을 깎는 날은 마을축제가 벌어지는 날로 가난한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유목민의 오랜 풍습이다. 그래서 궁핍한 상황에 처한 다윗은 부하 몇 명을 나발에게 보내 그동안 그의 목자와 짐승을 돌봐준 공도 있으니 도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나발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에 다윗은 살기어린 분노를 폭발하며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들었다(13,22). 다윗이 이렇게 격분한 것은 나발이 돕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물론 나발이 다윗의 요구에 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이해할 수 있다. 22장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가 제사장 85명을 비롯하여 그 성(놉)에 있는 사람과 짐승까지 모두 사울에게 도륙(屠戮)을 당했다(18,19). 한 마디로 다윗을 돕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다윗의 요구에 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나발이 돕지 않은 것 때문에 격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사울의 사위이고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윗을 주인에게 반역하고 도망친 근본도 알 수 없는 노예 정도로 여기면서 빈정댔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도적떼 취급을 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10,11).

 

이런 나발의 경멸적인 말에 다윗은 칼을 뽑아들고,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죽이겠다며 살기어린 분노를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한 마디 말의 파괴력을 실감할 수 있다. ‘입이 가벼울수록 수명은 줄어든다.’는 속담처럼 나발의 어리석은 말 한 마디 때문에 그의 가문이 멸망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분노의 칼이 되게 만들었다. 말이 이렇게 치명적이고 무섭다.

 

분노의 칼을 거두게 한 말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 분노의 칼을 내려놓게 한 것도 말 한 마디 때문이란 사실이다. 어리석은 말 한 마디가 파괴의 불씨가 되기도 하지만 지혜로운 말 한 마디는 소망의 씨앗이 된다. 주인 나발이 다윗이 보낸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는 것’(14)을 본 그의 하인 중 한 사람이 급히 안주인 ‘아비가일’을 찾아갔다. 이 일로 다윗이 분명 주인과 주인의 집을 해할 것이니 속히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17).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이런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마님을 찾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비가일은 서둘러 떡과 포도주, 고기 등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하여 먼저 하인들에게 보내고(18), 자신 또한 곧바로 뒤따라갔다(19). 그리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다윗 앞에 엎드렸다(23). 본문은 아비가일이 다윗 앞에 엎드려서 한 말이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에 분노의 칼을 거두고 군대를 돌려서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을 종으로 자처하며 남편의 어리석은 처신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24). 다윗이 보낸 사람들을 자신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어리석은 말에 마음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25). 남편은 그의 이름처럼(나발은 ‘멍청이, 바보, 경솔한 자’란 뜻) 어리석은 사람이라 장차 다윗이 어떻게 될 것을 알지 못하고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다윗이 아무런 잘못이 없고,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28). 앞으로 왕이 되어 위대한 일을 할 사람이 이런 무가치한 사람을 죽여 오점을 남기지 말라고 했다(30,31).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에 아비가일의 겸손과 지혜, 용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모습에 감동한 다윗은 나발이 죽은 다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다윗은 나발의 어리석은 말을 듣고 분노를 일으켰지만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분노를 극복했다. 말의 지혜로운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삼재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격이란 구조물을 바르게 세우기도 하고 처참히 무너뜨리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말이 한 인생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한 공동체를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말은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잠15:1,2)고 했다. 그러므로 홀로 있을 때는 마음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말을 점검해야 한다. 옛 성현들은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며 말을 조심했다. 입은 악용하면 ‘화를 부르는 문’(口是禍門)이지만 선용하면 ‘복을 부르는 문’(口是福門)이다. 혀 또한 악용하면 ‘상하게 하는 칼’(舌是斬刀)이지만 선용하면 ‘치료하는 칼’(舌是療刀)이다.

 

영성으로 발효된 말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말은 한 번 하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씨로 자라니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혼자 하는 말이든 상대가 있어 하는 말이든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든 말은 그저 허공을 돌다 사라지지 않는다. 씨가 되어 사람의 마음에 떨어진다. 특히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누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실로 집을 짓고 산다. 사람은 말한 대로 산다. 평소 입버릇대로 산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깊은 영성으로 발효된 믿음의 말, 은혜의 말, 감사의 말, 지혜의 말이 절실하다.

 

지금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깊은 영성으로 발효된 말이 턱없이 부족한 것 또한 이 시대의 특징이다. 영성의 고갈로 천박한 말들이 난무하고, 천박한 말들에 환호하는 시대다. 비록 땅에 살지만 땅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로 풀어낼 줄 아는 것이 온전한 신자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매일 시편 저자와 같은 기도가 요구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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