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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대한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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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651회 작성일 15-12-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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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대한 목마름

느8:1~6

2015. 12/13. 08:00, 11:00(대강절 셋째 주일, 성서주일)

어떻게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

〈백투더퓨쳐〉(Back to the Future)라는 공상영화 시리즈가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다니며 일어난 사건을 그린 영화다. 한 사람이 미래에서 현재로 왔는데, 그는 역대 운동경기의 결과를 기록한 스포츠 연감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현재의 자기를 찾아가 그 책을 주면서 이 책만 있으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나 현재의 자기는 이 사람이 미래의 자기인 줄 모르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면서 그 책을 팽개쳐버린다. 이 사람은 현재의 자기를 안타깝게 꾸짖으며 집요하게 책을 전해준다. 결국 현재의 자기가 그 책의 내용이 맞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한다. 그는 그 책 때문에 모든 경기의 결과를 다 아니까 소위 스포츠 도박을 통해 큰 부자가 된다. 그가 그 책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치를 모르고 팽개쳤던 그 책을 이제 그는 가장 좋은 금고에 보관해두고 내기를 할 때마다 꺼내서 본다.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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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것은 소중하게 여긴다. 늘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게 된다. 반면 아무리 귀한 것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면, 그 중요성을 알기까지 소홀히 여기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지금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는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읽지 않고 있는 책도 성경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 중에도 성경을 제대로 한 번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예배가 끝나면 덮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면서 왜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안다면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튼 말씀의 가치는 그것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야 경험할 수 있다(「가시고기」 조창인 작가 이야기). 오늘은 성경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성경보급을 위해서 정한 성서주일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대강절에 성서주일이 들어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보 글에서 소개한 대로 성서주일은 한 시골소녀(M. Jones)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말씀 앞에 선 사람들

느헤미야의 헌신적이고 탁월한 지도와 이스라엘 백성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예루살렘 성벽공사가 주변의 방해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완공이 되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100여 년 동안이나 폐허로 방치되었던 것을 단 두 달도 걸리지 않고 해냈다. 말 그대로 불철주야(不撤晝夜) 이 일에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힘을 모으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것도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힘을 정성을 모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쉬운 것도 마음이 나뉘면 시도조차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렇게 무너진 성벽공사를 마무리한 그들은 이제 무너진 마음,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남녀 모든 사람들이 일곱째 달 초하루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리고 제사장이요 율법학자인 에스라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본문은 그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말씀을 듣는 그들의 태도다.

 

말씀을 듣는 태도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수문 앞 장광에 모두 일제히’ 모였다(1). 하나같이 모였다는 뜻이다.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가치,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다. 모두 하나같이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것이다. 그리고 모인 그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스스로’ 요청했다(1). 그들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 광장에 모이지 않았다. 말씀을 듣도록 강요를 당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광장에 모였고, 모인 그들이 말씀을 듣고 싶다고 스스로 에스라에게 요청을 했다. 자원해서(자발적)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적어도 6시간 이상을 에스라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말씀을 들었다(3).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18). 그 많은 사람들이 칠일 동안 하루에 6시간 이상씩 한 자리에서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이 굉장하지 않는가?

 

또한 그들은 말씀을 간절히’ 들었다. 본문은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3下) 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귀를 기울리다.’(히브리어 ‘아잔’/אזן)는 단순한 듣는 행위가 아니다. ‘가까이서 듣다.’, ‘손을 귀에 대고 경청해 듣다.’는 뜻이다. 민방위 훈련처럼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대충 듣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히 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들었다. 말씀을 통한 생명의 역사, 은혜의 역사는 이와 같은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올바른 반응’을 보이며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에스라가 말씀을 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5). 윗사람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듯 에스라가 말씀을 펴자 모두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표시다.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몸을 굽혀 땅에 대며 하나님을 경배했다.’(6).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외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순종하겠다는 뜻이고, 몸을 굽혀 땅에 댄 것은 말씀에 자신을 복종하겠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모두가 통곡을 했다.’(9). 이것은 말씀에서 떠난 지난 삶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반응은 9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9:1~3,38, 10:).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의 말씀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의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에 대한 ‘거룩한’ 목마름이다. 그리고 이런 거룩한 목마름이 신앙의 부흥, 민족의 부흥을 가져왔다.

 

거룩한 목마름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한가할 때 남은 시간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는지, 돈이 여유가 있을 때 그것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는지,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도움도 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고 무엇을 위해 고민하는지, 무엇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지 알 수가 있다. 또한 목말라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그가 어떤 사림이지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권력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권력지향의 사람일 것이고, 재물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물질지향의 사람일 것이다. 파우스트처럼 지식에 목이 마른 사람은 지식지향의 사람일 것이다. 신자에게 있어서 목마름은 은혜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주님의 은혜에 목이 마르고, 주님의 사랑에 목이 말라야 한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나라에 목이 말라야 한다. 예배에 목이 마르고, 기도에 목이 마르고, 찬양에 목이 말라야 한다. 무엇보다 본문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목이 말라야 한다. 말씀에 대한 ‘거룩한’ 목마름은 영적 건강의 계기판이다.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식욕이 떨어진다. 반면 건강이 회복되면 식용도 좋아진다. 성장기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건강한 영혼은 말씀을 향해 끊임없이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영적 영양실조를 경계하라!

암(癌)전문의로 28년간 수많은 암환자를 돌봤던 의사의 말이다. 그 동안 자기가 보았던 환자 중에 암자체가 직접 원인이 되어 죽은 사람은 딱 한 명이었고, 대부분이 스트레스와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다고 한다(「암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최일봉 저, 열음사).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식욕을 잃게 되는 것이다(여기에다 힘든 화학치료도 크게 작용을 함). 그래서 결국은 안 먹고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것이다. 반면에 암세포는 포식자다.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영적 영양실조에 걸리게 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활력을 잃게 되고, 나아가서 영적 생명도 위태롭게 된다. 말 그대로 유명무실한 신자가 되는 것이다. 저는 가끔 앙상한 몸에 화려한 훈장과 계급장을 붙인 군복을 입고 TV에 비친 노병(老兵)들을 볼 때마다 우리 신자와 교회의 모습이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 교회생활로 겉모습은 훈장과 계급장을 붙인 군복처럼 반짝거리는데, 속사람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늙고 병든 몸처럼 파리하고 앙상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밥맛을 좌우한 것은 입맛이다. 아무리 진수성찬도 입맛이 없으면 한 술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입맛이 좋으면 그냥 물에 말아 먹어도 꿀맛이다. 술술 넘어간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다. 말씀에 목이 마르고 갈급하면 말씀을 사랑하여 가까이 하게 된다. 말씀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 앞에 하나같이 모이게 되고, 말씀을 자원해서 집중적으로 듣게 되고,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듣고, 올바른 반응을 보이면서 들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심령의 부흥, 신앙의 부흥, 교회의 부흥이 시작된다. 요즈음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건강 염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건강에 목이 말라 있다. 얼마나 건강에 관심이 많고, 건강을 챙긴지 모른다. 이런 관심이 하나님의 말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저와 여러분은 영적 건강을 위해 힘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목마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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