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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여호와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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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780회 작성일 16-10-1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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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6:1~3

2016. 10/16. 11:00

지식이 없으므로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다. 스페인 선원들이 대서양을 건너 남미대륙에 도착했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이 탄 배가 아마존 상류에 도착했다. 하지만 강폭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도 대서양에 있는 줄 알았다. 그때 그들 중 여러 사람이 갈증으로 죽었다. 손만 뻗으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도 자신들이 아직도 바다위에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그 물을 퍼서 마실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풍부한 생수의 한 복판에서 갈증으로 죽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당대에 스페인 선원하면 바다와 물에 대한 최고의 지식을 자랑했던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 바다와 물에 대한 무지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알량하고 형편없는지, 무지의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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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잘 알고, 많이 알고,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휴대폰만 해도 그렇다. 이것의 기능을 잘 아는 사람은 이것으로 별 것을 다 한다. 그러나 기능을 잘 모른 사람은 기껏 통화와 문자 정도 밖에 못한다. 아는 만큼 폭이 넓어지고, 아는 만큼 풍성해진다. 아는 만큼 누리게 되고, 아는 만큼 자유롭게 된다. 물론 ‘아는 것이 병’이라는 뜻의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다. 이 역시 제대로 알고, 깊이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역설이다. 어떤 신학자의 말이다. ‘죄는 한 가지 뿐인데, 그것은 무식이다.’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을 모르는데서 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도덕적 패륜행위도 알고 보면 바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4:6).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자본이 없고, 자원이 없고, 기술이 없고, 군대가 없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식이 없어서, 특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구소련). 그래서 선지자 호세아는 본문에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전성기 여로보암2세 때부터 북왕조가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까지 활동했던 선지자다.......5장은 심판의 선언인데, 특히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신랄하게 퍼붓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 와서 그 기조가 완전히 바뀐다. 본문은 ‘회개와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회개의 전제로서 ‘하나님을 알자’고 촉구한다. 우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백성을 향하여 선지자는 이렇게 외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a).

 

이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기서 ‘돌아가자’는 회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슈브’(שוב)라는 단어다. 이는 ‘떠남과 향함’의 동작(행위)을 의미한다. 현재의 위치(상태)에서 ‘떠나’(turn from) 출발점(원래의 자리)으로 ‘돌아가는’(turn to) 행동을 뜻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잘못된 생활을 끊고 거기서 떠나, 본래의 자리(하나님)를 향해 돌아가는 구체적인 행위가 회개다.

 

치료(회복)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 회개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현재 어느 위치,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아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자리에 있고,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있고, 또한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 상황, 존재(상태)를 분명하게 아는 데서부터 회개가 시작이 된다(눅15:17 참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밤마다 문 열어놓고 애타게 기다리고, 사방천지로 찾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가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용서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다. 탕자가 돌아올 때, 거리가 먼데도 아버지가 먼저 알아보고 뛰어나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눅15:20).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선지자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b).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회복)해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잘못에 대하여 유야무야 넘어가시지 않고 엄(嚴)하게 심판(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회개하면 받아주시고, 치료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여기서 ‘찢으셨으나’는 히브리어로 ‘타라프’(טרף)다. 육식동물이 그 먹잇감을 붙잡아 그 살을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 치워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심판의 심각성참혹성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회개하면 이런 심판에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치료받지 못할 죄가 없고, 치료받지 못할 죄인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것이 선지자가 자기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은 누구든지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시고, 아무리 심각한 죄인이라도 다 고쳐주시고 싸매주시는 분이신 것을 알자는 것이다.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신 것을 알자는 것이다.

 

속히 회복되리라!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신속하게 베푸신다고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신 말씀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신속하게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을 열어주신다는 뜻이다. 신속히 회복시켜주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틀 후’와 ‘셋째 날’은 대귀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곧 짧은 시간 안에 신속히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이 흔히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우리도 흔히 ‘이삼일 내에~하겠다.’는 표현을 한다. 빠른 시일 안에 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속한 치료와 회복에 대한 확신의 말씀이다. ‘히스기야의 치료’(사38:1~8)와 요나서에 나온 ‘니느웨의 회복’(욘3:9,10)이 좋은 예다. 선지자는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이렇게 신속하게 회복의 은혜, 치료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알자고 촉구한다.

 

‘힘써’ 알자!

그러면서 선지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기 지혜, 자기 힘, 자기 재주, 자기 경험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무식의 소치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선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이 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3b).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오심에 대한 말씀인데, 은혜의 ‘확실성’과 ‘중요성’에 대한 말씀이다. 매일 아침 찾아오는 새벽빛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확실하고, 생명의 절대요소 물처럼 은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늦은 비’는 이스라엘 땅에서 식물이 결실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늦은 비가 없으면 식물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 인생의 결실, 우리 인생의 풍요와 형통을 결정하는 것이 늦은 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새벽빛과 같이 일정하게, 늦은 비와 같이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실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촉구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힘써’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이는 히브리어로 ‘라다프’(רדף)라고 한다. ‘열심히 추구하다.’, ‘성취하려고 노력하다.’, ‘얻으려고 애쓰다.’ 라는 뜻이다. 이는 군사용어로, 목숨을 걸고 적을 추격하는 병사의 모습이다. 100m 달리기 선수들이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조금이라도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 어떤 선수를 머리를 내밀고, 어떤 선수는 가슴을 내밀고, 어떤 선수는 손을 내밀고, 어떤 선수는 발을 내민 것을 봤을 것이다. 이것이 ‘라다프’다. 이렇게 절실하고 절박한 모습(행동)이 ‘힘쓰는 것’이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알자는 것이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자는 것이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것이다. 수험생들이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운동선수도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더 많은 성과,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땅에 있는 썩을 것을 위해,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고 무너질 것을 위해, 아침 안개처럼 잠간 반짝이다가 사라질 것을 위해 이토록 애를 쓰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을 더 잘 알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 주님을 잘 섬기고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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