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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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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682회 작성일 23-09-0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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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두려워하라!

12:4~7

2023. 9/3. 11:00(성령강림 후 열네 번째 주일

두려움 속에서 사는 인생

두려움의 종류를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744개였다. 그 많은 두려움의 종류를 보며 인간은 매순간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산다는 것은 항상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여러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 인한 염려와 걱정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염려와 걱정은 삶을 갉아먹는 행위다. 두려워하는 것은 온몸에 염산을 뿌려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내면의 자산을 불사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고, 고독과 불행으로 가득한 삶을 자조하는 독약이다.’ 염려와 걱정,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지극히 사소한 일도 위험천만하게 보고, 쉽고 단순한 문제도 넘기 불가능한 태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겁쟁이로 전락시켜버리는 것이 두려움이다.

 

 

성경에, 이 두려움의 원인이 나온다. 두려움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창3장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한 후,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이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 그러니까 두려움은 인간의 타락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느낀 첫 감정이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두려움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리는 마음의 소리인 것이다. 이는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서도 똑 같이 나타난다. 가인 역시 동생을 죽인 다음 하나님께 두려움을 호소했고, 하나님은 그의 안전을 약속하셨다(4:14,15). 그럼에도 가인은 자신을 위해 에녹이란 이름의 성을 쌓고 거기서 살았다. 이는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 문명이란 인간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보호장치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두려움이 범죄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류문명사의 동인이 된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경외의 대상으로

종교도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원시종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모든 것을 신격화하여 섬겼다. 홍수, 폭풍, 벼락, 지진과 같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막강한 자연의 힘을 비롯하여 태양, 달과 별들, 바다, 큰 강이나 동식물까지....두려움의 대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긴 것이다. , 두려움의 대상을 경외의 대상, 곧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경외가 어원이 같다(히브리어 야레יָרֵא, 헬라어 포베오φοβω). 그 이유는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다. 그리고 많은 제물과 함께 제사를 드렸다. 두려움의 대상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 말라는 것, 하려면 나의 원수에게 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성대한 제물과 함께 제사를 드렸다. 한 마디로 두려움의 대상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뇌물인 셈이다. 그래서 제물이란 말에 뇌물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찾게 만드는 동기가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두려움은 우리 기독교 신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삶의 여러 두려움과 불안요소로 인하여 신앙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찾았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을 극복한 이들이 성도 중에 많다. 나를 죽이는’ 두려움(공포)이 나를 살리는’ 두려움(경외)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다. 물론 두려움을 팔아 자기 이득을 챙기는 종교 사기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단들이다. 두려움을 유발시켜 잇속을 챙기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경영학에선 공포 마케팅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두려움(공포)을 활용하여 상품을 파는 방식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강조하여 보험 상품을 팔고, 건강을 위협하는 두려움을 조장하여 건강기능 식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광고를 통하여 금연을 유도하는 것 또한 공포 마케팅이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

앞에서 두려움과 종교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에는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두려워하게 되면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는 뜻도 있다. , 두려워하는 대상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내게 일러준 말이 있다. 혹시 밤길에 도깨비를 만나면 도깨비의 위를 처다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고 했다. 위로 보면 도깨비의 키가 한없이 커져서 하늘까지 닿게 되고, 아래를 보면 점점 작아져서 땅 속으로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도깨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도깨비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두려움에 집중하면 두려움에 압도를 당하게 된다. , 어떤 문제에 집중하면 그 문제에 매몰이 되고 만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이것을 아버지가 내게 준 소중한 인생교훈으로 여기며 간직하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두려워하면 그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4)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는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외식과도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그래서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 외식과 위선을 행하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5). 여기서 마땅히 두려워할 자란 하나님을 뜻한다.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몸만 죽이는 사람보다 몸과 영혼까지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가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두려하고, 사물을 두려워하고, 문제를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그 대상에 가려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람에 대한, 사물에 대한, 사건이나 문제에 대한, 심지어 악한 영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좋은 예(). 당시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략했다. 골리앗은 9척 장신에 베틀만한 큰 칼을 든 힘센 장수였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계곡을 채울 만큼 우렁찼다. 이런 골리앗을 보고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휩싸여 싸울 엄두를 못 내고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심부름 형들을 찾아 전장을 방문한 소년 다윗이 이 광경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느껴 자신이 골리앗과 맞장을 뜨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물맷돌 한 방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쟁취했다. 왕 사울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일개 목동 소년이 해냈다. 모두 골리앗을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골리앗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골리앗과 맞장을 뜰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주님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해야 할 이유를 말씀한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6,7).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새처럼 사소한 것까지도,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세심하게 돌보시는 분이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고, 마땅히 경외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온 지 아는가? 어떤 분은 366번이라 하고, 어떤 분은 365번이라고 한다. 1365(윤년까지 포함하여 366) 하루하루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두려움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주님께서 이런 상황에 처한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두려운 일이 많이 있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매일매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반드시 지켜주시겠다는 의미다.

 

 

서두에서 두려움의 종류가 744가지라고 소개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의 개수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 해결 방법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는 것’, ‘마땅히 경외할 자를 경외하라는 것이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무엇이든 문제는 복잡해도 그 해결책은 간단한 법이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간단한 방법을 알면서도 왜 항상 두려워하며 살까?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권위와 권세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안하면 종이를 찢는 청년이 있었다.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약도 먹어보고, 상당치료도 받아보고, 심리치료도 받아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면서도 계속 종이를 찢고 있었다. 그때 의사가 딱 한 마디 했다. ‘찢지 마!’ 이 한 마디에 치료가 일어났다. 종이 찢기를 멈춘 것이다. 의사의 말에 순종하니까 단 번에 치료가 된 것이다. 신앙생활도 그렇다. 말씀의 권위, 말씀의 권세,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염려하지 마, 내가 함께 할게!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두려워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이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서 현실이 된다. 우리 인생은 사방으로 두려움에 쌓인 존재다. 그렇지만 두려하지 말라는, 주님만 두려워하고 주님만 경외하라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면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 평안한 인생, 걱정이 없는 감사한 인생, 염려와 불안이 없는 즐거운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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