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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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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635회 작성일 23-09-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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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12:13~21

2023. 9/24. 11:00(성령강림 후 열일곱 번째 주일

생각이 그 사람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갈대처럼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생각을 할 줄 알기에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만큼 생각은 우리 인격에 있어서 기본이 된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생각하는 바의 그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됨)도 그러하다.’(23:7). 그 사람의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고, 됨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곧 그 사람이다. 예를 들어 걸음걸이, 몸의 움직임, 말씨, 옷맵시 등 모두 그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느긋한 행동은 느긋한 생각에서 나온다. 바쁜 걸음은 바쁜 생각에서 나오고,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온다. 사랑의 행동은 사랑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상을 보면 생각 한번 잘해서 복된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생각 한번 잘못해서 너무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생각 한번 바로해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칭송을 받고, 생각 한번 잘못해서 어리석은 사람이라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어려움을 당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더욱 중요하다. 생각 한번 잘못해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되는가하면, 생각 한번 올바로 해서 오히려 역경을 도약의 기회로 삼은 사람도 있다. 또한 돈이 불어나고, 많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명성이 자자해지고, 건강하고 평안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때 생각을 잘해서 존귀하고 위대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사실 역경을 만났을 때 잘못 생각하는 사람보다 형통할 때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피해를 끼치고, 더 많은 악취를 남긴다. 그러므로 생각이 참 중요하다

 

어느 부자의 생각

예수님께서 형통할 때 생각을 잘못해서 망한 사람의 예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본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사람은 부자였다. 원래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산이 많은데 농사까지 풍년이었다. 전답이 많은데 추수까지 풍년을 만나 재산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16절에,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이 때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17). 전답의 소출이 많아 재산이 불어나고 소문이 자자해지자 마음의 생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심중에 생각을 골똘히 한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하여라는 단어는 디아로기조마이’(διαλογίζομαι)라는 헬라어인데, 단순히 스쳐가는 생각이 아니다. ‘Think’가 아니라 ‘Think Over’. 깊이 어떤 생각에 몰입하는 것, 이리 저리 따지면서 그 생각에 끌려 다니고, 그 생각으로 밤낮을 사는 것을 뜻한다. 이 부자는 재산이 많아지자 많은 생각을 골똘히 했다. 그렇다면 이 부자는 무슨 생각을 그리했을까? 첫째는, ‘헐고, 더 크게 짓고, 그리고 쌓아 두리라.’(18). 둘째,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리라.’(19). 결국 이 부자가 그토록 골똘히 생각했던 것은 딱 두 마디다. ‘쌓자. 그리고 즐기자.이는 어떤 부자 한 사람의 생각과 그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은 지금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 부자의 생각을 좀 더 분석하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자는 재물을 모으고 쌓아 두는 것만 생각했다(18).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부자 이야기의 결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 이 부자에게 행복은 재물을 많이 모으는데 있었던 것 같다. 이 부자처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도 이 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경험적으로 인생이 행복하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 돈도 중요한 조건이다. 빈 알거지로 무슨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면 얼마 정도 있어야 행복할까? 영국의 어느 대학 연구팀에서 10년 동안 연구해서 발표한 자료다. 영국 사람을 기준으로, 우리 돈 약 18억 정도를 가지면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이 말은 18억 정도 모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재산이 불어나도 행복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재물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평생 18억을 손에 쥐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18억이 아니고 단 18만원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꾸 쌓아라. 쌓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다.’ 이 말은 우리를 탐욕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마귀의 소리다. 오히려 자기 재물을 흩어서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20:35). 돈이 없어도 부자가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행복의 신비를 가르치는 것이 성경이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행복은 욕심을 줄이고 만족지수를 높이는데 있다. 만족지수는 감사에서 비롯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재물이나 지위이나 지식의 유무에 상관없이 행복하다.

 

둘째, 부자는 행복이란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부자 생각의 골격이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이유, 열심히 재물을 모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과 즐거움, HappinessFun을 동일시한다. 우리 중에도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즐거움과 행복은 전혀 무관하다. 즐거움은 즐거워하는 행동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반면에 행복은 즐거움이라는 행동을 체험한 후 찾아오는 감정이다. 즐겼다고 그 다음에 행복이 따라오지 않는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면 그 다음이 행복이 따라올까? 속 쓰림, 두통, 창피함, 경우에 따라선 도덕적 법적인 책임이 따르게 된다.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혀를 찬다. 물론 본인은 그 순간 즐거웠을 수는 있다. 즐거움을 행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연구한 어떤 사람의 글에 나온 이야기다. 그들만큼 즐기는데 익숙한 사람도 없고, 인기절정에 호의호식하며 파티에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들만큼 비참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즐거움과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환상에 젖어 있다. 이 부자의 생각과 같은 것이다. 행복이 편히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의 시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 즐기기 위해서 함부로 낭비하는 시간을 아껴 주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쓸 수 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돈을 해방시킬 수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에 함부로 쓰던 것을 잘 아껴서 영원히 남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악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 못 견디는 못된 심성을 다 쓸어버리고 수 있다. 그리고 부하든 가난하든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자신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부자는 생명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착각이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 생명도 물질도 그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이다. 그런데 그는 자꾸 재산이 늘어나자 자신감과 힘이 생기고,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 보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생명도 자기가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재물이 생명을 보장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재물이 많으면 현대의 발달된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 건강을 보장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기라는 존재 이상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기 속에 갇히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를 보지 못한다. C.S. 루이스의 유명한 말이 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아래로 깔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본다.’ 눈을 아래로 깔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는 사람은 절대 위를 보지 못한다. 본문의 부자가 그런 사람이다.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생명의 주인을 자기로 착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체가 밥으로 사니까 영혼도 그런 줄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다!

우리에게 물질이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자처럼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물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으로 즐기는 것이 행복이고, 또한 그 물질이 생명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면 몹시 위태롭고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후좌우, 위아래도 살피지 않고 그저 물질을 모으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주님은 말씀하신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 이 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의 전형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위해 많은 재물을 쌓아 두었지만 하나님 앞에 가난한 자가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문제는 생각이다. 이 부자처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함께 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신다. 잘못된 생각을 밀어내고, 주님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준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옛 생각, 곧 부자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뽑아버리고, 새로운 생각, 거룩한 생각,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마음에 심어주신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 믿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다. 그러니 소유가 존재의 근거가 아니라는 사실,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아울러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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