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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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19회 작성일 25-10-12 12:28본문
맛있는 말
잠13:1~3
2025. 10/12, 11:00(성령강림 열아홉 번째 주일)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들
잠언은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실재적인 것 4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음행, 술, 게으름, 그리고 말이다. 이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것이 ‘말’이다. 그래서 인지 잠언에는 말과 관련된 말씀이 아주 많이 나온다. 마스터스 신학교 리차드 메이휴 교수는 그의 책「잠언 실천하기」(Practicing Proverbs)에서 말과 관련된 잠언 구절을 목록으로 제시했는데, 총31장 915구절 중에 145구절이나 된다(7/1이 말에 대한 것). 이렇게 말과 관련된 교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말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하나님 역시 관심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어떤 분은 잠언을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시는 ‘스피치 컨설팅’, ‘스피치 트레이닝’이라고 했다.
사실 잠언의 모든 말씀은 말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나아가 형성된 성품, 인격 전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또한 말을 통해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를 말의 종교라고 한다. 경전인 성경은 말들의 모음집이고, 예배는 말 잔치다(예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찬양도 기도도, 설교도 모두 말이다). 그러니 교회는 말이 많을 수밖에 없고, 말로 인한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성경에 말에 대한 교훈과 경계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책이 ‘잠언’이다.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복을 누리게 하는 말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얻은 후 신하들 앞에서 한 말이 있다. ‘나는 소하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다.’ 이는 단순한 공치사가 아니다. 그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보다도 ‘말’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관계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다. 한마디 말이 평생의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한마디 말이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입의 칼이 천하의 칼보다 무섭다.’라는 속담이 있다. 유방은 초한(楚漢)전쟁의 혼란 속에서 많은 신하를 거느렸지만, 그가 끝까지 믿고 의지한 사람은 소하였다. 그가 도망쳤을 때도 소하는 변명하지 않고 백성을 다독였고, 반란의 기미가 있을 때는 과격한 말 대신 부드럽게 설득했다. 소하는 권모술수나 책략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유방은 ‘나는 소하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 일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말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말이 곧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험담이나 악담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병들게 만든다. ‘말의 에너지’는 실제로 뇌의 호르몬 분비를 바꾸고, 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평생 선행을 쌓아도 한마디 말로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조심하지 않은 말 한마디가 수십 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평판을 잃게 만든다. 결국 복과 재앙은 입(말)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2). 여기서 ‘복록을 누린다’는 히브리어로 ‘요칼 토브’(יוֹכַל טוֹב)인데,‘좋은 것을 먹는다.’, 혹은 ‘선한 것을 먹는다.’, ‘복을 받게 된다.’라는 뜻이다. 자신의 말에 따른 보응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좋은 말은 물론이고 나쁜 말도 그렇다.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궤사는 ‘간사하게 속여 꾸미는 말’이고, 강포를 당한다는 것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간사하게 속여 꾸미는 말을 하는 사람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말만 잘해도 우리가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의 대부분이 입으로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입술의 열매’(히13:15)라고 했고, 찬양뿐 아니라 기도, 전도, 이웃을 향한 위로와 권면, 칭찬이나 축복 모두가 입으로 하는 섬김이다. 성도는 말만 잘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그 결과 입술의 열매를 통한 복을 누릴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말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나 입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3).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나 생사(生死)가 말(입)에 달렸다는 의미다. 나쁜 말은 듣는 사람만 마음이 상하고 다치는 것이 아니다. 본인에게도 화가 미치게 된다. 중국 당나라 말기 5대 10국 시대에 11명의 임금을 섬긴 풍도(馮道)라는 재상이 있는데, 그가 ‘혀에 대한 시’(舌詩)를 썼다. 그 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口是禍門 舌是斬刀身). 그가 격변의 시대에 목숨을 지키면서 재상의 자리를 오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을 조심했기 때문이고, 이런 명언은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다. 앞뒤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은 자신의 목을 옥죄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경책하는 말이다. 혀가 칼이 되고 입술이 창이 되어 사람을 베고 찌른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지키는 것이 말에 있다는 의미다. 아무튼 쓰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는 것이 말이다. 속되게 함부로 뱉는 막말은 독화살과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릴 수가 없다.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다가 멸망의 길을 갔지만,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말 한마디가 천국과 지옥의 길을 나눈 것이다. 입술에 파수꾼을 두어 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말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 따뜻한 말은 큰 위로가 되지만, 비난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으로 내몰아갈 수 있다. 생명을 가진 말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고, 화살이 된다. 말에는 말하는 이의 의도와 인격 등이 담겨 있기에 듣는 이의 마음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말을 사려 깊고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는 말의 권세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권세를 아름답게 잘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성도 간에 세워 주지는 못할망정 공격적인 말과 비판적인 말로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자녀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의 권세로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데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늘 자신의 말 습관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선하고 아름다운 말, 복을 부르는 말로 생명을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복 된 입술이 되기를 바란다.
말의 맛
그렇다면 복을 부르는 말, 생명을 지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1절이 그 답이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듣지 아니하느니라.’ 아비의 훈계를 잘 듣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말로 복을 부르고, 생명을 지키게 된다. 그러면 그 지혜는 어디서 올까? 그것은 ‘들음’이다. 지혜로운 아들과 거만한 자를 결정짓는 것이 들음이다. 지혜로운 아들은 ‘들으나’, 거만한 자는 ‘즐겨듣지 아니하느니라.’ 지혜는 들음에 있고, 지혜로운 말 또한 들음과 관련이 깊다. 최근 리더십에 관한 한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훌륭한 리더는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잘 듣는 사람이 좋은 리더인데, 리더는 다른 사람의 ‘이견(異見)도 의견’(Agree to Disagree)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리더는 이견까지 의견(意見)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견도 의견으로 들으니 지혜로운 좋은 리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라는 속담이 실감이 난다. 그러니 복을 부르고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지혜로운 말이 더욱 중요한 때다. 이런 말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에게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남겼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4:6). ‘맛을 내다’는 헬라어로 ‘알튀오’(ἀλτούω)인데, (은혜롭게)‘준비하다.’, (적절하게)‘양념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은혜롭고 적절하게 말하는 지혜로운 태도를 권면한 것이다. 소금으로 음식의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의 말도 지혜로 양념하라는 것이다. 맛있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말의 맛’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말에도 맛이 있다는 것이다. 말에서 느껴지는 언어적, 정서적 풍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지혜로 양념을 하여 경건한 말, 거룩한 말, 은혜로운 말, 달콤하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하여야 한다. 소금으로 음식의 맛을 내듯 우리의 말에 맛을 내어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는 맛있는 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말이 복을 부르고 복을 누리는 말,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말이 된다. 우리 모두 이런 말의 주인공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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