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세상 헛되지 않게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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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5-10-19 14:55본문
헛된 세상 헛되지 않게 살려면
전1:1~11
2025. 10/19, 11:00(성령강림 스무 번째 주일)
모두가 헛되다!
히브리어로 본서의 이름은 ‘디브레이 코헬렛’(דִּבְרֵי קֹהֶלֶת)으로 우리말로는 ‘사람을 불러 모아 말하는 사람’, ‘회중의 스승’(12:11)이란 뜻이다. 사람을 모아 인생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것이다. 본서는 1절에서 저자의 배경(‘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의 말씀’)을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아주 뜻밖의 선언을 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2). 이 짧은 문장에서 ‘헛되다.’라는 말을 5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본서 끝부분(12:8)에서도 세 번이나 반복된다. 시작도 헛되고 마지막도 헛되다고 고백하는 삶의 무의미성과 허무를 토해내고 있다. 여기서 ‘헛되다’라는 것은 바람과 이슬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효과가 없는 것, 비어 있는 것, 심지어 때로는 남을 속인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세상사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고,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다.
흔히 삶을 부정하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삶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것이 철학이고, 종교이기 때문이다. 본서를 얼핏 보면 이런 선언은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가치도 보람도 행복도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니 이런 책을 어떻게 철학은 물론 성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신앙을 떠나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가치는 사람의 행복과 성공이 그 사람의 행동에 달렸다고 말한다. 열심히 살면, 바르게 살면, 힘을 얻으면, 그래서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면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서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지식과 지혜도, 부와 권세도, 노동(수고)도, 쾌락도, 심지어 바르게 열심히 살아도 헛되고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서는 표현 자체만 놓고 보면 염세적이고,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헛되다는 역설이다.
하지만 본서는 역설의 책이다. 본서의 허무주의는 일종의 역설이다.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그것을 뛰어넘는 삶의 의미, 삶의 긍정을 찾고, 동시에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어둠의 깊이를 알아야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땀을 흘린 후에야 휴식의 가치를 알 수 있고, 가물어 봐야 물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헤맨 경험이 있어야 빛을 갈망하게 되고, 그 빛을 따라가게 된다. 죽음이라는 슬픔이 얼마나 과격한 것임을 알 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이 복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들이 즐겨 사용한 문학기법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 로마서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먼저 죄 이야기를 하고,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이야기를 한 것이다. 죄에 대해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서는 단순히 인생무상을 주장하는 염세적 허무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애착하는 모든 대상이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과, 그 애착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일종의 ‘해방의’ 책이다. 나아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주목하도록 하는 역설의 책이다.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 곧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해 위에 있는 것을 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헛되다는 선언에는 헛되지 않는 것을 찾게 한다. 참으로 의미 있는 것,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게 만든다. 그래서 본서는 이 세상에서 추구하며 이룬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며, 영원한 것, 신적인 것, 참된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 결국 본서는 무엇이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가를 가르쳐주는 성도의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이란?
그렇다면 본서가 말하는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인가? 본서는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2절에서 강조되고 있는 헛되다는 말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유한성을 강조한 것이고, 이 유한성은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다. 시간은 단순히 소비되는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 선물을 충만하게 누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본서다. 그 비결이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이다. 다람쥐의 망각으로 탄생한 것이 숲이란 말이 있다. 다람쥐는 먹이인 도토리를 발견하면 여기저기에 묻는 습성이 있는데, 문제는 자신의 식량인 도토리를 묻은 장소는 물론 묻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고 한다. 이러한 다람쥐의 망각이 다람쥐가 사는 그곳에 숲이 생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어난 일이다. 그저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다음 세대의 자양분이 되는 더 많은 도토리를 열리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헛되다는 것은 헛되니 그냥 되는 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유한하니까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 더욱 밀도 있게 살라는 것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특히 사람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며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3:12).
둘째, 있는 것을소중히 여기며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이다. 없는 것,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밤잠 설치지 말고, 떠나가 버린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지의 것들 때문에 불안에 떨지 말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누리며 살라는 것이다. 사실 가지고 있는 것도 다 누리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욕심을 부린다.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여기에 만족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행복한 경험을 많이 나눈 사람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좋은 경험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든다. 본서는 말한다. 행복하려면,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일을 하며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라고 말한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가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9:9). 우리는 행복이 어디 있을까? 행복을 찾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행복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리고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도 않다. 내 아내, 내 자녀, 내 부모, 내 가정, 내 이웃, 내 교회, 내가 늘 만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의미고 보람이다.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내가 가진 작은 재능과 능력, 물질을 통해 작은 선을 나누며 사는 것, 거기에 행복이 있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한다(1). 그리고 솔로몬이 일생을 살면서 다 경험해 본 뒤 노년에 본서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서를 솔로몬의 인생론, 혹은 행복론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는 물론 부귀와 영화까지 선물로 받아 이 모두를 경험했던 그가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헛되다.’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결론 뒤에는 이미 말했지만 지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본서의 요절이자 결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선악 간에 심판하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비슷한 말씀이 자주 언급이 되고 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5:7).
사람의 본분이니라.
몇 년 전, 한 청년이 주일날 자기 집 아파트 9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아버지는 강남 모 교회의 장로이고, 어머니는 권사였다. 그날 아버지가 주일 4부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간에 27세의 아들이 집에서 투신한 것이다. 원인은 심한 우울증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가장 비통해 한 것은 오직 공부만 강조했지 하나님 경외는 한 번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며 처절하게 자책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나님 경외는 사람의 본분이요 인생의 근본이다.
12:13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곧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행복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본서는 단순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저것 모두 경험해 본 솔로몬이 ‘해 아래’, 곧 이 땅의 모든 삶에 새것이 없고 헛되지만, ‘해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원한 삶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한한 것(인기, 지혜, 재물, 권력, 명예 등)에 인생을 팔지 말고 인간의 참된 본분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평범하고 뻔한 것 같은 삶이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삶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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