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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형 지도자,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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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652회 작성일 14-06-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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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형 지도자, ‘느헤미야’

느2:1~10

2014. 6/22. 08:00, 11:00

감동을 주는 사람

영국 여왕이 나라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게 되었다. 상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전쟁 부상자도 많았다. 그 중에 팔과 다리를 모두 잃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서 나온 병사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달아주던 여왕이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그 병사 앞에 섰다. 여왕이 갑자기 훈장을 떨어뜨리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훈장을 목에 건 병사가 여왕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국과 폐하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이 몸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대안학교 성지고등학교에 전과 13범으로 조폭출신 학생이 있었다. 술병을 들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등교하는 이 학생에게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무서워서 말을 못했다. 그러나 김선태 교장 선생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행사가 있을 때면 그에게 책임을 맡겨 진행하게 했고, 개교기념일에 표창장을 주었다. 표창의 내용은 이랬다. ‘앞으로 이 학생은 선행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상을 주어 표창합니다.’ 종이만 주면 찢어버릴 것 같아 액자까지 만들어서 주었다. 평생 처음 받아온 상장이라 집에 가지고 가니 부모님이 감격스러워했고, 걸어두니 집에 오는 사람들이 보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결국 이 학생은 자격증을 세 개나 따고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후니카니 슈지는 그의 책 「오늘이 인생을 바꾸기 가장 좋은 날」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감동’이라고 역설한다. 감동(感動)이란 느껴서(感)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動)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변한다. 감동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

 리더십(leadership)을 흔히 영향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도자(leader)를 영향력을 끼쳐 이끄는 사람이라고 한다. 지도자(leader)라는 말 자체가 ‘인도한다.’(lead)는 말에서 왔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마땅히 사람을 인도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이다. 제임스 번스(J. M. Buns)는 사람을 인도하는 방법에 따라 지도자를 두 종류로 나눴다. 하나는 ‘교환형 지도자’(the transacting leader)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형 지도자’(the transforming leader)이다. 교환형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지도자다. 무엇인가 보장을 약속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간혹 어떤 교회들에서 값비싼 경품을 내걸고 펼치는 전도운동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지도자와 따르는 사람의 관계가 이런 유형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감동형은 따르는 사람을 감동시켜 따라오게 하는 지도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자신의 필요보다 따르는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따르는 자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므로 감동을 주어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따르는 사람의 필요가 지도의 최고선(最高善)으로 존재하는 ‘지도력의 스타일’(leadership style)이다. 교환형 지도자는 대부분 공동체를 유지하는(maintain) 사람이나 감동형 지도자는 공동체를 자라게 하는(build) 사람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느헤미야는 대표적인 감동형 지도자다. 위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아닥사스다 1세를 움직여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을 받게 되었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움직여 바벨론 제국에 의해 파괴된 이후 거의 2세기 동안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단 52일 만에 완공시켰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감동을 주어 사람을 이끄는 감동형 지도자가 되었을까? 물론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본문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명이나 사역보다 위치(지위)에 관심이 많다. 무엇이 되는데 관심이 많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관심은 ‘지도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자기 민족의 보금자리인 예루살렘성의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이 일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페르시아 왕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그는 늘 왕의 곁에서 왕을 모시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왕을 움직여서 허락을 받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에 관계된 사람들을 움직여주시라고 기도하였다. 자신이 왕을 움직이기보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신 것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느1:11).

 

여기서 그는 왕의 곁에서 수종을 드는 ‘술 관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지위와 상황으로 얼마든지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도움을 구한 것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간단한 간구인 이 기도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잘 보여준다. 그는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지위와 상황에 있었지만 형통하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특히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구하는 모습은 겸손 그 자체다.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사람에게 은혜를 입는 것, 이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사람에게 은혜를 입도록 해주는 것이 기도다. 그래서 기도가 사람을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 것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입게 된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다(8). 아닥사스다는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는 예루살렘성의 건축을 중단시킨 사람이다(스4:23). 느헤미야는 이런 사람을 기도로 움직였다. 자신의 힘(지위나 능력, 경험 등)이 아니라 하나님이 움직이시도록 기도를 했다. 이것은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말’이다.

느헤미야가 이 기도를 드린 뒤 4개월 만에 응답을 받았다. 그가 기도를 시작한 것은 ‘기슬르월’이고(1:1),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니산월’이다(1).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 11월~12월이고, 나산월은 3~4월이다. 이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정확한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도의 자세로 ‘3기’를 강조한다. 도하고, 대하며 다리는 것이다.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이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왕 앞에서 슬픈 기색을 보이는 것은 큰 죄가 되었고, 왕궁규례에도 왕의 곁에서 섬기는 사람은 항상 밝은 표정을 짓게 되어 있었다. 이것이 왕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고, 또한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왕도 이렇게 섬겼다면 높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할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래서 ‘왜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는 왕의 물음에 그가 크게 두려워한 것이다(2). 그렇지만 이것은 그의 기도응답에 대한 신호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가 왕에게 자신의 청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왕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3).

 

이는 이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준비한 지혜로운 대답이다. 아닥사스다는 예루살렘을 반역의 도시로 인식하고 있었다(스4:19). 전에 그곳의 재건을 금지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조상의 무덤은 귀하게 여기고 보존하였다. 그래서 그는 왕을 자극시킬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예루살렘이란 단어대신 동정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평소 기도하면서 철저히 준비해온 대로 아주 지혜로운 말로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4)고 물었다. 소원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뜻이다. 왕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이 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하나님께 잠깐 ‘묵도’하였다(4). 이런 기도를 ‘화살기도’라고 하는데, 평소 기도가 생활이 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짧은 순간에 자신과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구한 것이다. 그리고 겸손하고 지혜롭게 대답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5). 이와 같은 느헤미야의 배려깊은 겸손한 태도와 말에 왕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자신이 전에 내렸던 결정을 파기하고, 그를 유다총독으로 임명하여 성을 건축하도록 허락하였다(6). 같은 내용인데 왕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겸손하고 지혜롭게 말했고, 그 말이 감동을 주어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이 중요하다. 은혜의 말, 믿음의 말, 사랑의 말, 배려의 말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Prayer, Planner, Player

느헤미야의 생애를 ‘3P’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 ‘프레이어’(Prayer)이고, 계획하는 사람 ‘플래너’(Planner)이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행동하는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 ‘플레이어’(Player)이다. 올바른 기도자는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확신하고 4개월 동안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 6절 이후가 그 내용인데, 그가 얼마나 잘 준비하고 계획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본문 이후는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음 곧 바로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는 내용이다. 사실 본서 전체에서 그는 남다른 헌신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매진하면서 사람들을 섬긴 ‘3P’(Prayer, Planner, Player)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도하고, 계획하고, 계획한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실천하는 것, 우리가 그에게서 본받아야할 점이다. 특히 본문에서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그를 멋지게 움직인 ‘상향 리더십’(Upward leadership)을 발휘한 내용이다. 바로 그 비결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에게 은혜를 입도록 한 기도이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지혜로운 말이다. 느헤미야를 통해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얻는 소중한 비결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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