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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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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495회 작성일 14-08-2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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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섬김’

요13:1~15

2014. 8/24. 08:00, 11:00

할 일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다. 한없이 넓고 푹신한 곳이었다. 그는 그 평안한 자리에서 며칠 푹 쉬었다. 그는 그곳이 너무 좋았다. 출근하라고 아침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고, 잔소리하는 상사도 없고,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골치 아픈 일이 없어서 좋았다. 게다가 하인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다. 밥을 먹는 것도 손끝 까딱할 필요도 없이 하인이 먹여주었다. 세수도, 목욕도, 옷을 입고 벗는 것까지 다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편안한 생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싫증이 났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다. ‘내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그러나 하인은 그의 청을 거절했다. ‘이곳에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되지만 당신이 직접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다. 이렇게 심심해서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러자 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알았습니까? 여기는 지옥입니다.

 

무언가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이 있다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이고 행복인지 모른다. 중국 명나라 왕양명의 말이다. ‘살아보니 인생에 어려운 일이 4가지 있더라. 첫째는 배고프고 헐벗은 것, 둘째는 남에게 냉대 받은 것, 셋째는 마음 깊은 곳에서 비롯된 실존적인 고뇌와 고독, 넷째는 이 세 가지보다도 더 어려운 것으로 한가로운 것’이라고 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할 일이 없어 빈둥댄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처럼 지옥이 없다. 아무튼 일이라고 하는 것은 좋든 싫든 해야 할 일을 힘을 다해서 하고나면 우리 내면에 자제력, 근면함, 성취감, 만족감 등 일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덕이 쌓인다. 그래서 일에 대한 이런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일을 사랑하고 즐긴다. 교회일도 시간이 많고, 재능이 있고, 물질적인 여유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일의 가치와 은혜와 행복, 그리고 축복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해도 일을 찾아서 하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왜냐하면 그 은혜, 그 행복, 그 축복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문은 주님이 친히 행동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힘써 ‘섬기는’ 생활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주님을 닮는 삶, 섬김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이었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셨는데, 아주 불편한 자리였다. 그 원인은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주님께 자신의 두 아들 중에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정청탁을 했다(마20:20~24). 이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불편한 말들이 오고가는 신경전이 있었고, 그 감정은 주님과의 마지막 식사자리까지 계속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의 세속적인 야망성취였다. 그래서 주님은 야망성취를 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바로잡기 위해 온몸으로 교훈을 하신 것이다. 크고 높은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라(마20:26)는 것, 자신은 섬기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이와 같은 가르침이 본문의 세족사건이다.

 

참된 성공이나 위대함은 섬기는 삶에 있다. 섬김의 폭이 넓고 큰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집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초대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고,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나누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섬김이 곧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섬김은 인격의 표현이고, 신앙의 표현이다. 성숙한 인격, 성숙한 신앙의 표지다. 그래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성공이 아니라 섬김에 두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족식을 통해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신자에게 주신 음성이다. ‘섬김’은 주님의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단어다. 주님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고, 평생 섬기시다가, 섬김의 제물로 생을 마쳤다. 그런데 우리의 좁은 생각은 언제나 섬김을 받는 위치를 갈망하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해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자인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삶을 닮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표다. 섬김이 곧 주님을 닮는 삶이다.

 

섬김은 낮아짐이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시절에 있었던 일화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돌쇠라는 마부(馬夫)가 있었다. 하루는 그의 주인이 그를 불러놓고 그토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을 더 사랑하고 존경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좋은 마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에 주인이 감동을 받아 그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예수, 이런 교회라면 믿어보고 싶고 나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 얼마나 귀한 믿음이고, 얼마나 귀한 태도인가? 우리가 죄에서 해방을 받고, 구원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고, 모든 질병에서 치료를 받는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본문은 섬김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먼저 자신의 자세를 낮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님은 식사 후에 친히 대야에 물을 떠다놓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다음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한 사람씩, 심지어는 주님을 팔게 될 가룟 유다의 발까지 다 씻겨주셨다. 배신자까지도 섬기신 것이다. 주님은 주인이시고 선생이시지만 그런 것 다 내려놓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다. 이것이 곧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섬김의 자세다. 그렇다. 누군가를 섬기는 삶을 살려면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야 한다.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낮추지 않으면 섬길 수 없다. 나를 낮추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때에 섬길 수 있다. 제자들이 섬김에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관심은 ‘누가 크냐?’에만 있었다. 자신을 확장시키고, 확대시키고, 높이는 데만 있었다. 그러니 자신을 낮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물론 주님까지도 섬길 수가 없다. 본 훼퍼가 말했다. ‘섬기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낮춰야 섬기는 삶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섬김은 희생이다.

섬김의 또 하나의 자세는 희생이다. 낮추는 것도 희생이지만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선 구체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기 위해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을 낮추신 것이다. 낮춤은 섬김을 위한 중요한 자세지만 이렇게 낮춘 것만으로 섬김이 일어나지 않는다. 섬김은 행동이다. 섬김은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그래서 주님은 대야에 제자들의 발을 담그게 한 다음 손으로 발을 씻겨주고, 수건으로 닦아주신 일까지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섬김이란 자신의 수고가 따르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섬기기 위해선 먼저 수고하고, 손해를 보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 즉 희생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십자가는 섬김의 절정이다. 섬김이란 시간이 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이고,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섬김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섬김의 가장 큰 적은 바쁜 것이다. 너무 바빠서 섬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표, 계획, 꿈, 야망 때문에 너무 바빠서 주님도 교회도 가족도 이웃도 섬길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 문 앞에 이런 푯말을 내걸고 산다. ‘제발 귀찮게 하지 마시오!’ 바쁘니까 건들지 말라는 뜻이다. 할 일 없이 빈둥대는 것보다 바쁜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바쁘다보면 마음이 죽게 된다. 한자 바쁠 ‘망’(忘) 자를 보라! 마음이 죽은 것을 뜻한다(忘=亡+心). 주님에 대한 마음, 이웃에 대한 마음, 심지어는 가족에 대한 마음까지 죽게 된다. 그리되면 나 역시 상대방에게 잊혀진 존재, 죽은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섬기는 삶을 위해선 자신의 시간표, 계획, 꿈, 야망을 기꺼이 내려놓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회복이 된다. 섬겨야 할 대상이 보인다. 주님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이웃이 보인다. 그리고 교회가 보이기 시작한다. 섬겨야 할 대상이 보인다. 가끔 이것을 뒤늦게 깨닫고 가슴을 치는 사람들을 본다. 여러분에겐 이런 뒤늦은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섬김은 내 자신을 살리고 내 가족을 살리고 주변을 살리는 일이다. 모두를 잘되게 하는 일이다.

 

공짜는 없다!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왕이 있었다. 백성을 가르칠 지혜를 얻기 위해 현자들에게 세계 최고의 지혜를 모아 오도록 지시했다. 많은 노력으로 열두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보석과 같은 지혜로 가득찬 책이었다. 이 열두 권의 책을 받아 본 왕은 ‘이것은 분명히 세계 최고의 지혜이며 보물이다. 그러나 너무 두꺼워 많은 백성이 못 읽을까 염려되니 간략하게 줄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열두 권의 책이 한 권으로 압축되었지만 왕은 그 한 권의 책도 못 읽을 백성이 있을까 염려하여 다시 더 줄이도록 했다. 한 권의 책은 다시 한 단원으로 줄여졌고, 한 단원은 다시 한 페이지로 되었다. 하지만 왕은 그 한 페이지의 글도 읽지 못할 백성이 있을까 염려하여 단 한마디로 압축해 보라고 했다. 현자들이 모여서 여러 날을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마침내 한 마디를 만들었다. 그것은 ‘공짜는 없다!’란 말이다. 그렇다. 공짜란 없다. 이는 대가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뜻이고, 또한 수고한대로 얻게 된다는 뜻이다. 남을 힘써 섬기는 일, 특히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힘써 섬기는 일엔 절대로 공짜가 없다. 반드시 심는 대로, 심은 만큼 거두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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