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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게 하는 사람,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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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001회 작성일 14-07-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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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게 하는 사람, ‘느헤미야’

느2:10~20

2014. 7/6. 08:00, 11:00(맥추감사주일)

소경의 등불

 친구 집에 놀려갔다가 돌아가는 소경에게 그의 친구가 그의 손에 등불을 쥐어주었다. 소경은 친구에게 버럭 화를 냈다. ‘소경인 내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등불을 주는 것인가? 내가 소경이라고 남들이 우습게 여기니까 자네까지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인가?’ 그러자 그의 친구가 말했다. ‘물론 자네에게는 필요 없지! 단지 다른 사람들이 이 등불을 보고 자네를 피해가도록 주는 것이야.’ 그래서 등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참을 가다가 어떤 사람과 충돌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 소경은 또 화를 내면서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이 보이지 않느냐?’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상대방이 말했다. ‘당신의 등불은 이미 꺼졌소!’ 이 소경의 모습이 오늘 우리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다. 각박한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의 기준이 항상 나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살고, 나만 편리하고, 나만 잘되고,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자녀 내 가족 내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다는 생각으로 살 때가 많다. 더욱 심각한 것은 꺼진 등불을 들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등불이 꺼진 줄도 모르고 호통을 치는 소경처럼 주변 탓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사람들은 세련되고 똑똑해졌는데도 사람도 사는 세상도 삭막한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소경의 친구처럼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남을 잘되게 하고, 남을 격려하여 세워주고,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 있다. 이렇게 남을 잘되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등을 빌려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감동이 있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결국 자신도 잘되고 형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잠11:25)는 성경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갈6:7) 주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 느헤미야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특히 그는 자기 민족을 잘되게 한 사람이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0).

 

되게 하는 힘

이는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에 대한 반대자들의 반응이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예루살렘의 부흥, 이스라엘의 부흥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다. 때문에 이들에게 느헤미야의 출현은 커다란 근심거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회유하고, 비방하고, 비웃으면서 그의 사역을 방해하였다. 이것이 사단의 특징이다. 사단은 신자가 잘되고, 신자의 가정과 교회가 잘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되게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온갖 방법으로 막아선다. 아무튼 느헤미야는 반대자들도 인정하는 주변을 잘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즉 민족을 흥왕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 힘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열정(11~16)

본서 2장 전반부에 나타난 느헤미야의 모습은 무척 세밀하고 철저한 계획의 사람이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하는 이성적인 사람에게선 흔히 뜨거운 가슴(열정)이 결여되기 쉽다. 그런데 그는 냉철한 이성에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귀국 후 그가 보여준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르시아 수산 궁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수개월이 걸리는 먼 거리다. 그런데 그는 귀국 후 삼일 만에 측근 몇 사람과 함께 직접 예루살렘의 형편을 확인하기 위해 암행(暗行)하였다(11~16). 이와 같은 그의 행동은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그는 단순히 앉아서 계획만 세운 사람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천하는 실천적인 사람, 또한 매우 열정적인 사람인 것을 잘 보여준다. 거의 2백 년 동안이나 방치되었던 그 일을 단 52일 만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그의 열정 때문이다. 그의 열정이 큰 역사를 만들어 민족부흥의 기초를 세웠다.

 

열정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계획을 세우게 하고, 목표를 이루도록 이끈다. 열정은 사람을 고취(inspirational)시킨다. 열정이 없이는 위대한 비전, 거대한 꿈도 꿈으로만 머물게 된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은 1955년 52세의 나이에 맥도날드사를 창업했는데, 현재 114개국 24,500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크록은 ‘사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열정이다.’고 역설했다. 이 열정이 맥도날드사를 크게 번창하게 만든 것이다. 열정은 ‘잘되게 하는 힘’이다. 훌륭하고 풍부한 지식이 유능한 일꾼을 만든 것이 아니다. 많은 재물이 좋은 일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다. 특히 복음에 대한 열정,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이 훌륭한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게 한다. 바로 이런 사람이 복음의 역사를 잘되게 하고, 주님의 사역과 주님의 나라를 잘되게 한다.

 

2. 동기부여(17,18)

사람들은 유능한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기업체에서는 가능한 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뽑으려고 하고, 또한 능력만큼 처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실력을 쌓으려고 여러모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이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그것은 의욕이다. 능력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능력은 있는데 의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성과=능력×의욕’이라는 공식을 내놓았다. 능력이 탁월해도 의욕이 없으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고, 또한 의욕이 아무리 강해도 능력이 없으면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대부분의 이유는 의욕 때문이다. 능력이 없어서 실패하기보다 의욕이 없어서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의욕)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동기부여’라고 한다. 동기가 부여되면 기대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본보기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채로 2백여 년을 방치한 것은 그들에게 그것을 재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물론 본문에 나온 산발랏이나 도비야와 같은 대적자들의 방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큰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재건하고자 하는 마음(의욕)이 없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 점을 파악하고 백성들에게 성벽재건에 대한 동기부여를 시도했다. 그는 성벽이 파괴되고 성문이 불탄 채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한 때부터 시작해서 이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그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아닥사스다 왕의 교지를 보여주었다(18상).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18하). 여기 ‘일어나다.’ ‘힘을 내다.’ ‘하려하다’는 단어들은 그들에게서 의욕이 불처럼 일어난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러 난관을 뚫고 단 52일 만에 성벽공사를 마쳤다. 동기부여가 ‘잘되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선한 일에 힘을 내도록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히10:24,25). 이것이 곧 서로 잘되게, 특히 하나님의 교회를 잘되게 하는 비결이다.

 

3. 확신(19,20)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고, 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것은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9)고 하였다. 논어에도 무신불입(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믿음의 확신이다. 하나님께 나를 잘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 우리 가정과 교회를 잘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확실한 고백과 태도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세우고, 잘되게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독일의 폭격으로 온 나라가 파괴되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수상이었던 처칠은 날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승리의 ‘V’를 치켜든 자신의 모습을 신문에 실었다. 마치 독일의 폭격을 조롱하면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확신의 찬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독일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재건을 하겠다고 일어서자 적대자들(산발랏과 도비야, 게셈)로부터 반응이 즉각 나왔다. 그렇다. 선한 일에 사단이 보고만 있지 않는다. 그들은 멸시와 조롱, 협박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19). 그러나 이와 같은 저들의 태도에 느헤미야는 기죽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20).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형통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반드시 성벽공사를 완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동시에 적대자들에겐 예루살렘에서 어떤 기업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도 없고, 누구도 그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경고와 선언을 하였다. 이와 같은 느헤미야의 확신과 태도는 백성들에게 격려가 되었고, 적대자의 멸시와 조롱, 협박을 이겨내고 성벽공사에 전력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믿음의 확신은 사람을 세우고, 잘되게 하는 힘이다. 우리 자신을 비롯해서 자녀와 가족, 그리고 교회를 잘되게 하는 비결은 믿음의 확신과 태도에 있다.

 

잘되게 하는 생각

옛날에 증자(曾子)라는 사람과 도척(盜跖)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물엿이 끓고 있는 가마솥을 보았다. 이것을 보고 증자는 늙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물엿에다 떡을 찍어먹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도척은 물엿을 문틀에 발라 소리가 나지 않게 하여 도적질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증자는 훌륭한 효자가 되고, 도척은 유명한 도적이 되었다.

 

그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한다. 잘되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잘되고, 잘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대로 기도하게 되고, 생각대로 계획하게 되고, 생각대로 준비하게 되고, 생각대로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그랬다. 그는 조국이 잘되게 하는 생각을 품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계획했고, 준비했고,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또한 열정적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적대자들 앞에 믿음의 확신을 보였다. 그래서 결국은 나라와 민족을 잘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모두 잘되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잘되게 하는 힘(열정과 동기부여, 확신)을 발휘해서 우리 가정과 교회, 우리 주변을 잘되게 하는 신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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