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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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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992회 작성일 14-08-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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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것, ‘기도’

행1:12~14

2014. 8/17. 08:00, 11:00

신자는 주(主)바라기다.

새에게 날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짐일 수 있다. 그런데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그 날개 때문에 새는 멀리 높이 날아갈 수가 있고, 천하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또한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새의 날개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신자의 경우, 신앙생활에서 매우 강조되는 기도가 그와 같다. 사실 신자라면 누구나 기도의 중요성은 알지만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이는 기도뿐만 아니라 직분도 예배도 봉사도 선교도......). 그렇지만 기도는 신자에게 있어서 새의 날개와 같다.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멀리 그리고 높이 비상하게 하는 것이 기도이고, 세상에서 신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준 것이 기도다. 뿐만 아니라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도 기도에 있다.

 

신자는 뜨거운 여름을 상징하는 꽃 해바라기와 같다. 해바라기는 어두운 저녁 내내 아침이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간절히 기다리듯이 동쪽을 향해 긴 목을 늘어뜨리고 서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서산으로 그 모습을 감출 때까지 해바라기는 멈추지 않고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 해가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도 해바라기는 실망하지 않는다. 내일 또다시 해가 뜰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해바라기는 쉬지 않고 계속 해가 뜨는 동쪽으로 자기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그 이름을 해바라기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 신자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한다. 시선을 늘 주님께 고정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주(主)바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주바라기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도록 만든다. 비록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날지라도 기도는 우리를 쉬지 않고 주님을 갈망하고 사모하게 만든다. 그래서 흔히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소망이 있다고 말하고, 아무리 편안하고 풍족한 가운데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우리 기독교회를 탄생시킨 최초의 사람들을 통해 기도의 교훈을 배워보려고 한다.

 

기도하는 사람들

우리 기독교회를 탄생시킨 최초의 사람들이 한 첫 번째 일은 지난주일의 말씀처럼 ‘모이는’ 일이었고, 그들이 모여서 하게 된 최초의 일은 ‘기다림’이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다. 또한 이 성령을 받아야 능력을 받아서 증인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셨다(8).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12). 그런데 그들은 모여 있기만 하지 않고 모여서 기다렸다.

 

우선 그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능력을 기다리고, 주님의 증인된 삶을 기다렸다. 그리고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연히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은 모여서 기다렸다.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기도가 기다림의 최상의 방법이다. 간절한 기다림이 있는 곳엔 반드시 간절한 기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이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신자를 기다리는 사람들, 교회를 기다림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앞에서 말한 대로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막연히 기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공동체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치고, 기다리다 실망하고, 기다리다 병이 들기도 한다. 거기에 기도가 빠졌기 때문이다. 즉 기다림을 기도로 연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기도로 연결시켜주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사소한 기다림도 기도로 연결하여 생활한다. 그러니 영적 풍성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약 500명 정도였다(고전15:6). 그러나 대부분은 흩어졌고 120명의 사람들만 주님의 부탁을 기억하여 다락방에 모였다(15). 본문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크게 세 그룹으로 소개하고 있다. ①주님의 제자들, ②여성들, 그리고 ③주님의 모친과 형제들이다. 본문은 그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14)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120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기’가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님의 마지막 부탁으로 모이긴 했으나 함께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갈릴리 어부출신에, 심지어는 죄인 취급하는 세리출신도 있고, 특히 세리를 증오하는 열심당원도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자들과, 그리고 주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던 주님의 동생들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기질,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마음을 같이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어떻게 한 가지 일에 오로지 마음을 쏟아 부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함께하기도 힘든 그들이 마음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일, 곧 기도에, 그것도 10일 동안이나 몰두했다는 것이다. 기도에 마음을 붙들어 맸다. 온통 거기에 마음을 쏟아 부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기독교회의 특징이다. 이렇게 함께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공동체를 이룬 것이 교회다. 함께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한 곳에 마음을 쏟아 부는 사람들이 신자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마음이 맞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전혀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서로 친밀한 공동체를 만들었다(2:44,45).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 기도다. 기도는 용광로와 같다. 용광로는 온갖 잡철(雜鐵)을 가져다 넣어도 모두 녹여서 쇳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쇳물로 새로운 도구를 만들게 된다. 기도 역시 모여든 각양의 사람들을 하나되게 만들어 주님 사역의 새로운 일꾼으로 탄생시킨다. 기도가 교회를 하나되게 만든다면 찬송은 교회를 은혜롭게 만들고, 말씀은 교회를 성장하게 만들고, 섬김과 봉사는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기도에 힘썼더니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이는 기독교회를 탄생시킨 120명의 사람들이 보여준 기도의 모습을 요약해서 표현한 말씀이다. 여기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란 단어는 기도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자 결과다. 더불어 기도하고,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오로지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어떻게 함께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할 수 있고, 마음을 같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오로지 기도에만 몰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는 이것을 기도의 조건보다는 ‘결과’로 해석한 것이다. ‘힘써 기도했더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가 있었고, ‘힘써 기도했더니’ 마음을 같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할 수가 있었고, ‘힘써 기도했더니’ 심지어 주님이 잡히신 날 저녁에도 졸며 잤던 그들이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할 수가 있었다.

 

기도가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힘써 기도했더니 이런 놀라운 결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더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고(2:1), 능력을 받아 목숨을 걸고 증인된 삶을 살게 되었다(3:~). 그러니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는 기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기도에 힘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도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을 함께하게 해주고, 마음을 같이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을 마음을 같이하게 해주고, 기도에 집중할 수 없는 사람들을 기도에 집중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힘써 기도할 때 능력의 주인공이 된다.

 

축복의 씨앗, 120명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다리를 모두 다친 여우를 보았다. 며칠 후 같은 장소에서 다친 그 여우를 다시 발견했는데, 여전히 살아있었다. 다리를 모두 다쳐 사냥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가 궁금해 숨어서 기다렸다. 그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이제는 꼼짝없이 저 여우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가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이 사람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와, 신기하다. 하나님이 다리 다친 여우를 호랑이를 통해 먹이시다니!’ 그는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모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그는 그대로 굶어 죽었다. 죽고 난 후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그는, 하나님께 항의했다. ‘왜? 제게는 호랑이를 보내주지 않으신 것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왜 호랑이가 될 생각은 안하고 여우만 되려고 하였느냐!’고 책망하셨다. 우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주님은 우리가 힘써 기도해서 교회를 세우고, 연약한 지체를 돕는 호랑이와 같은 신자가 되는 것을 원하신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 증인이 오늘의 주인공,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이다.

 

초대교회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약 400만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단 120명의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였다. 수적으로도 아주 적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의 운명, 하나님 나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되었다. 세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적의 씨앗, 축복의 씨앗이었다. 그 비결이 힘써 기도하는데 있었다. 우리 모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써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기적의 씨앗, 축복의 씨앗이 되자! R.A. 토레이는 ‘만일 우리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게 된다면, 노력은 많이 하나 성취는 적고, 예배는 많이 드리나 은혜가 적고, 활동은 많이 하나 효과는 없을 것이다.’고 했다. 흔히 우리는 적은 것,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탓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주님은 적은 것,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힘써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기도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간절히, 얼마나 힘써서 기도하느냐다. 기도에 깨어있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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