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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 문제야!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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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152회 작성일 14-07-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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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 문제야! ‘느헤미야’

느5:1~13

2014. 7/27. 08:00, 11:00

롱의 봉우리(Longs peak)

미국 콜로라도의 ‘롱의 봉우리’에 오래된 거목(巨木)이 쓰러졌다. 과학자들은 그 나무가 적어도 400년 이상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 나무는 그 긴 세월을 살면서 14번이나 벼락을 맞았고, 헤아릴 수 없는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다. 그런 나무가 하루아침에 쓰러진 것이다. 원인은 나무 안에서 살고 있는 작은 딱정벌레였다. 벌레들이 나무의 속을 파먹어 나무의 버티는 힘을 약화시킨 것이다. 오랜 세월의 풍상에도 시들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이 거목이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죽일 수 있는 나무 안에 살고 있던 작은 벌레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그 거목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부요인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우리 개인이나 공동체(교회, 가정, 사회)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이 내부의 적이다. 몸 밖에서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 몸 안에서 생기는 암세포가 더 치명적이다. 전투에서 100명의 적보다 1명의 간첩이 더 위협적이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자초한 재앙은 피하기 어렵다는 말처럼 무섭고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고, 위기는 안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한비자는 외부를 방어하기보다 먼저 내부를 방어하고, 내부의 적을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안이 든든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우면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불평이나 불만, 근심, 두려움, 교만과 같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저격수를 조심해야 한다. 본문이 바로 이 점을 다루고 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4장이 외적 위기에 대한 말씀이라면 본문은 내적 위기에 대한 말씀이다.

 

부르짖으며 원망하는 백성

 어느 글에서 보니, 말들은 늑대의 공격을 받으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원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긴 발을 이용해서 뒷발차기로 늑대를 물리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귀들은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늑대를 바라보면서 원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발길질한다. 이렇게 자기들끼리 발길질을 하여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결국 늑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나귀들의 모습에 어울리는 말이 있다. ‘적전분열’(敵前分裂)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워서 나뉘는 것을 뜻한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 지경이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1). 성벽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때에’, 한 손에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 공사를 해야 할(:17) 만큼 힘들게 버티고 있는 ‘그 때에’, 모두가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도 모자랄 ‘그 때에’, 산발랏 일당이 비웃음과 조롱과 위협과 협박으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그 때에’ 심각한 내부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적전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적들이 가장 원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백성들이 부르짖으며 원망하였을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흉년(3), 둘째는 과도한 세금징수(4), 그리고 셋째는 고리대업(5) 때문이다. ‘갚을 수 없는 이자 때문에 자식들까지 종으로 팔려가야(5)’ 했던 것이 당시 울부짖으며 원망하는 사람들의 형편이었다. 형편이 이 지경인데, 어떻게 울부짖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듭되는 흉년으로 먹을 것도 모자란데 과도한 세금까지 부담하려다보니 부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빌린 돈을 갚을 수가 없게 되자 부자들이 그들의 자녀를 종으로 끌고 가선 이방인에게 팔아먹었다. 거기다가 성벽공사까지 겹친 것이다. 이것이 당시 가난한 백성의 형편이었고, 이런 와중에도 애국심 하나로 성벽을 건축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높은 이자놀이로 서민의 피를 빨아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동등한 동족인데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혹독한 희생을 발판으로 이득만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성벽공사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일어선 것이다. 실로 심각한 위기였다.

 

문제의 해결

사회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고질적인 골칫덩어리다. 현대 사회에서도 최고의 이슈가 곧 이 문제다. 아무튼 이 문제는 혼란한 사회일수록 더욱 극심하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그랬다. 그래서 그저 성벽공사에만 몰두하고 있던 느헤미야에게 이 문제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13). 모두가 기꺼이 느헤미야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는 말씀이다. 자칫 민족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은혜롭게 잘 해결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본문에 그 해결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첫째로 그는 백성의 울부짖음과 원망을 ‘들어주고’ 또한 깊이 ‘공감’했다(6). 그는 가난한 백성의 부르짖음과 원망 속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무너진 채로 방치된 것은 예루살렘 성벽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흉년 때문에 세금 때문에 빚 때문에 백성의 마음이 성벽보다 더 심하게 무너져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가 성벽공사를 마친 다음 종교개혁을 서두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리적인 벽뿐만 아니라 마음의 벽까지 세우기를 원했다. 그래야 건강한 공동체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는 가난한 백성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크게 노(怒)했다. 여기서 ‘노했다’는 것은 단순히 화를 냈다는 뜻보다 정서적 공감을 뜻한다. 누군가 안타까운 사정을 들어주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화도 함께 내주면 정서적 공감이 일어난다. 정서적 공감이 일어나면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면 일도 풀린다.

 

둘째로 그는 가난한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았다.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6,7). 오히려 깊이 생각했다. 이는 ①‘중심에 계획하다.’(I pondered them in my mind), ②‘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다.’(I mastered my feelings)는 뜻이다. 이 문제를 자신의 감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깊이 생각했다. 평소 무슨 일이든지 먼저 기도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그의 습관으로 볼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태도다. 충분히 기도하면서 실제적으로 어떤 대책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한 것이다. 사안이 급할수록, 감정이 격해질수록 지도자는 이렇게 깊이 기도하고 생각한 후에 행동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당사자들을 불러 엄하게 꾸짖었다.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7). 귀족(noble)은 영향력 있는 지방의 유지들이고, 민장(official)은 관리들이다. 소위 백성의 지도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난한 백성을 상대로 고리대업을 한 것이다. 그는 그들을 불러놓고 높은 이자 취한 것을 꾸짖었다. 즉 가난한 백성을 ‘형제’가 아닌 돈 버는 대상으로 생각한 것을 질책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백성이 모인 공식집회 이전에 그들을 먼저 만났다. 비록 잘못했지만 지도자인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다. 결국 이런 그의 배려가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들음과 공감’으로 가난한 백성의 마음을 얻고, ‘배려’로 귀족과 민장들의 마음도 얻었다. 지도자는 느헤미야처럼 모두를 품고 가는 사람이다. 압제받은 사람도 압제한 사람도 모두를 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를 것을 단호하게 촉구했다(11,13). 이렇게 모든 백성의 마음을 얻었으니 그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백성을 대회로 소집하여 공개적으로 고리대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형제를 이방인에게 종으로 파는 행위이고(8), 또한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조롱거리가 되게 하는 행위라고 했다(9). 즉 ‘형제 사랑, 하나님 사랑’으로 요약되는 율법정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고 했다. 이 문제를 신앙(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가난한 형제에게 돈과 양식을 꾸어줄지라도 이자를 받지 말자. 저당 잡은 물건을 돌려주자.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은 가난한 백성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니 이것들을 담보로 잡았으면 무조건 돌려주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꾸어준 돈이나 곡식이나 포도주와 기름 등에서 받은 이자 중 1/100을 돌려주자. 그래서 가난한 백성의 숨통을 터주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간곡하게 부탁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단호하게 명령했다(특히 13절 말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실로 합법적인 계약조건을 무시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이 제안에 그들이 기꺼이 따랐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12). 현실적으로 엄청난 이권을 포기하는 일인데, 너무 쉽게 순종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실 이것은 수많은 대적을 물리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다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는 것, 특권을 누릴 수 있지만 특권을 포기하는 것, 가난한 형제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4절 이후에 나오는 지도자 느헤미야의 모범적인 삶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그의 모범적인 삶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마음의 성벽이 중요하다.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서 스파르타는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그런데 이 스파르타는 당시 방어의 상징이었던 성벽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스파르타의 왕들은 이렇게 자랑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군대나 무기도 우리의 성벽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성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군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여기 있소! 우리의 군대가 곧 성벽이고, 모든 사람이 그 성벽을 이루는 돌들이오!’ 그렇다. 강력한 공동체는 물리적인 성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돌이 되어 벽을 이룰 때 가장 강력한 성벽이 되고, 이런 벽은 그 어떤 적도, 그리고 그 어떤 무기로도 무너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마음이 무너지면 어떤 성벽도 무용지물이 된다.

 

본문은 허물어진 성벽을 쌓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벽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그가 비록 지극히 연약한 지체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성벽을 쌓는 진정한 목적이다. 성벽공사의 핵심은 사역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내부적 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고, 성벽공사라는 긴급한 사역을 중단하고 사람을 세우는데 전력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신앙의 벽과 생활의 벽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벽이다. 신앙의 벽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주일성수, 예배, 말씀, 기도, 전도, 헌물, 헌신과 섬김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강력한 신앙의 벽을 가진 신앙인 세워지고, 이런 신앙인이 모여 강력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신앙의 벽을 점검하여 무너진 것들을 속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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