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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에 능한 사람,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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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205회 작성일 14-07-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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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에 능한 사람, ‘느헤미야’

느4:1~6

2014. 7/20. 08:00, 11:00

지켜보는 눈(目)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저주로 암소가 된 이오 공주 이야기가 나온다. 헤라는 암소가 된 이오 공주를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구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한다. 아르구스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오가 곧 오늘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현대는 감시와 통제가 합법화된 사회다. 우리는 그 속에서 수백의 눈이 치켜보는 가운데 살고 있다. 바로 이 아르구스의 눈처럼 주변국의 눈이 온통 이스라엘에게, 특히 이스라엘을 흥왕하게 하는 느헤미야에게 쏠렸다. 물론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눈, 호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분노의 눈이었다. 이스라엘과 느헤미야를 무너뜨리려는 증오의 눈이었다. 그 중에 대표가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본문은 이들이 성벽공사를 방해하는 구체적인 이야기이자 이에 대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의 대처를 소개하고 있다.

 

위기는 누구에게 어디에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때문에 위기를 만나면 크게 당황하고, 심지어는 분노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위기는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오히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일수록 위기가 더 많다. 느헤미야는 사전에 위기를 충분히 예상했고, 또한 신앙 안에서 지혜롭게 잘 대처했다. 사실 4장에서 6장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겪게 된 대내외적인 위기상황과, 그리고 이를 어떻게 대처하여 잘 해결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즉 느헤미야의 위기관리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장들이다. 우선 산발랏 일당은 예루살렘의 성벽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분노하였다. 이스라엘이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이 분노와 함께 보인 첫 반응은 ‘비웃음과 조롱’이었다. 일종의 심리전인 셈이다. 2,3절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비웃음과 조롱을 감수하라!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뤄진 일은 없다. 대적의 비웃음과 조롱은 성벽공사를 위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다. 그들의 비웃음과 조롱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비웃는 말이다. 여기서 “미약한”이란 ‘사라지는’ 혹은 ‘시들고 있는’, ‘소망이 없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사라져가는, 시들고 있는, 소망이 없는 나라요 민족이라는 것.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훌륭한 일을 하겠느냐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이는 성벽공사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질문은 성벽공사는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백성들도 공사에 지치고 힘들어서 성벽을 재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10). 이러한 때 이와 같은 비웃음과 조롱은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제사를 드리려는가?’ 이는 신앙에 대한 조롱이다. 기도하고 예배한다고 성벽공사가 되느냐는 말이다. 결국은 의심과 불신앙의 길을 걷게 하려는 것이다(2:20절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고 부정이다).

 

넷째는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이는 일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것으로, 지난 2백여 년 동안 못했던 일을 무슨 능력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공사는 중대하고 그들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과장해서 스스로 문제 속에 갇히도록 하는, 이와 같은 수법은 사단의 아주 전형적인 계략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확신에 찬 믿음이다. 믿음의 선포다. 어떤 ‘큰 산’도 확실한 믿음의 사람 앞에서는 ‘평지’가 되기 때문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7). 다섯째는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이는 건축 재료에 대한 조롱이다. 당시엔 불탄 돌은 저주를 받은 돌로 취급해서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이스라엘 지역은 석회석이 많기 때문에 돌도 불에 타면 푸석푸석해진다. 어떻게 그런 돌로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비웃고 조롱했다. 설령 성벽을 완공한다 해도 성벽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그들의 수고를 부질없는 것으로 평가절하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비웃음과 조롱으로 그치지 않고 위협하고, 회유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사를 방해했다.

 

위기를 대처하는 법

이와 같은 산발랏 일당의 비웃음과 조롱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에서 시작하여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평가절하 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비웃음과 조롱이 무서운 것은 그 내용이 전혀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면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비웃고 조롱한 내용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의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고, 이 부분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그들이 하는 일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도록 했다. 또한 두려움과 열등감,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술이었다. 그러니 이들의 비웃음과 조롱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기는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관리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위기관리다. 그들은 유난히 위기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한 마디로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역전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느헤미야 또한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다. 그렇다면 그는 이와 같은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함께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4절에서,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 이미 언급하였던 것처럼 그는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1:4~11,2:4). 그의 모든 행동은 기도로 시작되었다. 기도가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 앞에 가장 먼저 기도한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혼자 기도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기도했다(‘우리’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옴). 우린 여기서 산발랏과 느헤미야의 차이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산발랏은 그 일당을 모아놓고 느헤미야와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비웃었는데, 느헤미야는 백성을 모아놓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했다. 산발랏은 무너뜨리는 사람이고, 느헤미야는 세우는 사람이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어떤 삶이 형통하겠는가?

 

기도는 대적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칼로 대적을 쳐들어간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다(4,5). 대적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또한 대적의 비웃음과 조롱이라는 심리전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기도다. 기도는 우리의 눈과 귀,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면 더 이상 사단이 우리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단의 계획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소중한 도구다. 그래서 기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죠지 뮬러는 ‘무릎으로 인생의 싸우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기독교 신앙의 ABC를 모르는 사람이다.’고 했다. 위기관리의 첫 번째 원리는 기도다. 그것도 함께 기도하는 합심기도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별 것 아닌 비웃음과 조롱에도 낙심하게 되고, 움츠러들게 된다. 대적의 비웃음과 조롱의 소리가 커질수록 더욱 강하게 기도하자!

 

물러서지 마라.

느헤미야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더욱 백성을 독려하여 성벽공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다보니 성벽공사가 순식간에 절반이 끝났다(6). 이는 ‘백성이 마음을 들여 일을 했기’(6b) 때문이다. 모든 백성이 정성을 다해 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을 했다는 뜻이다. 대적의 비웃음과 조롱이 두려움과 열등감을 갖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고히 연합하여 힘써 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아무리 주변 환경과 상황이 힘들어도 마음과 뜻과 힘을 모으면 큰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법이다. 이와 같은 결과의 배후에는 느헤미야의 믿음의 기도와 철저한 준비, 실천이 있다. 그는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하여 실천하는 행동의 사람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그 종족에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파수를 서게 하고(9,13), 대적을 두려워말고 강하게 맞서도록 독려했다(14).

 

느헤미야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라! 하지만 준비할 때는 모든 것이 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라!’ 외부의 핍박이 심할수록 기도하면서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해야지 낙심하여 손을 놓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사단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다. 낙심하거나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은 사단에게 틈을 보이는 것이다. 틈은 우리를 점령하도록 사단에게 길을 내주는 것과 같다. 사단에게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게 맞서야 한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선포해야 한다. 지난 IMF시절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I'm fall’이라고 외쳤다. ‘나는 무너졌다. 망했다. 끝장이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처럼 무너지고 망했다. 반면에 ‘I'm full’이라고 외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충만하다. 가득 찼다. 풍성하다.’는 뜻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확신대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 일당의 비웃음과 조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물러서지 않도록 강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독려했다. 이것이 위기를 관리하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약4:7).

 

시험 없는 인생은 없다. 풍랑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문제와 시험과 유혹과 협박과 오해와 아픔이 있다. 그 이유는 내 안에도, 가정에도, 교회에도, 직장에도, 곳곳에 산발랏과 그 일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들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그 비결이 있다. 느헤미야를 묵상하라. 그의 방법을 따르라.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어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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