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자녀가 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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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5-05-04 13:14본문
축복의 자녀가 되게 하려면
잠22:6
2025. 5/4 11:00(어린이 주일)
황소 머리
(사진을 보여줌). 여러분, 이 조형물이 무엇처럼 보이는가?(황소 머리). 이것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1990년대 런던 경매시장에서 293억 원이란 거액에 낙찰). 누구의 작품일까? 20세기 현대 미술을 거론할 때마다 어김없이 언급되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황소 머리’라는 작품이다. 거장의 작품이란 이런 놀라운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피카소가 길을 걷다가 버려진 지 오래된 듯한 낡은 자전거를 발견했다. 유심히 자전거를 바라보던 그는 곧장 작업실로 가져와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떼어낸 다음 안장에 핸들을 거꾸로 붙였다. 그리고 여기에 청동을 입히자 갸름한 안장은 황소의 얼굴처럼, 길고 구부러진 핸들은 황소의 뿔처럼 보였다. 피카소는 이 조형물을 완성한 후 ‘황소 머리’라는 이름을 붙이며 매우 흡족했다. 이렇게 황소 머리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버려진 쓰레기가 거장의 손길이 닿자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그러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명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피카소처럼 버려진 쓰레기와 같은 것을 가지고 걸작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조잡하고 보잘것없는 졸작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자녀교육의 중요성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은 보배로운 존재다. 흔히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4C가 결정한다고 한다. 4C란 ①carat(무게) ②color(색깔) ③clarity(투명도) ④cut(연마)를 의미한다. 이 중에서 ①②③은 다이아몬드 고유의 특성이지만 ④는 전적으로 사람의 손에 달렸다. 만약 다이아몬드 원석의 등급이 동일하다면 가장 고려할 것이 연마(cut)다. 연마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상 등급의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은 자녀를 선물로 주셨다. 이제 부모인 우리가 이 보석을 어떻게 연마하느냐만 남았다. 이 연마가 ‘교육’이다. 특히 ‘신앙’교육이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녀를 교육(연마)하느냐에 따라 빛나는 보석(걸작)이 될 수도 있고, 하찮은 잡석(졸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의 경험 일화다. 선생님이 판서(板書)를 하고 있었다. 한참 칠판에 글을 써 내려가는데 뒤에서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안 보여요. 선생님 대가리 좀 비켜주세요.’ 이 ‘대가리’라는 말에 당황한 사람은 선생님이었고, 이 말을 한 아이는 전혀 당황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 아이가 이런 태도를 보였을까? 자신의 말에 문제성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면 왜 문제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듣던 말, 하던 말을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이는 부모(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부모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듣고 보고 그대로 반영하고 반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의 말은 그 부모의 말, 그 가정의 언어생활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은 가정의 달 첫 주이자 어린이 주일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소중한 자녀를 어떻게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연마할 것인지를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본문은 어려서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인데, 청교도가 자녀교육의 철학으로 삼은 말씀이라고 한다(청교도의 교육철학).
무엇을! 왜?
먼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한다. 이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먼저 가르치고(우선순위), ‘왜’ 가르쳐야 하는지(목적과 방향)에 대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슨 일에든 우선순위가 있다. 어떤 일에서는 이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일이 크게 어긋나게 된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본문은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마땅히 행할 길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를 잘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녀교육의 내용이자 우선순위이다. 그리고 여기 ‘가르치다’는 히브리어 단어 ‘하노크’(הנוך)로 ‘훈련시키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길들이다.’ ‘(하나님께)바치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께 길이 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길이 들도록,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어려서부터 계속 훈련시키라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을 뜻하는 히브리어 ‘히누크’(הינוךְ)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는 ‘훈련이나 경험을 통해 헌신과 봉사하는 단계에 이르도록 돌보는 기술’이란 뜻이다. 교육의 올바른 목적과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육의 목적이 그저 출세의 도구, 경쟁사회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 있다.
개혁교회 역사에서 자녀의 신앙교육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람들은 ‘청교도’(영국의 종교개혁자와 그 후예)다. 그들에게 교육의 우선순위는 신앙이었다. 청교도 지도자 존 코튼은 맹목적으로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지 말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라.’고 했다. 신앙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즉, 신앙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말이다. 벤자민 워즈워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일 글을 읽을 수 없다면 배움을 위해 모든 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읽을 수 있다면 어떤 특수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들에게 자녀교육의 우선순위와 목적은 신앙이었다. 어느 글에서 본 것이다. 그들은 아이에게 알파벳을 가르칠 때부터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고 한다. 즉, 알파벳과 함께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기회와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도록 명령하신 대로(신6:4~9) 그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한 것이다. 흔히 미국을 ‘인종의 도가니’라고 부른다.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미국을 움직이는 주류가 있다. 그들을 ‘와스프’(WASP)라고 부른다.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머리글자)는 ‘앵글로 색슨계의 개신교도 백인’이란 뜻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곧 청교도의 후예(後裔)다. 신앙교육으로 무장한 이들이 세계 초강대국의 주류가 된 것이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유대인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다. 자녀교육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우리나라도 유대인 못지않다. 그런데 유대인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은 철저하게 가정중심, 부모중심이다. 신앙교육은 더더욱 그렇다. 자녀의 신앙교육을 그들은 가정의 존재이유, 부모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교육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무사르’(מוסר)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단어는 ‘보이다.’, ‘보여주다.’ 또는 ‘안내하다.’, ‘주다.’는 의미를 가진 ‘마사르’(מסר)에서 왔다. 그러니 가르치는 사람은 ‘보여주는 사람’, ‘안내하는 사람’,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탈무드는 교사를 ‘보여주어 따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아이에게 보여주고, 안내하고 주는데,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누굴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그곳은 가정이다. 때문에 유대인은 부모를 최고의 교사로, 가정을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소(학교)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교육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한다. 어느 유대인 부모가 랍비를 찾아가 언제부터 아이 교육을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랍비가 지금 아이 나이가 몇이냐고 되물었다. 5살이라고 했더니 벌써 5년이나 늦었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계 최대 공룡 발자국 화석 유적지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우리 지역에서 가까운 해남 우항리에 있다. 여기엔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새의 발자국도 있다. 지금 그곳에서 어제부터 내일까지 공룡축제가 열리고 있다(5.3~5). 그 단단한 바위에 공룡들과 새들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그것이 물렁물렁했던 때가 있었다는 증거다. 새의 발자국이 새겨질 만큼 물렁물렁했던 물체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단한 돌이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특히 아이의 마음은 물렁물렁한 물체와 같다. 거기에 어떤 자국을 남기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더 나아가 사탄이 아이의 마음에 험악한 자국을 남기기 전에, 세속적인 잘못된 가치관이 새겨지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사랑의 자국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녀교육은 빠를수록 좋고, 자녀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가정과 부모의 책임이 막중하다.
자주 보여주라!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현장학습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찾아가서 직접 보고,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교육은 더욱 그렇다. 신앙교육은 보여주면서 따라오게 해야 한다. 특히 부모가 먼저 보여주고, 안내하고, 주어야 한다. 신앙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배나 기도, 찬양에 대하여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것, 아이를 안고 기도하는 것, 감동적으로 찬양을 불러준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굳이 기도해 주지 않고, 찬양을 불러주지 않더라도 부모가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만 보여주어도 효과가 크다.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면 닮게 되고 따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귀찮더라도 예배의 자리에 자녀를 꼭 데리고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찬양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 자녀를 자주 노출시키기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물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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