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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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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261회 작성일 08-10-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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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Ⅲ

벧전3:8~12

2008. 10/17 11:00

세월이 유수(流水)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마치 화살처럼, 총알처럼 지나가는 것 같다.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웃으며 기뻐하며 살아도 한평생, 한숨짓고 가슴치고 울며 살아도 한평생이다. 이런 귀중한 세월을 가슴치고 후회하며 쓸쓸하게 산다면 얼마나 비극이겠는가? 하루하루의 기회를 귀하게 잡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밝고 보람있게 살아야겠다.


우리는 우리 자녀가 우울하고 쓸쓸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자녀들이 밝고 쾌활하게, 복되게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10:22).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가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복이 되고 건강이 되고, 이웃에게는 전도지가 된다.


우울하고 심각한 사람에게는 암이 잘 생기나 아이들처럼 밝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는 사람에게는 암이 잘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즐거울 때 피를 뽑아서 조사해 보면, 피 안에 암을 잡아먹는 NK(natural killer)세포가 가득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밝은 모습으로 살 때,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예수를 믿게 된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인데, 이 책을 지은 존 번연(John Bunyan,1628~1688)은 본래 예수를 믿지 않았다. 어느 날, 골목길을 지나가던 번연이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이야기, 은혜를 받고 변화된 이야기, 은혜를 받아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 즐거운 이야기, 기쁨이 가득 찬 이야기를 들은 그에게 '야!'하는 예수님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래서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여러분과 저의 얼굴이 전도지가 되기를 바란다.


본문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에서, 사랑하다란 단어를 다른 성경에서는 ‘enjoy’로 번역하고 있다(예루살렘 성경). 그냥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날들인데, 이 날들을 즐기며 사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이다. 그 방법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첫째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에게 복된 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11절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는 말씀이다. 이는 아름다운 행동에 대한 말씀이다.


1.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

악은 불안과 염려, 고통의 뿌리이다. 악을 행하는 자는 두려움과 탄식, 불안과 염려로 그의 삶이 사로잡히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고 느끼게 되었던 첫 감정이 두려움이었고, 부끄러움이었다(창3:8). 이들의 자녀였던 가인 역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인 다음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이었다(창4:14). 그리고 그들이 받은 보응은 고통이었다(창3:16~17, 4:12). 악한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든다. 악한 자의 결국은 비참한 멸망이다. 유다 왕 히스기야 아들 므낫세는 유다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자였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다 헐었던 우상의 단들을 다시 세우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우상의 단을 세워 온갖 우상을 섬겼다. 자기 아들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고 선지자 이사야를 비참하게 죽였다. 그의 악행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 군대에게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원어로 보면 그의 코를 갈고리로 꿰어서 끌고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악한 그의 최후가 참으로 비참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대상33:11). 뿐만 아니라 악인의 죽음은 아끼는 자가 없고 도리어 즐거워한다(사14:7~)는 사실이다.


하지만 선은 우리에게 기쁨과 보람, 즐거움을 준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형통이 따르고 다른 사람들을 잘되게 할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잠11:10). 나에게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고 그의 존재를 좋아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사람들이 선을 행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와 함께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무슨 일이든지 잘 되기 때문이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振興)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잠11:11). 그러므로 신자는 악을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선을 행하면 형통하게 된다. 본문 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눈과 귀가 누구에게로 향하신다고 하셨는가? 돈이 많은 부자도, 힘 있는 세력가도, 위대한 석학도 아니다. 그저 악을 떠나 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보시고, 이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어 즉시 응답하신다. 할렐루야!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아버지가 험한 산길을 가다가 산적을 만났다. 그는 지갑과 보따리를 다 내놓았다. 산적들은 그에게서 말까지 빼앗아갔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무서워서 벌벌 떨며 산을 내려가는데, 소매 끝에서 무언가가 자꾸 덜렁거렸다. 소매 끝에 숨겨 두었던 금 덩어리였다. 마음이 착한 그는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그대로 산을 내려갈 수 없었다. 산적들이 이것이 전부냐?고 할 때, 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다시 산적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것이 전부냐?고 할 때, 라고 했는데, 여기에 금덩어리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무서워서 금덩어리를 숨겨 둔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 말에 오히려 산적들이 감동을 받아 그에게 빼앗았던 지갑과 보따리, 말까지 내어주며 말했다.

당신 같이 의로운 사람의 물건은 우리가 취할 수 없소. 어서 가지고 내려가시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또한 악한 일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도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의로운 길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도 알아주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된다. 나도 잘되고 자녀들도 잘되고 하는 모든 것들이 잘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잘되게 한다. 이런 사람에겐 항상 좋은 일들이 줄을 잇고 날마다 좋은 날들이 된다.


2.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정신의학자 린치(J. L. Lynch) 박사는 그의 책 「깨진 마음」(The Broken Heart)에서 인간관계가 건강을 좌우한다고 말하고 있다. 평균 연령을 다 살지 못한 사람들을 조사해 봤더니, 대다수가 사회적 고립, 우정의 결여, 고아로서 혹은 편모편부 밑에서 자란 경우, 갑작스럽게 사랑하던 대상을 잃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드러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더불어 사는 존재란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께 더불어 잘 살 때 행복이 있고 형통이 있고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더불어 사는데 절대조건이 화평이다. 화평이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잘 지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우리가 행해야 할 선(善)의 내용이다. 화평은 관계에 있어서 절대가치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처럼 화평이 있는 곳에 온전한 성취가 있다. 화평을 통한 관계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란 말이다. 화평이 깨지면 만사가 헛되고 만다. 때문에 히브리인이나 헬라인들은 인사를 할 때 화평을 빌었던 것이다. 본문은 화평을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로 화평을 구하라. 화평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화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데(약3:17), 우리가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이다. 많은 재물을 자녀들에게 남겨주었지만 자녀들 간에 화평이 없으면 그 재물이 화가 된다.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시켜 좋은 배필과 결혼을 시켰는데, 부부간에 화목하지 못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교회도 성장보다 중요한 것이 내적인 화평이다. 그러므로 먼저 구하고 본질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화평(목)이다.


둘째는 화평을 좇으라. 화평의 삶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화평과 관련하여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우선 화평을 깨는 사람들(peace-breakers/trouble-makers)이다. 이들은 관계를 파괴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편을 만들어 갈라서게 한다. 항상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람들과 맞서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법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이런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동기는 자기중심성이다. 이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place-makers).


다음은 화평을 가장한 사람들(peace-fakers)이다. 이들은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논쟁이나 싸움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갈등에도 개입하지 않고, 그냥 못 본 척 외면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갈등에 개입되어 있지 않으니까 화평을 위한 사람처럼, 지혜롭고 고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절대로 둘 사이에 개입해서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화평을 가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화평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들(peace-lovers)이다. 그러나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다.


마지막이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peace-makers)이다. 이들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일이 없다. 상대방과 맞서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갈등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진짜 화평을 이루기를 소원한다. 이들은 자신의 편안함보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우선하고, 자기 의견이 관철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집중한다. 이렇게 화평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유일한 동기는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참다운 화평을 만들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마5:9)이다. 우리 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필요하다. 신자는 갈등을 만들고 증폭하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편을 가르고 자기 세력을 불려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있던 편도 없애버리고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peace-breaker들이 교묘한 말로 미혹하려고 할 때,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더 큰 사랑으로 감싸 품어주며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화평을 심고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날마다 좋은 날, 행복한 인생, 행복한 공동체는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다. 본문은 이 소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악을 떠나 선을 행하는 것, 즉 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실천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 우리 주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이 화평을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자. 그래서 우리 인생이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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