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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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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703회 작성일 09-01-0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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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

사66:1~4

2009. 1/4 11:00

밭 한가운데 전신주가 있었다. 이 전신주는 늘 밭주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밭을 갈 때마다 걸리적거렸고 전신주의 그림자가 곡식들을 자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전신주는 자신은 참으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시무룩해졌다.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와 전신주에게 말했다.


너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밭주인에게는 네가 필요 없는 존재일지 몰라도 다른 많은 사람들은 너 때문에 불을 켜고 공장의 기계를 돌릴 수 있단다. 그러니 넌 참 중요한 존재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불평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의 감사에도 귀를 기울이거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2009년이라는 새로운 해, 혹은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오늘이 그 첫 주일이고, 우리 교회로는 개척 4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주일이다. 우리도 때때로 이 전신주처럼 주변 사람들의 불평에 마음이 상하여 의기소침할 수 있다. 하지만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계심을 믿고 힘을 내자. 주님 안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달고 힘차게 전진하는 새로운 한해, 아름답게 성장하는 4주년이 되자!


지난 송구영신예배에서 복이 있는 사람, 복을 짓는 사람, 복을 잇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을 드렸다. 이런 삶을 위해서는 주님께 복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의 복을 받는 비결은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주의 전을 사모하면서 예배하는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금년 우리교회 주제를 예배의 기쁨(영광)이 있는 교회로 정했다. 우리 개인과 교회가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는 한 해, 예배의 기쁨에 푹 빠진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예배를 통해 주님의 복을 받아 복이 있는, 복을 짓는, 복을 잇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은 예배와 관련된 말씀이다. 2절 마지막 부분에 ......그 사람은 내가 권고(眷顧)하려니와라는 말씀에서 권고하다는 단어는 참된 예배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바트라고 하는데, 바라보다, 사랑하다, 돌아보고 그 형편을 소상히 살피다, 눈여겨보다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바라보시고, 찾아서 만나주시고, 사랑하시고, 돌아보아 그 형편을 살피시고, 눈여겨보고 계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의 관심이 되고, 주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우리와 우리 교회가 이런 사람,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이 참으로 눈여겨보시는 신자, 교회가 되는 것을 목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으로 삼고 있고, 나 역시 이런 사람이 되기를 항상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은 누구인가?(2).


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천국시민의 자격을 8가지(소위 팔복이라고 함)로 말씀하셨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5:3). 여기서 가난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토코스이다. 이는 파산을 당하거나,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파산 당한 사람처럼 스스로 설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기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고 자기를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사모하며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강력한 소원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을 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가난하다는 말은 너무 적게 가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고 했다. 참으로 철학자다운 표현이다. 맞는 말이다. 가난한 마음은 그저 소극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빈 마음이 아니라 그 빈 곳이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간절한 소원은 마음의 가난함에서 비롯된다. 목마름이 있어야 물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간절히 물을 구한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가난함이 있어야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사모하게 되고 의지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가난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져있어 간절함이 없는 것이다(계3:14~22). 주님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눈여겨보시고, 또한 만나주신다(잠8:17). 이런 사람이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눅18:35~43). 그러므로 마음의 가난함은 예배자가 가져야할 중요한 마음의 자세이다.


2. 심령에 통회하는 사람이다.

채근담에 나온 말이다.


蓋世功勞(개세공로)도 當不得一個矜字(당부득일개긍자)요,

彌天罪過(미천죄과)도 當不得一個悔字(당부득일개회자)니라.


세상을 덮을 만큼 공이 커도 자랑할 ’(矜)자 한 자를 당하지 못하고, 하늘에까지 가득 찬 죄와 허물도 뉘우칠 ’(悔)자 한 자를 당하지 못한다. 아무리 공로가 커도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면 그 공로가 쓸모가 없게 되고, 아무리 심각한 죄를 저질렀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능히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가복음에 두 명의 기도자가 나온다. 한 사람은 스스로 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는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사람에게 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운 생활을 자랑하였고, 세리는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셨다(눅18:9~14). 우린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눈여겨보시는 지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자기 죄를 알고, 그 죄를 슬퍼하는 사람이다.


통회를 히브리어로 다카라고 한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잘게 쪼개진 물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통회는 자기의 마음을 깨뜨리고 부수고 쪼개는 것이다. 통회하는 마음은 깨진 마음, 완전히 부서지고 쪼개진 마음이다. 곧 회개하는 마음이다. 깨진 틈새로 물이 스며들 듯이 주님의 은혜는 깨진 마음에 임한다. 그리고 신앙은 이렇게 깨진 마음에서 흐르는 회개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눅8:6).


이 말씀은 주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두 번째 밭에 해당되는 바위 위에 떨어진 씨에 대한 말씀이다.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지 못한 이유를 습기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위는 깨지지 않는 마음, 통회함이 없는 심령을 의미한다. 깨지지 않는 마음에 회개의 눈물인 습기가 있을 수 없고, 그 회개의 눈물인 습기가 없어서 씨앗이 자라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앙을 위한, 영혼을 위한 눈물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내 신앙을 위해, 내 영혼을 위해 진지하게 통회의 눈물을 흘린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회개의 사람은 다윗은 이 통회하는 마음을 예배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주님은 많은 제물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기뻐하신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죄가 없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 때문이 아니다. 엄청난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아파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용서하시고,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시고,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높여주신 것이다. 금년 한 해 주님 앞에 통회의 눈물을 많이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자신을 위해, 자녀와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늘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젖은 눈으로 주님을 부르고, 찬양하고,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눈여겨보실 것이다.


3. 주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천국에서 그렇게 대접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은 말씀하신 그분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주님을 멸시한다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울 왕이 망하게 된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태도에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사위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함께 망하게 된 원인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오늘날 신자들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말씀에 대한 떨림은커녕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조롱을 당하고 있는 곳은 세상이 아니라 교회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와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떨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 말씀을 깊이 신뢰하고 존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존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말씀을 신뢰하고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 말씀 앞에 항복하여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순종하니까 주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그를 축복하시게 되는 것이다. 정말 주님의 말씀 앞에 떠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여러 전망들에 의하면 금년도가 무척 힘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리 주눅들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문제나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주님의 관심이다.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문제, 우리가 처한 환경, 우리 자신을 눈여겨보시도록 하는 일이다. 주님이 눈여겨보시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그 비결이 가난한 마음, 통회하는 마음, 주의 말씀을 깊이 신뢰하고 존중히 여기는 마음에 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눈여겨보시는 삶, 그래서 주님의 복을 듬뿍 받아 복이 있는 삶, 복을 짓는 삶, 복을 잇는 삶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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