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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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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3,219회 작성일 09-01-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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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공이다.
창22:15~19
                                                                                                           2009. 1/18 11:00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까지 받았으면서도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지겨웠던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주일 아침만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교회에 가지 않을 궁리를 찾았다. 한 번은 자신이 집을 지킨다며 자기 아내에게 대표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문득 한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되었는데,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가 두 사람은 부부지요? 그럼 대표로 부인만 천국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지옥으로 가시오.라고 말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 이 집사님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그 동안 예배를 소홀히 했던 죄를 회개하고, 이후로 예배에 빠지지 않는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미소 짓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며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신자의 예배를 매우 귀하게 여겨주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또한 만나주신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면 신앙이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산다. 그러나 예배가 죽으면 신앙도 가정도 교회도 무너진다. 그래서 경건한 신앙인들이 그토록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 것이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W. E. Gladstone)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신앙을 알 수 있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이 자리가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살면서 무엇을 드러내며 살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사람의 종류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는 인생이다.

이런 사람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가고, 결혼도 한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처지지 않고 열심히 살긴 사는데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에겐 인생의 푯대(빌3:14)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매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무엇인가 드러내는 인생, 자기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푯대가 없는 삶은 아무 것도 드러낼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묘비명 쓸 때 먹다 죽다 밖에 쓸 것 없는 인생이다. 생각보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둘째. 죄를 드러내며 사는 인생이다.

의욕적으로 살지만 삶 가운데 죄가 드러나는 인생이 있다. 히틀러나 스탈린을 보라. 역사에 남는 인물은 되었지만 악명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남았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협박하고 속이고, 만들었다 하면 범죄의 조직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끌어간다. 「타짜」라는 영화에 나온 아귀 같은 존재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죄이고, 남을 못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 취미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하신 말씀처럼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인생이다.

셋째.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인생이다.

이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자기 성장과 출세를 위하여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학창시절 때는 좋은 학생이고, 직장에서는 좋은 직장인으로 불린다. 교회에서도 열심이 깊은 신앙인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엘리트라 하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는 마음 깊숙이 교만이 자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기준이고 모든 것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른다(눅12:13~21).

그렇다면 신자로서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드러내며 살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종교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고,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임을 보여주었다. 본문은 이와 같은 그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증해주시는 말씀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성공에는 항상 예배가 있고, 반면 그의 실패에도 예배가 있다(창12:~21:). 그렇다면 예배가 진정한 성공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예배는 삶의 방향성을 회복시켜준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도 방향이 잘 못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세 종류 인생의 공통점이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방향이 없는 인생이라면 둘째와 셋째는 방향이 잘못된 인생이다. 방향이 없기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한 인생이 되었고, 방향이 잘못되었기에 잘못된 결과를 드러내는 인생이 된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 역시 삶의 방향을 잃고 몇 번의 방황을 겪게 된다. 특히 창12:10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내 사라를 애굽 왕에게 빼앗기는 위기를 만난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찾게 되지만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방향성을 잃고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자손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이유는 무엇인가? 흉년이다(12:10). 하지만 흉년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예배에 있다. 그는 흉년이라는 위기 앞에서 예배를 잃어 버렸다. 때문에 삶의 방향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약속의 땅에 있어야 할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예배가 없는 인생은 마치 구름에 가려서 별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고, 안개에 가려서 등대불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배를 회복하면 구름이 사라지고 안개가 사라져서 현재 내가 있는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무엇을 드러내며 살아야할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그래서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말한 것이다. 잃어버렸던 삶의 방향성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2. 예배는 삶의 가치성을 회복시켜준다.

어떤 부자가 있었다. 이 부자는 돈을 은행에다 맡기지 않고 집에다 보관했다. 그래서 늘 도적들의 표적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도적들이 그 돈을 찾아 내지 못하고 매번 허탕을 쳤다. 도적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그 집에 불을 지르기로 했다. 돈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이니 분명히 돈을 먼저 챙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도적들은 그 때를 노려서 돈을 훔치기로 했다. 도적들이 그 집에 불을 질렀더니 담장 너머로 뭔가 툭 던져졌다. 그것은 큰 대나무들이었다. 돈 대신 대나무만 발견한 도적들은 너무도 실망했다. 그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속았다며 힘없이 돌아갔다. 반면 집 밖으로 나온 부자는 그 대나무들을 주웠다. 부자는 그 대나무 속에 돈을 숨겨놓았던 것이다. 도적들은 대나무만 보았지 그 속에 있는 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나무를 보고도 실망하고 돌아간 것이다.

창13장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서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브라함과 롯은 같은 지역에서 살수 없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둘은 갈라서게 된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을 하도록 했다. 롯은 물과 풀이 풍부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렀다.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겉모습은 하나님의 동산 같았으나 그 속은 죄악으로 썩은 땅이었다. 반면 가나안 땅은 풀도 물도 없는 메마르고 거친 땅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었다. 롯은 대나무만 보고 그 속을 보지 못한 도적들처럼 가나안 땅의 가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회복한 아브라함은 예배를 통해 삶의 가치성도 회복되었다. 그래서 12장에서는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갔으나 13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머무르게 된다. 가나안 땅의 가치를 발견한 까닭이다. 가나안은 겉모습은 물도 풀도 자라지 않는 메마른 땅이지만 그 속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예배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이다. 참된 가치에 대한 눈을 뜨게 하는 점이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주님께서 전파하셨던 천국에 대한, 주님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 소망에 대한 가치들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한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회복된 내 자신에 대한 가치, 삶에 대한 가치, 하는 일에 대한 가치, 그리고 이웃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예배이다.

3. 예배는 삶의 중심성을 회복시켜준다.

모든 만상은 그 중심점이 있다. 중심이 잘 잡히면 질서와 평화가 보장된다. 중심이 확고하면 웬만한 시련과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뚝이가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는 것처럼 다시 일어난다. 그러나 중심이 무너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따른다. 우리 어린이부가 지난 가을 야외예배에서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팽이 시합하는 모습을 홈페이지에서 사진으로 보았다. 팽이 시합에서 중요한 것이 중심을 잡는 것이다. 중심이 무너지면 팽이 쓰러진다. 우리 인생이나 신앙도 마찬가지다.

예배의 가장 큰 강점은 중심성의 회복이다.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 나라의 중심, 내 가정의 중심, 교회의 중심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 예배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하여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임을 회복시켜준다. 즉 주님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한다. 주님이 드러나고 삶, 하나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게 해준다(계4:10).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어떤 위협에도,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정한 성공의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지 베브리 세아(G. B. Shea)라는 사람이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가 들려준 저음의 바리톤은 방송을 통해 전 미국인에게 울려 퍼졌고, 노래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에게 끝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갑자기 그는 스타가 되어 여러 방송사에서 끊임없는 계약제의가 들어왔다. 그의 인생은 돈과 출세가 보장된 스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뒤적이다가 어렸을 때 가졌던 믿음에 대한 추억이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 즉시 교회로 달려갔다. 열심히 살았지만 떳떳하게 드러낼 것이 없는 지난날을 회개하고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며 살기로 다짐했다. 이런 그에게 그의 어머니가 조그마한 쪽지를 주었다. 종이에는 어머니가 자주 애송하던 밀러(R. F. Miller) 부인의 성시가 쓰여 있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
.

그는 이 성시를 읽다가 감동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멜로디를 종이에 써내려갔다. 이 찬양이 우리 찬송가 102장이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그가 이 찬양을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수가 끝난 후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모든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주신 박수갈채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에게 방송국에서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계약을 맺자고 했을 때,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너무 늦게 전화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목소리와 모든 재능을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베브리 세아처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이 참으로 성공한 삶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예배생활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 모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성공적인 삶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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